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가 내 품속으로 들어왔다.
ㅡ딸을 위한 리모델링, 결국 나를 위한 리모델링이다
이 집에서 보낸 열아홉 해 중 18년이라는 시간은 오직 일터와 가족만을 향해 있었습니다. 39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느라 정작 내가 숨 쉬는 공간은 마음속에 두지 못했습니다. 퇴직 후 전남 고흥에서 3년 동안의 귀촌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이곳 부산 집으로 돌아온 지 이제 7개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집에서도 베란다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는 섬과 같았습니다. 그저 우리 가족의 20여 년 세월이 차곡차곡 들어있는 창고이자, 쓰이지는 않으나 추억이 있어 버리지 못한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묵은 짐의 공간이었을 뿐입니다.
딸의 결혼을 준비하며 그 묵은 짐들을 과감히 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페인트를 칠하려 그토록 완강했던 공간을 비우고 나니, 비로소 가려져 있던 집의 숨구멍과 함께 내 마음의 빈터가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낡은 시간의 허물을 벗겨내고 긴 장대 끝에 웜화이트를 묻혀 천정과 벽면을 덧칠하는 행위는, 나에게는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덮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위로의 의식이었습니다. 두 번, 세 번 정성껏 덧칠하며 환해지는 벽을 보는 동안, 나는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이토록 정성을 다해본 적이 언제였나 자문해 보았습니다.
옆에서는 아빠가 락스 향기를 견디며 유리창틀을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흐르려던 마음을 꽁꽁 닫아걸었던 시커먼 곰팡이와 얼룩들을 닦아내자, 20년 전 우리가 처음 이 집에 발을 들였던 그날의 순백이 기어이 되살아났습니다.
작업을 마친 다음 날, 비워내고 닦아낸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것은 비단 낙동강의 눈부신 물결과 김해평야의 매혹적인 노을만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등산을 즐기며 산 정상에서의 조망을 그토록 찾아다녔건만, 정작 우리 집이 이토록 눈부신 '조망터'였음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19년 동안 내 등 뒤에 있었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당연한 행복들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묵은 감정들을 비워내고, 내 눈앞에 놓인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여백'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제 이 베란다는 몇 점의 화분만 남긴 채 모두 비운 채로 둘 것입니다. 그래야만 낙동강과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떠난 후 그 자리에 앉을 딸의 마음이, 그리고 나의 마음이 이 투명한 창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딸을 위해 시작한 이 리모델링은 결국, 나 자신을 다시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환한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