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3년 동창생들과 시모노세키에서 잃어버린 우정
" 동창생들과의 여행에서 마주한 뜻밖의 상처를 통해,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평온을 우선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시모노세키는 이미 여러 번 발길이 닿았던 곳이다. 남편과 같이 걸어서 여행을 다녔기에 여기저기 아는 곳도 많다.
또 여행을 자주 하는 생활이 지속되고 요즘 같은 때
빠듯한 연금을 이리저리 쪼개어 생활하는 은퇴자에게 이번 여행 경비는 적지 않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야 하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짐을 꾸렸다. 직장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 시험공부로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던 아들이 "엄마, 잘 다녀와"라며 건네준 고마운 양해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나는 동창들과의 설레는 외출을 시작했다.
퇴직 후 차박 여행을 즐기니 나의 교복은 늘 청바지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동창생들이 모이는 특별한 자리였기에 오랜만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평소 즐겨 입던 청바지 대신 통 넓은 모직 바지를 새로 사고, 서툰 솜씨지만 뜨개방에 가서 모자도 정성껏 하나 떴다. 설레는 마음으로 생경한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 것은 나를 위한 단장이자,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나의 진심 어린 예의였다.
여행 이튿날 밤, 고작 3시간밖에 자지 못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체 모임이 열린다는 방으로 향했다. 다과와 맥주를 나누며 추억을 쌓으려는 그 마음들이 예뻐 보여 힘을 냈건만, 방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의 기대는 처참히 부서졌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게 머리단장도 안 하고... 이렇게 와? 여기에 귀하신 분들을 모셔야 하는데!
"
방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동창생이 소리를 질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평생을 안고 살아온 나의 콤플렉스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1. 키 작음
2. 뚱뚱함
3. 못생김
4. 패션감각 없음
알고 보니 그것은 갑자기 날조된 '상황극'이라 했다. 명문여고 출신이 그렇게 저속하게 놀거라 생각은 못했다. 쏴한 분위기 속에 있었으나 상황극은 계속되고 있었다.
. 뒤에 온 친구에게도 몇 마디 하더니
"우리 집 에이스 옵니다. "라고 말했다
그래도 한 명의 친구가 나에게 구원이 되는 작은 한마디는 했다.
그 후 들은 말에 의하면 나보다 앞서 들어간 친구에게 "그나마 쓸만하다"는 품평을 내렸다 한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순간 뇌리가 하얘졌다. 화려하게 꾸민 친구들 사이에서 초라해진 나의 모습. 비수 같은 그녀의 말들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자책 섞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래, 저들 사이에서 나는 뒤에서 일등이겠구나.'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뚜쟁이(?)가 제일 힘들다. ○○가 수고가 많다. 두세 번이나 말했다. 머리가 하얘진다. 두 친구 외에는 침묵했다. 나를 위로해야지 왜 무례한 이 친구에게 힘을 실어주지?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나? 마음은 더 털썩 떨어졌다. 다음 날 들은 말은 이 친구는 나에 이어 두 번째 심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애써 무례한 친구를 감싸는 것은 자신이 들은 말에 대한 반응이리라. 고위공직자로 퇴직한 그녀가 직장생활에서 했던 행동이리라. 자신에 대한 무례함은 꾸짖지 못하고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어 "♡♡부장이 수고가 많소."하고 말했을 모습이 상상이 된다.
방 한구석에서 나는 홀로 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못생긴 건 내 죄가 아니다. 뚱뚱한 건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관리를 안 한 내 탓일까. 좋은 옷을 입지 못한 것은 여행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돈을 썼기 때문이겠지.'
그 친구는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일 테다.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이다. 그 말을 들은 내가 이 찰나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비참한 계산을 하고 있는지 그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뇌리를 스치는 서글픈 원망이 차올랐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뭐 하려고 날 낳으셨나. 낳으려면 예쁘게나 낳아주시지. 이 험한 세상에 또 하나 시련을 주시네.'
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집마루에서 울고 있었다. 뒷집 남이 아주머니가 집에 오더니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이는 이렇게 못나서 어떻게 살아갈런고?
아마 4살쯤이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기억은 다 잊었어도 그 하나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그 후 나는 못생겨서 세상살이가 나를 너무 불행하게 만들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지 못했다. 거울을 잘 못 보니 꾸밀 줄도 몰랐다.
상처 입은 자존심이 가슴을 쩌릿하게 찔렀지만, 전체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뭐 해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를 지켰다. 모멸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 뒤이어 들어오는 다른 친구에게는 "우리 집의 에이스이옵니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누군가는 '쓸만한 아이'로, 나는 '뒤에서 일등'으로, 또 누군가는 '에이스'로 분류되어 그들의 술안주가 되고 있었다. 그녀의 구두평가를 했지만 나는 22명 중 22등이었다. 나는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쁘기만 한데 나이가 들면서 건강하고 푸근한 내 모습을 좋아하게 되어 가는데 콤플렉스가 다시 올라온다. 아킬레스건이 터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전체의 분위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전체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대신, 나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내가 기분이 상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철저히 모른 척했다. 면세점에서 다시 마주친 그들이 왜 그러냐고 묻길래, 담담히 말했다. "나 어제저녁 네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거든."
그제야 미안하다는 사과가 돌아왔지만, 그 끝에 붙은 말은 더 가관이었다.
"미안해, 농담이었는데, 너는 농담을 잘 못 받아들이나 봐."
진정한 사과가 아니면 차라리 하지 말지. 미안해 다음 나는 농담인데 너는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냐?
그건 사과를 안 한 게 더 나을 거다. 농담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또 한 번 무시되었다.
주변에서는 몇몇 친구들은 분위기 메이커 노력을 한 그 친구를 두둔하며 "너는 작가라면서 왜 그러냐?"
픽션작가와 논픽션 작가는 달라.
소설가라 하다가 그 아래를 동화작가라 생각했는지 동화작가라고도 한다. 그녀는 동화작가가 소설가보다 글을 쉽게 쓰지 않는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라고. 그 자리에서 나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이다. 전체의 분위기를 위해서 그 정도는 웃어넘겨라. 예전의 나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전체보다는 나를 더 사랑한다. 감정의 찌꺼기는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극히 몇몇은 나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여행을 오면 전체를 위해 개인의 감정은 배제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다른 많은 친구는 무슨 일인지 관심이 없었다.
다음날 차에 탔다. 어제 기분 안 좋았지? 위로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나, 둘셋
내 옆에 앉은 같은 중학교에서 그 고등학교로 같이 진학한 친구도 내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서" 왜 어제 저녁에는 가만있었느냐" 하니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외모 평가를 받았다 한다. 좋은 평가를 받은 친구도 기분이 나빴다한다.
차에서 내려 걸어갈 때도 위로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자리에 있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좋은 평가든 안 좋은 평가든 들어서면서 외모평가를 받았던 친구들이 주로 공감해 주었다. 유쾌하지 않은 즉흥 상황극이었다.
이제 나는 말로 불편함을 드러내었다. 이 말이 들어간 모양이다. 친구 몇 명이 찾아왔다. 목적은 설득이었다. 이런 것은 잘못되었으나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 자식이었다.
목적은 사과가 아니고 설득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친구가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그럴 수 있었다면 나의 작은 저항은 끝났을 것이다. 나도 말로 그 친구의 기분이 상하게 하고 인격과 외모를 모독할 수 있다. 좋게 보았을 때 장점이지만 말의 색깔만 바꾸면 그녀가 한 말 외모비하를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 그 말을 하는 인격 비하까지 곁들 수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나를 설득하러 온 친구는 그대로 돌아갔고 옆에 있던 친구들은 말렸다. 말을 못 해서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을 뱉은 친구와 계속 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가 나의 맞은편에 있었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참 못됐다."
"왜?"
"○○친구는 장난이고 너는 계획적이잖아."
나도 상황을 안다. 분위기를 노력하던 그 친구의 마음도 안다. 하지만 그런 류의 분위기 살리기는 있을 필요가 없다. 다음부터는 더 좋은 말로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 못하느냐 했던 친구에게 도 똑같은 마음이 든다. 빅션이든 논픽션이든 내 감정은 상했다. 마음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그런 말로 또 다른 인격 침해를 한 거야.
퇴직 후 거울을 보며 나를 마주했다.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봤다. 거울 속에서 활짝 웃는 나를 보며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겨우 나 자신과 화해하기 시작한 그 눈물겨운 노력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나는 나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아침밥을 거부하고 일찍 배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한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스트레스를 안고 돌아오는 이런 관계를 굳이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독하게 마음먹고 돈 들이고 고생해서 살을 빼고 이런 모욕을 받지 않도록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할까?
단체생활을 하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모든 이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방에 모인 모든 친구들이 다른 MBTIi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성향을 모두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음이 필요하다.
내가 그 말을 한 친구의 성향을 이해해 주고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나를 좀 더 성장시킬까? 가벼운 농담으로 듣고 내 기분이 며칠 나쁠까? 그러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 수 있겠지
올해부터는 이제까지 못해왔던 것들을 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한다. 남편과의 기싸움에서도 이겼다. 나를 희생하는 삶은 끝이다.
"나로 단순하게 살자."
이제 감정은 이 글과 함께 풀 것이다. 못생겼다는 자책도, 남들의 무례한 평가도 시모노세키 바다에 다 던져버릴 것이다. 나는 나로서 충분히 귀하고, 나의 단순한 삶은 그 자체로 평온할 자격이 있다. 이제 다시 내가 사랑하는 청바지를 입고,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가족들 곁에서 나만의 단순한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거울 속의 내가 다시 웃어줄 때까지.
나는 내가 예쁘다. 작지만 건강한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남보다 나를 먼저 선택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좋다. 글로서 내 마음을 풀고 더 단단 해진 내가 좋다.
거울을 보며 웃어 본다. 눈, 코, 귀, 입이 제자리에 붙어 있고 내 나이보다는 조금 적은 주름살도 있다. 예쁘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