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딸의 감탄과 숨길 수 없는 세월의 민낯
"엄마, 이거 정말 우리 집 맞아? 인테리어 전보다 훨씬 넓어 보여!"
며칠 밤낮을 꼬박 매달려 벽면에 화사한 화이트 톤 페인트를 칠하고, 남편의 10년 전 솜씨를 빌려 장판을 새로 깔았습니다. 그 정성을 알아봐 주는 딸의 한마디에 어깨의 통증도, 붓질로 부르튼 손마디의 고단함도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거실 한복판에 앉아 바라보는 집의 풍경은 나 스스로 보아도 뿌듯하고 대견했습니다. 32평 우리 집이 이토록 넓고 환했던가 싶어 가슴이 벅차올랐지요.
그러나 평화로운 감상도 잠시, 유난히 내 시선을 붙드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새 벽지 위에서 마치 이물질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것들. 바로 누렇게 변해버린 스위치와 콘센트 박스였습니다. 28년이라는 긴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그 플라스틱 조각들은, 주변을 아무리 하얗게 칠해도 "여기는 여전히 오래된 구축 아파트야"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그것들은, 화사하게 변신한 우리 집의 '옥에 티'였습니다. 겉모습만 바꾼다고 진정한 변신이 아님을, 저 노란 흔적들이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30여 개의 숫자와 가벼웠던 나의 계산법
집안 곳곳을 뒤져보니 바꿔야 할 스위치와 콘센트가 30여 개가 훌쩍 넘었습니다. 원리는 간단해 보였습니다. 일자드라이버로 커버를 젖히고 십자드라이버로 나사를 푼 뒤, 전극 +, -만 맞춰 꽂으면 되는 일. 학교에서 배운 기초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관리실에서는 "셀프는 위험하니 전문가를 부르라"며 만류했고, 철물점 사장님은 27만 원이라는 견적을 툭 던졌습니다. 화장실 리모델링 사장님은 베란다 등 교체까지 포함해 50만 원을 불렀지요. 그 숫자들이 내 귀에는 그저 '비싸다'는 소리로만 들렸습니다.
"그깟 소품 몇 개 바꾸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오신 김에 짬을 내서 해주시면 안 될까?"
인색한 계산기가 돌아갔습니다. 일을 따내려는 성의조차 없어 보이던 철물점 사장님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무서운 돈'을 아껴보겠다고 14만 원어치의 부속품을 넉넉히 사 들고, 아들과 함께 직접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예비용까지 40개 가까이 준비하며 "여분을 너무 많이 샀나" 하는 아까운 마음까지 품은 채 말입니다.
땀방울 속에서 마주한 '기술의 무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틀렸습니다. 아들과 함께 첫 번째 콘센트를 뜯어내는 순간부터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론은 쉬웠지만 28년 된 집의 속살은 전쟁터였습니다. 전선들은 고집 센 노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좁은 박스 안에서 그 뻣뻣한 선들을 달래 가며 하나하나 연결하는 일은 결코 '짬'을 내서 할 수 있는 가벼운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손끝이 허얗게 질려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철물점 사장님의 무심함 속에 담긴 '자부심'을 읽어냈습니다. 타인의 전문성을 '짬 내서 하는 일' 정도로 치부했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전문가들이 부른 그 값은 단순히 물건을 바꾸는 비용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을 책임져야 하는 '숙련된 기술의 무게'였습니다.
우여곡절은 계속되었습니다. 새로 산 무드등이 매립형이라 설치가 안 될 것 같아 포기하려 할 때, 남편이 모셔온 관리실 전기 기사님의 도움으로 천장을 열어보니 기적처럼 사이즈가 딱 맞았습니다. 절연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던 과거의 투박한 흔적을 걷어내고 브래킷으로 단단히 연결하는 그 '정석'의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비로소 타인의 숙련된 노동에 대한 깊은 예우를 배웠습니다. 결코 비싼 것도, 쉬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필요 없어진 전화기 박스와 TV 단자들은 맹 박스로 깔끔하게 덮어버렸습니다. 전선을 뽑지 않아도 되니 작업은 수월했지만, 그 평평해진 벽면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우리 삶도 때로는 복잡한 과거를 억지로 뿌리 뽑기보다, 정갈하게 갈무리해 덮어주는 '맹박스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남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
이제 우리 집의 모든 빛은 따뜻합니다. 30여 개의 스위치를 켤 때마다 나는 기억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인 동시에 타인의 전문성을 온전히 인정하는 일임을 말입니다. 타인의 노동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눈을 가질 때, 비로소 내가 걸어온 39년의 길도 세상 앞에서 당당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이 낡은 콘센트들을 갈아치우며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철물점 사장님께 마음속 깊은 사과를 전합니다. 남을 존중하는 것이 결국 나를 가장 깊이 사랑하는 길임을 깨달은 지금, 28년 된 우리 집은 그 어느 때보다 품격 있게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