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하루-동료들이 있어 행복한 하루
작은 학교일수록 그 정은 뼈에 사무치도록 깊게 스민다. 18 학급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급식이 처음 시행되던 시절, 주 5일제조차 없던 그 팍팍했던 토요일의 교정. 아이들을 급식 없이 하교시킨 뒤에야 비로소 허기를 달래던 우리들의 점심시간은 소박하지만 간절했던 우리들만의 안식처였다.
그 시절 우리는 아귀찜 한 그릇에도 세상의 시름을 잊었다. 그중에서도 맛집을 고르고 한번 배달시켰을 때 맛있는 집을 기억해 두었다가 행복한 점심시간을 만드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내가 아귀찜을 주문할 때 덤벙거려 사리를 빼먹는 일이 두 번이 있었다. 그 후 박 선생님은 내 실수를 흉보는 대신 조용히 사리 한 대접을 더 얹어 빈틈없이 주문하곤 했다. 커피 물을 끓일 때면 늘 동료 머릿수보다 한강만큼 물을 붓던 나에게, 물을 계량하여 붓는 절제와 정갈함을 가르쳐준 것도 그였다. 나의 넘치는 마음과 그의 단정한 알뜰함은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며 25년의 긴 세월을 빚어왔다.
지금도 모임만 하면 눈시울과 웃음을 동시에 자극하는 ‘짬뽕 대첩’은 우리 인연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가장 빛나는 훈장이다. 수업 종료에 맞춰 주문한 짬뽕이 무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을 때, 그 불어 가는 면발은 우리들의 다급한 처지와 닮아 있었다. 수업 없던 동료의 긴박한 연락에 홀린 듯 모여 앉아 젓가락을 들었으나, 운명의 장난처럼 교장 선생님의 서슬 퍼런 그림자가 교실 문턱을 넘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거친 꾸짖음 앞에 간신히 한 젓가락 떴던 짬뽕은 더 이상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했다. 담임을 맡았던 우리가 서러움과 무안함을 삼키며 각자의 교실로 쫓기듯 돌아갔을 때, 담임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홀로 남겨진 선생님은 차갑게 식어버린 짬뽕의 처참한 잔해와 우리들이 흘리고 간 눈물까지 묵묵히 혼자 처리해 주었다. 그날의 혹독했던 기억은 우리에게 ‘하교 20분 후 배달’이라는 서글픈 철칙을 남겼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아수라장을 함께 견딘 우리는 만나고 돌아오면 일주일 내내 가슴이 따뜻해지는 가장 끈끈한 동지가 되었다.
별관 사철나무 울타리를 분홍빛 넓은 하늘 꽃밭을 만들어 준 해가 있었다. 학교 출근하면 마음이 너무나 환했다. 나팔꽃들이 우리들의 빛나는 희망이라 믿었을 때, 어느 날 아침 무참히 베어져 나간 그 시든 잔해를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그때도 박 선생님은 같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사철나무를 사랑했고 우리는 나팔꽃을 사랑했다. 교장선생님에게 나팔꽃은 잡초였고 우리에게 사철나무는 안타깝지만 다른 식ㅁㆍㄹ을 받쳐 빛나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방학이 올 때까지 영원할 줄 알았던 분홍빛 세상은 사라졌지만, 그는 시든 꽃잎보다 더 아름다운 진심도 있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동학년을 함께하며 지켜본 그는 언제나 성실했고, 누구보다 유능했으며, 결코 치우치지 않는 품격 있는 교사였다. 나는 이제 인생을 단순하게 살기로 하여 오직 네 개의 모임에만 참여한다.
퇴직 후 전 직장의 일들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건만, 이제 박 선생님마저 교단을 떠난다고 하니 묻어두었던 25년의 기억들이 나팔꽃처럼 환하게 피어오른다. 참으로 귀하고 뜨거운 동료들이었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가장 깊이 사랑하는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이는 내가 위였으나 배울 점은 늘 태산 같았던 박 선생님. 비록 별관의 나팔꽃은 한 계절의 꿈으로 사라졌지만, 선생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따뜻한 중용의 미덕은 결코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피어 있을 것이다. 퇴직 후에도 특유의 명석함과 따뜻함으로 늘 슬기로운 인생을 가꾸어 나갈 박 선생님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박 선생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의 ‘짬뽕 인연’은 학교 담장을 넘어, 영원히 불지 않는 따스한 면발처럼 우리들의 인생길에 쫄깃하고 든든한 동행이 될 것입니다. 박 선생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