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해고 : 정성이 길을 잃은 아침
언니의 장조림, 그리고 메추리알의 정성
"오늘 배운 돼지고기 장조림이 참 맛있더라. 다음 주에 오면 그거 해줄게."
한식 요리사 과정을 밟고 있는 언니의 전화 한 통에 내 손가락이 바빠졌다. 나는 그 길로 스마트폰을 켜 쿠팡에서 돼지고기 장조림용 고기를 골라 언니 집으로 배달시켰다. 솜씨 좋은 언니가 양념을 아끼지 않고 정성껏 요리해 줄 터이니, 주재료인 고기라도 내가 사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다. 고기만큼이나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추리알도 가득 넣었다. 짭조름한 간장 양념이 배어든 탱글탱글한 메추리알은 장조림의 화룡점정이다.
언니는 늘 내 몫을 더 두둑하게 챙겨준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두 개나 싸야 하는 동생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언니는 손이 참 빠르다. 돼지고기 장조림뿐만 아니라 멸치볶음, 어묵조림, 잡채까지 눈 깜짝할 새에 뚝딱 만들어낸다. 시장을 직접 누비며 고른 싱싱한 채소들 위에는 언니의 다정한 마음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아이들이 나물을 잘 안 먹는 것을 알기에 손 많이 가는 볶음과 조림 위주로 챙겨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예전에 넉넉히 해두었다며 건네준 깻잎장아찌까지 더해지니 냉장고 안은 어느새 언니의 정성으로 가득 찼다. 이모의 손맛을 유독 좋아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돌아오는 길, 가방의 무게만큼 내 마음엔 뿌듯한 근육이 붙는 듯했다.
습관이 멈춘 자리, 낯선 정적
하지만 그 뿌듯함은 채 사흘을 가지 못했다. 아침 6시. 39년 교직 생활이 몸에 새겨놓은 알람은 은퇴 후에도 정직하게 나를 깨운다. 습관처럼 쌀을 씻고 밥솥을 안쳤다. 남편이 먹을 샌드위치 패티를 굽기 위해 양배추와 양파를 다지기에 넣어 드르륵 갈고, 달걀 세 개를 톡 깨 넣었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패티 냄새가 주방을 채울 때쯤, 나는 채소 믹스를 씻어 식탁 위에 놓았다.
다음은 도시락통을 꺼내어 반찬을 담으려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오늘은 도시락이 필요 없는 날이구나.
멈칫, 도시락통을 쥐려던 손길이 허공에 머물렀다. 오늘 딸은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갑자기 구내 식당이 있는 구청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 동장님이랑 사무장님이랑 회식 있어. 내일은 친하게 지냈던 발령 동ㄱ들과의 저녁식사도 있어. 월요일부터는 구내식당 이용하면 돼." 딸의 담담한 선언과 마음은 엄마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지만 곧 나의 '해고 통보'였다. 아들 역시 2주 전부터 체중 조절을 이유로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고, 이번 주 토요일이면 시험도 끝이 난다. 9월부터 내 새벽을 지탱해 온 '도시락 싸는 엄마'라는 보직은 그렇게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를 사랑하는 법, '심취'
평소라면 도시락통 두 개를 채우느라 전쟁터 같았을 주방에 기이할 정도의 고요가 찾아왔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았다. 냉장고에는 아직 언니가 해준 돼지고기 장조림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도시락통에서 빛을 발해야 할 이 보물 같은 반찬들이 갈 곳을 잃고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갑작스러운 해고였다. 열정을 바쳐하던 일 중 하나가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무급도 모자라 내 돈을 들여하던 일이었지만, 엄마로서 애들을 위해 정성을 들였던 일이기에 허탈감이 찾아온다. 문득 깨달음이 스친다. 나에게 '나를 사랑하는 일'이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어떤 일에 내 온 마음을 다해 심취(深醉)해 있을 때였다.
39년 평생을 직장 일에 심취해 살았다. 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내 아이들의 식탁은 조기퇴직한 남편의 몫이었다. 퇴직 후, 나는 '도시락 싸는 엄마'라는 새로운 직장에 기쁘게 취업했고, 그 보람과 뿌듯함 속에 나는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을 찾았었다. 즐거웠던 일,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 이른 조기퇴직이다.
또 다른 심취를 꿈꾸며
이제 남은 일은 딸의 신혼집을 꾸미는 '시한부 페인트공' 하나다. 내 손으로 딸이 살 집 전체를 페인팅한다. 벽지도 문도 몰딩도 같은 색으로 칠했더니 집안이 환하고 넓어 보인다. 거실과 베란다는 끝냈고 이제 짐이 많은 방 세 개가 남았다. 짐만 옮겨주면 나는 다시 붓을 들 것이다. 하지만 이 일 역시 끝이 정해진 시한부 일자리임을 안다. 마지막 문틀까지 하얗게 덮이고 나면, 나는 다시 완전히 물러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무언가에 마음을 다해봤던 사람은 금세 또 다른 심취의 대상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9년의 교직 끝에 도시락 싸는 일에 마음을 빼앗겼듯, 도시락을 놓은 손으로 나는 또 다른 '나를 사랑하는 일'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5월부터 시작될 전국 차박지의 노을일 수도 있고, 하모니카 선율 사이로 흐르는 평화일 수도 있다. 딸의 신혼집 마지막 방에 화이트 페인트를 칠하며 나는 나만의 두 번째 퇴임사를 읊조린다.
"엄마라는 이름의 도시락 요리사, 충분히 심취했으므로 기쁘게 퇴직합니다."
내일 아침 6시, 나는 여전히 눈을 뜰 것이다. 비록 채울 도시락통은 없지만, 대신 나를 다시 설레게 하고 심취하게 할 새로운 삶의 지도를 펼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