이사도 가안하고 캠핑카도 리모델링해야하고
고흥으로 쏜살같이 돌아온 날, 마감일이 코앞이었다. 일본을 거쳐 부산, 그리고 다시 고흥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와야 했던 이유. 바로 고흥 SNS 작가단 활동 보고서 제출 때문이었다. 글 3편과 사진 15장이 필요했고, 귀국하는 날이 딱 마감일이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다행히 소재는 주변에 널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겪은 이야기, 오랜만에 마주한 텃밭 이야기, 밤에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민생소비쿠폰 이야기까지. 덕분에 마감일 다음 날, 무사히 글을 다 쓰고 보고서까지 제출할 수 있었다.
3개월 만에 돌아온 텃밭은 전쟁터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날 반긴 건 정글처럼 변해버린 텃밭이었다. 일본 가기 전 열흘간 부산에 있었으니, 거의 3개월 가까이 집을 비웠던 셈이다. 그 사이 키 큰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엉키고설켜 있었다. 한 줄을 채 베어내기도 전에 힘이 다 빠져 포기하고 말았다. 이걸 다 정리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까마중'이었다. 어찌나 생명력이 좋은지 다른 잡초들을 압도하며 훌쩍 자라 새까만 열매를 잔뜩 달고 있었다. 원래는 베어낸 잡초를 텃밭 고랑에 덮어 멀칭을 하지만, 이 녀석을 그대로 뒀다간 내년에 온통 까마중 세상이 될까 봐 걱정이 앞선다. 말려서 태워야 할까?
들깨도 질세라 2미터 가까이 자라 있었고, 내가 심었던 고추는 바싹 말라 비틀어진 채 겨우 몇 개의 붉은 열매만 매달고 있었다. 평소 생명력이 넘치던 가지마저 키 큰 잡초들에 기가 눌려 열매를 두어 개밖에 맺지 못했다. 노랗게 익어버린 오이는 건드리자마자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다.
정리하고 떠나야 할까
조만간 부산으로 이사 가 6개월 정도 살다가 아이들과 분가할 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텃밭을 이렇게 두고 떠나도 될지 고민이 많다. 우리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도 온통 환삼덩굴에 뒤덮인 잡초 천국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내가 정성 들여 가꾸려던 국화, 설악초, 나팔꽃만이라도 예쁘게 자랄 수 있도록 잡초들을 정리해주고 떠나고 싶다.
우리는 이제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날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짐을 캠핑카에 실을 수 있을 만큼만 남기기로 했다. 그날을 위해 남편은 급하게 스타렉스에 침상을 만들고 있다. 일본에서 본 자작 캠핑카에 영감을 받았는지, 각목과 톱을 들고 용감하게 작업에 나섰다.
남편의 손재주는 '금손'과 '똥손' 그 사이 어딘가쯤 된다. 톱과 망치만 가지고도 뚝딱뚝딱 뼈대를 만들었다. 세로 180cm, 가로 120cm, 높이 30cm. 다음은 침상 상판을 만들 차례다. 합판을 직접 자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서 쿠팡에서 재단된 합판 6개를 주문했다. 남은 공간은 골판지 박스로 메울 계획이다. 과연 어떤 모습의 캠핑카가 완성될지 기대된다.
떠날 준비, 비우는 연습
9월 2일, 본격적으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창고에 쌓아둔 재활용품부터 처리했다. 페트병의 라벨을 떼어내고, 쿠팡에서 온 스티로폼 상자와 박스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다음은 책이었다. 아들 책과 내가 좋아하는 시집들을 문밖에 쌓아두었는데, 남편이 재빠르게 박스에 담아버렸다. 새로 산 책도 많아서 나눔 할까 고민했는데, 벌써 자원회수센터로 가버렸단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언젠가 읽어야지 했던 부담감이 사라지니 한편으론 시원하기도 하다.
옷 정리도 마쳤다. 걸어두고 입지 않은 옷들이 정리 대상이었는데, 남긴 옷보다 버린 옷이 훨씬 많았다. 신발도 딱 두 켤레만 남기고 전부 버렸다.
아직 손대지 못한 짐들이 있다. 그동안 평생학습관에서 배운 흔적들이다. 캘리그래피 도구들, 먹물, 붓 세트, 화선지, 깔판 등. 언젠가 다시 할 거라고 1년 내내 보관만 했는데 이것도 정리해야 할까? 내 입이 닿았던 하모니카 6개와 악보집은 남에게 주기 힘든 물건이라 가져가기로 했다. 시 낭송 연습용 스피커와 마이크, 뜨개질 하다 남은 실과 바늘 세트도 버려야 할지 말지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내일이면 주문한 합판이 도착한다. 우리의 캠핑카가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내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