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동생의 승진과 어머니

by 성희


​막내 동생의 승진 소식을 들은 순간, 내 기분은 구름 위를 걷듯 하늘로 솟구쳤다. 5남매 중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마음 쓰이던 막내. 그 녀석이 이제는 한 조직의 든든한 리더인 ‘5급 사무관’이 되었다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해왔다. 오늘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하루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 이 기쁨은 단순히 개인의 성취, 그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갖는다. 사실 막내는 다른 가족에 비해 학교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평범한 성적이었다. 비교적 상위권을 달려 이웃 진주에서 학교를 다닌 다른 형제들과 달리 고등학교도 고향에서 졸업했다. 공무원으로 취직하고 무던한 세월을 보냈다. 쉰이 넘은 나이인데도 아직 우리 가족의 눈에는 막내로 자리 잡고 있는 그가 뜻밖의 기쁨을 가져다준 것이다.


어머니는 환갑도 되기 전, 평생 다정했던 아버지를 먼저 보내셨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자식들이 있었다. 그 무게를 덜어주었던 사람은 큰 동생, 장남이었다 그리고 4년 뒤, 남편만큼이나 든든했던 큰아들마저 가슴에 묻어야 했다. 과로로 쓰러져 버렸다. 가족들 챙기랴 , 자기 사업하랴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 원인이었다. 자식을 앞세운 단장의 슬픔 속에 어머니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부르며, 긴 세월 마르지 않는 눈물로 숨죽여 살아오셨다.

​가족의 기둥이었던 큰 동생은 참으로 따스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둘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산에 살았다. 내 생일날 "엄마가 갖다 주래"라며 갓 지은 찰밥과 나물을 정성스레 들고 오던 그 다정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장남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처럼 온 가족을 골고루 살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의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너무 일찍 밤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그 귀한 사람을 잃은 뒤, 우리 가족의 얼굴에는 한동안 웃음꽃이 피지 않았다. 어머니의 적막한 뒷모습을 보며 남은 형제들도 숨을 죽인 채 각자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모두에게 준 사랑의 무게만큼 그만큼 우리 가족 모두의 아픔이었다.


그리고 30년

그 깊고 어두운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우리 가족에게, 이미 예정되어 있던 둘째의 교장 승진 소식에 이어 들려온 막내의 승진은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눈부신 봄볕과도 같다.

​이제 다음 달이면 온 가족이 모여 이 기쁜 소식을 나눈다. 이 자리는 단순히 축하를 넘어, 서로의 해묵은 아픔을 위로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화합의 장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날, 오랜 세월 가슴앓이하셨던 어머니의 얼굴에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꼭 보고 싶다. 어머니의 그 웃음이야말로 우리 형제들에게는 세상 그 어떤 훈장보다 값진 선물이 될 테니까.

​"막내야, 정말 고생 많았다. 네 큰형도 하늘에서 누구보다 기뻐하며 너를 대견해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어머니, 이제는 무거운 마음 다 내려놓으시고 우리 막내가 가져다준 이 행복만 생각하며 활짝 웃어주세요.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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