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여독이 몸의 구석구석을 저미던 다음 날 아침, 잠을 깨운 것은 딸아이의 서운한 타박이었다. 텅 빈 냉장고 앞에서 "엄마, 안 일어나요?"라고 묻던 아이는, 내가 안도의 마음으로 꺼내놓은 팥호빵을 보며 아빠보다 내 식성을 모른다며 날을 세웠다. 비타민을 먹더라도 위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이의 바른말이 그토록 차갑게 들린 것은, 아마 내 몸이 너무 고단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부스스한 머리로 집 앞 마트로 달려가 식빵 한 줄과 양배추를 사 왔다. 찬 바람에 정신을 깨우며 정성껏 아침 상을 차려냈지만, 식탁 위에는 설익은 화가 안개처럼 일렁였다. 말없이 접시를 비우고 나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비어버린 거실에 서 있어야 했다.
오후가 되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카카오페이 십만 원이라는 숫자. 그것은 말로 다 하지 못한 아이의 서툰 사과이자, 고생한 엄마에게 건네는 미안함의 무게였다. 나는 가만히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적어 내려갔다.
"딸아, 요즘 나는 우리 집을 예쁘게 리모델링하는 상상을 한단다. 우리가 40년간 고치지 않던 집이지만 이제 너의 신혼집으로 꾸며 주려하니 많이 리모텔링 해주고 싶구나. 낡은 곳은 고치고 따뜻한 온기로 채워가는 그런 꿈 말이야. 그 집의 중심에는 언제나 네가 있단다. 시험 앞둔 동생이 챙기느라 동생에게 조금 더 기울어 있을지도 모르겠네.
정작 우리 딸 식성 하나 살피지 못한 부족한 엄마지만, 너를 향한 내 사랑은 한 번도 낡은 적이 없단다."
사랑한다는 말로 맺은 문자를 보내며 깨달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낡은 벽지를 뜯어내는 일뿐만 아니라, 서운함으로 얼룩진 마음의 벽을 사랑으로 다시 도배하는 '리모델링'이었다는 것을.
제주의 변덕스러웠던 비바람도, 아침의 시렸던 공기도 이제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호빵의 김처럼 하얗게 흩어진다. 십만 원이라는 숫자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온 딸의 진심 위로, 우리 집 마음의 온도가 일 도쯤 더 따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