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60평생 처음으로 뜨개바늘을 잡았다. 유튜브를 스승 삼아 완성한 첫 작품 ‘베를린 스카프’는 만족도 80점이었다. 올해는 그 부족한 20점을 채워 ‘완벽’을 맛보고 싶었다. 베테랑 친정 언니는 동네 뜨개방으로 가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거기 가면 기술 전수에 심폐소생술까지 다 해줘!" 그 말에 솔깃해 마트 근처 조그만 뜨개방 문을 두드렸다.
문 안쪽은 별천지였다. 70대 어르신들이 눈도 안 보일 연세에 니트며 대작들을 슥슥 뜨고 계셨다.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앙증맞은 모자들.
"무엇을 뜨실려고?"
베를린 스카프’를 무결점으로 뜨고 싶다고 했다. 70대인 주인장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난 새로운 건 도전하기 싫어."
목도리와 비슷한데 통단으로 겉뜨기만 하고 프린지를 달면 된다고 했다. 베를린 스카프는 목도리와 비슷한 개념, 프린지는 수술과 비슷하다고 했지만 처음 듣는다한다. 안한다한다.
예상치 못한 단호함에 당황했지만, 이왕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자르는 심정으로 제일 예뻐 보이는 '모자'를 집어 들었다.
주인장 선생님의 손놀림은 어찌나 빠른지, "하루에 옷 한 벌도 뜨시겠어요?" 물으니 옆 어르신이 본인 옷 뜰 시간은커녕 남들 틀린 코 수정해 주느라 바쁘다며 손사래를 친다. 선생님은 내게 ‘겹단뜨기’ 숙제를 내주셨다. 겉뜨기만 하던 내게 첫 코는 빼고, 안은 옮기는 방식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밤늦게까지 떠 갔건만 선생님은 "틀렸네. 그냥 하든지 풀든지!"라며 냉정하게 진단하셨다.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오기가 생겨 몽땅 풀고 다시 코를 끼웠다. 이상하게도 어제보다 손놀림이 수월했다. 선생님은 내 작품에 손끝 하나 대지 않으셨지만, 그 냉정함이 오히려 내 손에 '뜨개 근육'을 만들어 주었다.
뜨개방에서 배운 탄력을 받아 집에서 밤샘 작업에 돌입했다. 3세트, 4세트... 퍼펙트였다. 하지만 마지막 5세트에서 모양이 엉망이 됐다. 다시 풀까 고민했지만 딸은 "엄마, 흠 잡으려고 작정하지 않는 한 안 보여!"라며 응원을 보냈다.
문득 뜨개질을 멈추고 내 모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한참 바빴던 시절, 참 열심히는 살았으나 잎을 뒤집어보면 벌레 먹은 자리가 가득한 나의 인생도 이 모자와 닮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럴듯한 무성한 잎사귀들 사이사이, 나만이 아는 고단한 흔적과 구멍 난 상처들. 하지만 그 벌레 먹은 자국들이야말로 내가 그 세월을 얼마나 치열하게 버텨왔는지를 증명하는 훈장이 아닐까.
세 번째 뜨개방 방문 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 모자가 선생님 손에 전달되었고 드디어 마지막 매듭이 지어졌다. "완성!"
찾아보면 흠은 많지만 그래도 참 예쁘다. 이 모자는 다가올 제주도 여행에서 나의 '공항 패션'이 될 것이다. 인생도, 뜨개질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 80점에서 시작해 이번엔 90점까지 올라왔으니 충분하다. 인생의 잎사귀 뒤편에 숨은 벌레 먹은 흠결까지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는, 나만의 멋진 모자가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