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제주에서
제주의 겨울은 육지보다 다정하다. 기온은 대개 영상을 유지하고, 고개를 들면 한라산의 눈부신 설경이, 발치에는 붉은 동백이 고개를 내민다. 이 이색적인 풍광에 반해 우리 부부는 겨울 내내 제주 차박을 택했다. 남편은 12월부터 석 달간 제주에 상주하고, 나는 한 달에 한 번 닷새간 머물며 신문사에 보낼 글을 쓴다.
하지만 이번 취재 길에 마주한 남편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조금 부끄러웠다. 공항 마중을 나오며 기름값과 주차비를 아끼겠다고 차를 차박지에 둔 채 버스를 타고 나타났을 때부터 그랬다. 동백 수목원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당신은 작가니까 들어가서 사진 찍고 와,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라며 입장료 몇 천 원에 등을 돌리는 남편을 보며 속상함이 밀려왔다.
우리 형편이 그렇게까지 아끼며 살아야 할 정도는 아닌데, 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자신을 깎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려한 동백꽃 사이를 걸으면서도 내 마음은 주차장에 홀로 남은 남편의 ‘지독한 가성비’에 가닿아 자꾸만 삐딱해졌다.
그 마음이 전환점을 맞이한 건 식사 시간이었다. 평소 혼자 있을 땐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던 남편이, 내가 내려온 닷새를 위해 일주일 치 생활비를 기꺼이 털어 나를 한식 뷔페로 데려갔을 때다.
“당신 올 때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글이 잘 써지지.”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 한마디에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돈을 아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비용을 아내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으로 환전하고 있었음을.
문득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떠올려보았다. 화려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보다, 좁은 차 안에서 온기를 나누며 전해지는 깊은 마음의 울림이 훨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편은 세상이 말하는 ‘낭만’ 대신, 본인의 불편함을 견뎌 만든 ‘사랑’을 내게 건네고 있었다.
이번 제주 취재는 단순히 동백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짠돌이라며 타박했던 남편에 대한 내 생각을 수정하고, 그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다시금 정의하는 시간이었다.
겨울 동백이 유독 붉은 이유는 추위 속에서도 온몸으로 응축된 사랑을 터뜨리기 때문일 것이다.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려준 남편의 인내와 투박한 밥상 위에서, 나는 올겨울 가장 진한 동백꽃 한 송이를 마음속에 피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