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한 벌보다 적절한 치료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 흡연 문제
내가 있는 학교는 해마다 가을이면 1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2박 3일, 수련 활동을 다녀온다. 담임인 내 앞에서 P군이 담배를 피웠던 것은 작년 수련 활동 때의 일이다.
P군은 순박한 아이였지만 일찌감치 담배 맛을 알아 버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땐 이미 그 문제에서 자기 조절이 어려운 상태였다. 교칙이 엄한 이 학교에서의 생활과 녀석의 습관화된 흡연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어서, 녀석은 1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흡연으로만 두 차례 선도위원회를 다녀왔다. 이 학교는 선도위원회 세 차례면 퇴학 또는 강전(강제 전학)이니, 이러다가는 개교 이래 최단 시간 퇴학이라는 신기록을 세울 판이었다.
P군은 착하고 다정해 많은 친구들에게 아낌을 받는, 아주 괜찮은 녀석이었지만 흡연이 지독한 습(習)이 돼 버려 학교 수업을 다 들은 후 집으로 가는 그 잠시 동안을 참지 못하고 꼭 학교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연초를 태웠다. 학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하나같이 극진한 부모의 마음으로(?) 자기네들 단지 안에서 흡연하는 학생들이 보이면 투철한 신고 정신을 발휘한다. 그러니 아무리 구석진 곳에 짱박혀 있어도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연초를 태우는 행위는 선도위원회로 가는 급행 티켓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다.
2학기가 시작되자 얼마 안 있어 수련 활동을 가게 되었다. 수련 활동을 가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두 밤을 함께 보내는데 P군이 담배를 챙기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이번에 또 흡연하다 걸리면 P군은 퇴학을 당할 테고 숙소에 도착하면 모든 선생님들이 남학생들에게서 음주와 흡연의 기미를 찾으려 눈에 불을 켤 테니, 담임인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데 녀석은 강원도로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유행가를 신나게 불러 재끼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들의 선도위원회 때문에 학교에 와 눈물과 한숨이 그치지 않았던 P군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어떡하든 녀석을 여기서 졸업시켜야 할 텐데... '
숙소에 도착해 짐을 부리자마자 P군을 따로 불러 말했다.
"OO야, 가지고 온 담배, 나한테 맡겨라. 니가 가지고 있다가 잘못 걸리기라도 하면 선도위원회에 또 가고, 이번에 또 가면 퇴학인 거 알고 있지?"
순한 소의 눈을 하고서 녀석은 '저, 담배 안 가져 왔어요.'라는 뻔한 거짓말을 할 생심조차 내지 않는다.
"그 대신, 정말정말 못 참겠으면 선생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 그럼 선생님이 담배를 가지고 나갈 테니, 선생님이랑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선생님 있는 데서 담배를 피워라. 그래야 혹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이 막아 주지."
그렇게 녀석의 담배는 담임의 수중으로 들어 왔고, 나는 녀석이 담배를 못 참고 연락을 해 올 때를 대비해 밤중에 침대에 눕지 못하고 휴대폰 볼륨을 최대로 해 놓은 채 의자에 앉아 졸았다.
수련 활동 첫날 밤은 새벽 2시쯤에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
"선생님, 죄송해요. 저, 담배 좀..."
아이를 데리고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 나가 그곳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건네 주었다. 녀석은 몹시 멋쩍은 표정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차마 담임 선생님 면전에선 흡연하기 곤란했던지 육중한 등을 돌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뻐끔뻐끔'이 아니고 '쭈왑쭈왑'이었다, 녀석의 절급한 흡연은.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한 개비를 다 태웠는데 그사이에 들이쉰 숨이 다섯 번이나 될까. 사흘 굶고 밥을 먹으면 이렇게 먹을까.
"선생님, 저 한 개비만 더..."
그렇게 담배 두 개비를 삽시간에 피우고 난 녀석은 아까보다 한결 안색이 편안해 보였다. 다시 녀석에게서 담배와 라이터를 받아 들고 한마디 해 주었다.
"잘했다. 담배야 안 피우면 가장 좋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되냐. 그래도 이렇게 참았다가 약속한 대로 선생님 있는 데서 담배를 피우니 그것만도 참 대견하다."
수련 활동 둘째 날 밤은 새벽 4시가 넘어 녀석이 전화 연락을 해 왔다. 어제는 새벽 2시였는데 오늘은 새벽 4시다. 어제보다 두 시간 늦은 시간이었고, 난 그 2시간에 담긴 녀석의 노력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담임에게 송구한 마음에 제 딴에는 참느라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하지만 담배가 어디 그리 쉽게 끊어지던가.
수화기 너머 녀석의 목소리.
"저, 선생님. 제가요... 참아 보려고 했는데요, 도무지 잠을 못 자겠어요."
이날 새벽엔 2분도 채 안 되었을 시간 동안 무려 세 개비를 피웠다. 덩치도 큰 녀석이 널찍한 등판을 한껏 웅크리고 쭈왑쭈왑 허겁지겁 연초를 태우는데, 얼마나 세차게 빨아 대는지 담배 연기가 공중으로 피어오르는 장면을 그날 난 못 보았던 것 같다.
어깨를 두드려 녀석을 숙소로 돌려 보내고 나서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결코 혼자서 담배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흡연을 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벌점과 징벌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라는 것을.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흡연 학생들에게 징계를 가하기만 할 뿐 흡연 치료와 관련한 적절한 지원은 못해 주고 있다.
이건 가혹한 넌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