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대신 미술

구조변경은 전문가에게 나는 캠핑카 꾸이는 일만 하자

by 성희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픈 머리를 식히는 것이며, 머리가 아플 때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지친 나에게 휴식을 허용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말이죠.

​남편이 직접 만든 침상 대신, 규격에 딱 맞는 깔끔한 침상 키트를 새로 들여놓았습니다. 정성스레 벽면에 페인트를 칠하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든 커튼까지 달고 나니, 차 안은 비로소 아늑한 나만의 방이 되었습니다. 침상 아래 넉넉한 수납공간을 보며 그곳을 채울 캠핑 도구들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잠시, 눈앞에는 구조변경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즐거운 미술시간이었죠. 하지만 다음은 골치가 아픈 수학시간입니다. 도면을 정밀하게 그리고, 차량의 무게 중심을 고려해 하중을 계산해야 합니다. 이 복잡한 구조변경이라는 숙제를 마쳐야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의 캠핑카를 이끌고 일본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화물차에서 캠핑카로 정식 명칭이 변경되어야만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차를 태워주기 때문입니다. 그 꿈의 길로 들어서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이 서류 뭉치들 속에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캠핑카로 인정받기 위한 이 절차는 마치 어려운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비장한 각오로 수식 사이를 오가며 씨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1급 정비업체에서 '튜닝 완료 등록'을 해줘야 하는데, 개인이 직접 작업한 차량의 서류를 맡아주겠다는 업체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려보아도 돌아오는 거절의 대답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올란도 차량마저 3월 16일까지 구조변경을 마쳐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간절함 끝에 연락이 닿은 한 업체로부터 반가운 견적서를 받으면서 복잡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계산하며 걱정했던 비용보다 훨씬 합리적인 금액이었고, 현재 적용되는 세제 혜택 덕분에 경제적인 부담도 덜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두 대의 구조변경을 모두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이제 모든 과정은 전문가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나는 돈만 지불하면 됩니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에 매달려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빌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보호하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픈 머리를 식히고 마음의 짐을 덜어준 이 결정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마지막 서류 작업은 대행을 맡기게 되었지만, 도면을 그리고 계획을 세웠던 그간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내 공간을 누구보다 잘 알기 위해 스스로 해야 할 숙제를 충분히 마쳤기에,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문가에게 키를 넘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곧 두 대의 차량 모두 승인을 받고 나면, 직접 만든 커튼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침상에 앉아 바다 건너 일본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오롯이 자유로운 여행의 기쁨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이 가벼운 설렘이, 앞으로의 길 위에서 나를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해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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