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에 쓰인 이토록 많은 역사
지난주의 일이다.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시다가, 오래전 학교를 떠나 본당 소임을 맡고 계신 마리아 수녀님을 뵙고 왔다.
그동안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셨고, 작년부터는 시흥에 있는 한 본당에서 지내신다.
올해 종신서원 30주년이어서 오랜만에 찾아뵈었는데
못 뵌 사이 수녀님의 안색이 눈에 띄게 쇠하여 적이 놀랐다.
이제 연세가 높으시니 수녀원 본원에 들어가 편하게 계시면 좋으련만
수녀님께선 아직 본당이 좋다 하신다.
하지만 낡디 낡은 성당을 보면서 마음 깊이 근심이 서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본당이 있는 지역은 오랫동안 도시빈민운동이 펼쳐져 왔던 마을로 이름난 곳이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높은 아파트들이 사방에 대숲처럼 솟아 있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서울에 직장을 둔 젊은 사람들은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성당에 나와 두 손을 모으는 이들은 재개발 이전부터 이곳에서 살아 온 토박이들이다.
그날 수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본당의 신자들은 대부분 이 동네에서 오래 사신 분들이에요. 이 동네 분들이 고생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미사 때 성체 분배를 하잖아요. 그러면 성체를 모시려고 이렇게 두 손을 모아 내미시는데 손이 온전치 않은 분들이 참 많아요. 크게 흉이 지거나 손마디마다 굵게 옹이가 진 사람도 많고, 손가락이 굽거나 손가락 또는 손마디가 없는 사람도 있어요. 그 손을 보면 그분들의 지나온 삶이 저절로 헤아려지지요."
말씀을 들으니 그렇겠다 싶다.
사람이 자신의 얼굴에 쓰인 역사는 화장으로 감출 수 있어도 손에 배인 기록은 감출 수 없지 않은가.
화가 이중섭도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상대의 손을 보았다고 한다.
"이중섭은 말보다 손을 믿는 사람이었다. 예술가를 만나면, 눈을 맞추고 말을 붙이는 대신 고개를 숙인 채 들었다. 그 자세를 취하면 상대의 손이 보였다. 김봉룡은 손가락이 걀쭉하며 마디마디가 튀어나왔다. 크고 짙은 흉터가 손등에 넷, 손바닥에 둘, 손목에 하나 있고, (중략) 흙을 만지는 옹기꾼의 손이면서 나무를 다루는 목수의 손이고, 옻을 내고 정제한 후 바르는 칠꾼의 손이면서 연필이나 붓을 놀리는 화가의 손이고, 자르고 깎고 붙이는 공예가의 손이었다. 한 사람의 손에서 이렇듯 많은 역사와 기억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_ 김탁환, "참 좋았더라", 남해의봄날, 2024
손은 참 신비해서, 때론 만권의 책보다 호한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때론 말의 취약함을 보듬고 빈틈을 메꿔 말로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사람의 꾸밈 없는 진실과 진심을 이해하게 해 준다.
이러한 손의 신비를 오롯이 시로 그려낸 분이 백석이다.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_ 백석, '고향'
학년 초의 분주한 시기가 지나면, 오래 못 만난 벗을 찾아가 한 손은 마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소줏잔을 기울이며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