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포레스트, 화려함 속의 쓸쓸함
제주의 동백수목원은 많다. 참 많다. 그러나 입장료가 있어 여러 곳을 다 가볼 수는 없다. 수목원이 어떤지는 모른다. 지금 있는 성산에서 가까운 곳으로 몇 군데 골랐다. 동백터널, 동백포레스트, 제주동백수목원, 신흥리 동백마을이다.
가장 먼 곳부터 들린다. 동백포레스트이다. 성산에서 남원읍 위미까지 가는 길에는 동백이 별로 없다. 오늘 날씨는 맑아 하늘은 푸르고 한라산이 바로 품 안에 안긴다.
7,000원의 입장료가 아까워서일까? 남편은 나 혼자 들어가라고 한다. 결국 혼자 들어선 화려한 꽃궐 속, 가족끼리 들어와 웃고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 모습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폰카를 들고 서 있다.
꽃사진은 역광이나 측광으로 찍으랬지. 금세 사진놀이 삼매경에 빠져본다. 측광으로는 어찌어찌 찍어보겠는데, 역광으로 찍으려니 꽃들이 마치 수줍은 듯 뒤돌아 피어 있다.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지, 어떤 구도를 잡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뒤돌아 걸어가니 저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이 장관이다. 붉은 동백도 넣고 흰 한라산도 한 폭에 담고 싶은데, 꽃은 마음대로 찍히지 않고 확인해 본 사진 속 한라산은 너무나 작게만 나온다. 내 눈에 보이는 광활한 도화지와 사진 속 세상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만개한 동백 숲 사이를 거니는데 혼자서는 사진 포인트를 잡기가 영 힘들다. 늘 곁에서 구도를 잡아주던 남편이 있으면 참 잘 찍었을 텐데.
결국 풍경 사진 몇 장에 어색한 셀카 두 장, 그리고 떨어져 누운 꽃잎 몇 점을 담고는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 나온다.
길을 잃어도 추억은 남는 법
내가 나오자마자 남편은 다시 운전기사가 된다. "다음은 어디지?" 그의 물음에 "위미 동백군락지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내 생각과 다른 곳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우연히 내 눈에 띈 그곳은 3년 전, 너무나 아름다운 동백이 피어 있던 추억의 장소였다. 그 안에는 '동박낭'이라는 카페가 있다는데, 울타리에 핀 꽃들이 화사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꽃이 지고 있는 중이라 그때만큼의 아름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세월 속에 변해가는 꽃의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문밖에서 돌아서는 마음
그 옆으로는 '불거덩수목원'과 '제주동백수목원'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두 곳 다 입장료가 있다. 남편은 또 나더러 혼자 들어가라고 한다. 이번에는 나도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담장 밖으로 슬쩍 보이는 애기동백의 수형이 조금 전 다녀온 동백포레스트와 비슷했다. 이미 사진은 많이 찍은 지라 아쉽지는 않다는 핑계를 대며, 남편을 등지고 꽃궐의 문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길가의 동백, 비로소 기대어 쉬는 마음
그렇게 수목원들을 뒤로하고 차를 타고 가던 길, 우리는 우연히 길가에 흐드러진 이름 없는 동백길을 만났다. 그곳엔 입장권도, 화려한 간판도 없었지만 대신 내 곁을 지키는 남편이 있었다.
"살짝 눈 감고 기대어 보아요."
당신의 든든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본다. 유명한 수목원을 헤매며 채우지 못했던 마음의 조각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화려한 숲을 혼자 거닐 때보다, 길가에 핀 꽃 아래 당신의 온기를 느끼는 지금이 훨씬 더 따뜻하다.
이제야 우리의 동백이 온전히 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