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을 허락하는 것부터

by 성희


​은퇴 후,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이제 무엇을 하며 살 것이냐고. 대단한 계획이나 거창한 목표를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 때도 있지만,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니?"

​나를 사랑하는 일은 그리 거대하지 않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 주는 것, 그 사소한 허락으로부터 나의 진짜 행복은 시작된다.

​길 위에서 배운 사랑, 핸들을 잡다

​퇴직 직후, 나는 남편과 함께 전국을 차박으로 누볐다. 그것도 모자라 내 차를 직접 배에 싣고 일본 홋카이도로 건너가 72일간의 여름을 보냈다. 남들이 보기엔 고생스러운 유람일지 몰라도, 낯선 길 위에서 핸들을 꺾을 때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길 위에서의 자유는 내가 나에게 준 첫 번째 '사랑의 허락'이었다.



​바늘 끝에서 찾은 평온, 코를 잡다

​찬바람이 부는 올겨울, 나의 사랑법은 조금 더 정적으로 바뀌었다. 거실 한구석에 똬리를 튼 털실 뭉치들 사이에서 나는 새로운 유람을 시작했다. 40년 경력의 고수 언니는 내 삐뚤빼뚤한 코를 보며 혀를 차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자 하나를 뜨기 위해 80코, 100코를 풀고 다시 잡으며 마침내 120코의 사투 끝에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실값 3만 원을 들여 1만 원짜리 모자를 만드는 이 '비효율적인 몰입'이 나를 웃게 한다. 친정엄마의 무뚝뚝한 반응이나 딸아이의 투정에도 내가 다시 바늘을 잡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지독한 몰입의 순간, 외로움도 시름도 사라진 '몰아지경(沒我之境)'의 나를 만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본업과 취미 사이, 균형이라는 이름의 사랑

​물론 나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일상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가족을 위해 보글보글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어묵을 볶는 전업주부의 본분 또한 나의 소중한 일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출근하고 난 뒤, 청소기보다 뜨개바늘을 먼저 집어 드는 나의 선택을 나는 기쁘게 수용한다.

​나를 사랑하기로 한 이후로, 내 삶의 우선순위는 '남의 시선'이나 '가성비'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되었다. 지독한 몰입은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다.


​행복의 시작점

​오늘도 나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한다. 갓 끓여낸 찌개의 따뜻한 김 뒤로, 다시 털실 바늘을 집어 드는 이 소박한 일과. 나를 사랑하는 일은 이렇듯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어, 어느덧 내 삶 전체를 행복한 몰아지경으로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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