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는 황량함만 남은 이 겨울, 제주는 노란 유채와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마치 머나먼 남쪽 나라, 어느 이국적인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입니다. 매서운 추위를 피해 차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햇살에 공기가 훈훈해진 오후가 되어서야 성산 고성리 유채밭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키는 작지만, 수줍게 고개를 내민 노란 꽃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줍니다. 유채밭을 두른 검은 돌담 너머로 바다와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인데, 아쉽게도 오늘 한라산은 구름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다 구름에 가려졌던 해가 반짝 빛을 내뿜자, 유채밭 곳곳에 노란 불꽃이 일제히 켜집니다. 눈앞이 순식간에 환해집니다. 세차게 불어오는 찬 바람에 온몸을 흔들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내는 유채의 생명력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유채밭 근처 '졸띠'라는 이름의 승마장에서는 한 무리의 말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지나갑니다. 마부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발을 떼는 말들의 행렬을 보니, 문득 몽골에서 말을 타고 광활한 초원을 달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바람을 가르며 속도감을 즐겼는데, 이곳의 말들은 유채꽃 향기를 만끽하듯 느릿느릿 걷기만 합니다.
노란 유채밭 주위를 한 바퀴 돌아오는 그 느긋한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길 위에서 말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제주다운 풍경이라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