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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Jun 29. 2024

금세기정원-전남민간정원제 4호-2

고흥에서 찾은 간척사업 성공신화

김종욱 회장님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한 이유와 글을 2편으로 나누어 쓴 이유는  우석기념관을 들어가면서 느낀 새로운 세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장님이 소개해주신 경영고문님을 따라 우석기념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잘 알려지지 않는 개척시대 성공드라마 한 편을  보았습니다.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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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기회장님

김종욱 현 회장님의 아버지이신 고 김세기 회장님은 산청에서 태어났고 유학을 배우셨지만 마산에서 쌀장사를 하셨답니다. 그러다 쌀을 생산할 농장이 필요해 간척사업을 하게 되었다는데요. 간척하기 좋은 땅을 찾아 여기 고흥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곳 고흥은 농경지의 40%가 간척지라고 합니다.


1964년 이 농장의 간척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마한센인간척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 1963년이니까  3년 전 후입니다. 오마간척지처럼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그곳에서처럼  리어카와 삽으로 방조제를 막기 시작하셨네요.


리어커에 돌을 실어 바조제를 쌓는 모습
삽으로 막는 방조제 공사

저는 요즘 들어 방조제를 많이 가보았는데 진도에 있는 윤선도가 쌓은 고산둑처럼 조선시대에 쌓은 둑도 있는데 쌓아놓으면 무너지고 또 파도가 쓸어가 버리고 하는 바람에 둑을 쌓기가 어려웠다는 기록들을 보곤 했습니다. 그 삽 한 자루와 신화를 이뤄내기 위한 김세기 회장님과 작업자들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김세기 회장님은 폐유조선을 사다가 돌을 가득 실은 채  바닥에 구멍을 뚫어 가라앉혀 그것을 파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삼아 방조제를 쌓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때 간척한 들의 사진입니다. 가까이 보이는 것은 금세기 정원이고 동그라미 해 둔 부분이 죽암 방조제랍니다. 방조제는 650m로 길이는 길지 않지만 파도가 너무 센 곳이라 합니다. 남파랑길을 걷는다면 63코스 종점입니다. 저곳에 폐유조선을  이용해 공사를 하신 후 성공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그것은 정주영 회장이 서산간척할 때 사용했던 방법인데요. 그곳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도입한 겁니까? 하고 질문하니

아닙니다. 우리 죽암간척사업에서 처음 사용된 기법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우리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주영 회장이 고안했다고 생각하는 이 기법은 김세기 회장의 아이디어랍니다. 김세기 회장님의 아이디어는 이름 있는 기업인이  배워가 쓴 덕분에.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묻혀있네요.


아! 무서운 비, 푸른들이란  이 무서운 비만 극복해 내면 푸른들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라는 말로  간척할 당시 어려운 기상상황을 말한다 합니다. 그 소망은 끈기와 집념으로  끝내 성공신화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갑니다. 계단 위에 자전거가 달려있고 글귀가 있습니다. 이곳 간척지를 누비고 다니신 김세기 회장님의 자전거입니다.



아래 시를 보면 김세기 회장님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삽 한 자루의 신화

                             김세기 회장님을 노래함

                                             김종


수평선으로 떠올랐던 바다가

지평선을 눕힌 대지가 되었더이다

곡식들이 꽃등을 달고 하늘 향해 손 흔드는

풍요와 가나안을 펼쳤더이다


역사가 시작되던 1964년 8월

둥지 틀어 들어선 이방의 낯선 탕 고흥

볼수록 푸른 하늘이 핏줄 같은 길을 내고

산보다 덩실한 부자의 성을 쌓아 올린

행복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죽암농장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거니 거머쥔 삽 한 자루가

불가능의 어둠만을 갈아엎기 수백 차례

울타리 없는 200만 평 공화국 건설이

하늘보다 높은 깃발 올렸더이다


자전거 바큇살이 햇빛달빛 번갈아 입맞춤하며

두 손의 집념은 무섭도록  달아올랐더이다

대물린 가난을 묻고 절망은 끝없이 태우셨더이다

꿈이 되고 그 꿈이 보석으로 반짝이던. 시간

숲처럼 풍성한 풍년이 들었더이다


저녁 잠자리에서 하루 잘못은 세 번 허물 벗고

책 안 보고 눕지 않으시던 80 평생 실천궁행이

씨 뿌려 김매는 자 배부른 세월을 수확할 수 있다지요

집념의 불빛이라야 남다른 새벽을 불 밝힌 수 있다지요

기적 나씩 보듬고 웃음 웃을 수 있다지요

어깨춤. 덩실한 세상에 살아갈 수 있다지요


그 후 죽암농장, 죽암건설, 가래떡떡공장, 목초 감는 필름제조 4가지 사업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 금세기 농장을 들어올 때는 민간정원의 하나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간척사업으로부터 농장경영, 건설사업, 농기계사업까지 성공신화를 이룬 기업인의 업적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우석기념관과 진디광장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휠체어도 올라갈 수 있게 건울을 삥 돌아 오를 수 있는 길이었고 우석기념관이 잠겨있어도 바깥에서 옥상으로 오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우석기념관 동쪽으로 보이는 간척지의 모습입니다. 많은 부분이 일반인에게 분배되고  죽암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진으로는 들의 모습을 담지 못하였으나 간척지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이 원형잔디밭은 예전에는 직원들의 축구장이었답니다. 현재는 그분들이 나이가 드셔서 야유회장소등으로 이용된다고 합니다.


서쪽으로는 여인이 누워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한 두방산이 보입니다. 병풍산이 똑 튀어나온 배꼽이라는군요. 지난번 두방산 등산 때  잔뜩 까었던 해무로 바다와 육지의 구분이 잘 가지 않았던 곳이 바로 여기었구나


직원수가 80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만난 분은 5명 정도인데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특히 말이 잘 안 통한 필리핀 친구의 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직원들을 대하는 대표님의 모습에서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성공으로 이끌고  이곳으로 돌아와 계시는  여유 있고 후덕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의 조성도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서 조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이 직원들도 포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흥의 발전에도 기여를 하고 세상을 향한 기부도 많이 하고 있다 합니다.


장수호힐링정원의 백대표께서도 김종욱 회장님은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을 지닌 분이라 하십니다. 김세기 회장님의 도전과 김종욱대표님의 따뜻한 눈길이 있는 금세기 정원을 보고. 오니 마음이 흐뭇합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아. 지금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분들의 개척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발견한 곳입니다. 

매일 4명의 인부들이 풀을 매고 잡초 관리를 하고 있답니다. 이 넓은 정원은 관리하기 어려움이 많을 텐데 무료로 개방하고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대표님께 감사드리며 끈질긴 집념으로 삽 한 자루로 간척사업 성공신화를 이룬 김세기 회장님께도 감동받았습니다.

훈훈한 이야기가 금세기정원을 다시 보게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눈길이 주는 감동은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살아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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