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긴 대기실 의자에 앉아 미뤄두었던 브런치스토리의 글들을 읽는다. 작가마다 딱 한 편씩, 타인의 삶을 정성스레 맛보는 동안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내가 가본 곳, 내가 겪어본 일들에 대한 기록을 마주할 때면 깊은 공감이 차오른다.
그러다 문득, 가죽 스트랩에 면도칼을 슥슥 갈아 쓰던 옛 이발소 이야기 앞에서 마음이 멈춰 섰다. 그 문장을 마중물 삼아 억눌려 있던 온갖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점방 두 개와 이발소 두 개가 전부였던 작은 마을. 학교 앞을 지키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와 고무줄놀이, 긴 줄넘기로 활기차던 운동장이 눈앞에 선명하다. 줄을 지어 등교하던 길 위에서 벌집을 건드리고, 죽은 뱀을 던져 여학생들을 놀라게 하던 장난꾸러기 녀석들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여름이면 강가에서 온종일 멱을 감던 그 날들.
하지만 이제 동네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한 학년에 서른 명이나 되던 아이들은 이제 몇 년에 한 명꼴로 귀해졌고, 나의 모교는 폐교된 지 오래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이제는 기록 속에나 존재하는 세상을 나는 오늘 병원 의자에 앉아 복기했다.
이제 조금씩 긴 줄이 줄어들고 있다. 봇물 터지듯 밀려왔던 옛 추억을 다시 가슴 한구석에 조심스레 묻어두어야 할 시간이다.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화면을 올려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간다. 사라진 풍경들이 누군가의 글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나의 그리움도 잠시 그 곁에 쉬게 해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