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귀촌, 그 후 글로벌 차박으로

by 성희

고흥 귀촌, 인생 2막의 첫 번째 선택


​자연과 온전히 호흡하며 살고 싶었던 퇴직 후의 삶, 나의 첫 번째 선택은 '귀촌'이었다. 그곳에서 삶과 여행은 경계 없이 공존했다. 전라남도 고흥, 삼면이 바다인 수려한 풍광과 겨울에도 포근한 기온, 그리고 소박한 시작을 허락해 준 경제적인 환경은 우리가 그곳을 선택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이유였다.


​ 고흥의 품에서 만난 나의 화양연화


​고흥에 뿌리를 내린 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이 땅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고흥의 길을 걷고, 지역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주변의 산세에 몸을 맡기는 것이 우리의 주된 일과였다. 거창한 농사 대신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소박한 기쁨을 택했다. 공무원 연금이라는 든든한 버팀목 덕분에 고된 노동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오롯이 우리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누렸다.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채우는 지금, 나는 이 생활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한 산들이 지천이었고, 산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푸른 바다와 함께 숨 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노두교가 있는 우도부터 나로도, 거금도, 쑥섬, 연홍도까지... 곳곳에 펼쳐진 섬길 트레킹은 우리를 지치게 하기보다 매번 새로운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운암산 중섯재 산책길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로 반겨주던 최소장님과의 만남, 마을 잔치 때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손을 돕던 순간들. 고흥에서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따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물 밖으로 이끈 뜻밖의 각성


​평화로운 일상에 잔잔한 파동이 일기 시작한 건 남편이 '서해랑길'을 걷고 싶어 하면서부터였다. 그 길 위에서 만난 한 여행객의 해외여행 이야기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넓은 세상을 누빌 수 있다는 경험담, 그리고 차박으로 일본을 여행하는 이들의 기록은 잠자던 우리의 모험심을 깨웠다.

​남편이 여러 경로로 정보를 모은 끝에, 우리는 마침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글로벌 차박이라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다. 그렇게 떠난 72일간의 일본 차박 여행은 우리의 가치관과 생의 행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다시 길 위로, 365일간의 영원한 소풍


​72일, 그리고 38일... 길 위에서 보낸 긴 시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확신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안락한 정착지를 떠나 다시 길 위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365일 전부가 여행지가 되는 삶, 캠핑카와 숙소, 야영장을 적절히 오가며 앞으로의 10년을 여행자로 살아볼 계획이다.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차박 노하우와 장박의 경험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정착의 안락함 대신 길 위의 자유를 선택한 지금, 우리의 진짜 인생 2막은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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