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 수 없는 펜.)
어쩜 내게 준 행운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듬어보라는 뜻 같아
처음으로 다시 쓰기로 돌아가 본다.
항상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정리를 한다든지 얼굴이며 머리를 단장하고서야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그건 3시에는 항상 일터에 나가야 하는 삶에 습관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하다가도 먹고사는 그 자리에 준비 없이 나가는 건 내 삶에 예의가 아니었다.
글을 쓰려고 식탁 앞에 앉은 그날도 내 단장을 다 마친 후였다.
완벽하지도 못하지만 흐트러지고 게으른 내 모습은 싫다.
열심과 바지런은 곧 나다
그래서 죽어라 열심히 하는 습관이 생긴듯하다. 그 열심은 내게 속도였을까?
나의 첫 글은 그렇게 서사 없이 가파르고 빠른 경주 차처럼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급히 달린 글이었다.
내게 두 번 세 번 아니 평생 써도 된다는 브런치의 기회를 얻었으니 속도 조절 잘하며
주위를 잘 살피면서 달려보기로 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찬찬히 나를 둘러보잔 마음으로 책도 주문하고 책꽂이도 정리 겸 훑어 본다.
서울대 인문학 글 쓰기 수업이라고 쓰여있다.
이상원 교수의 글감 240.
용감한 글 쓰기 노트.
읽어야 할 건 없고 죄다 써야 하는 책.
이런 책도 있구나 했지만 이런 책을 판다니 하며 세상 참
편하게 돈 번다며 비안냥 거리는 내 마음과 한편 내 노동의
가치가 한없이 작아지고 짧은 학력이 지리멸렬해지기 까지 한다.
그런 책을 냅다 집어 들고 계산을 하고 펼쳐본다.
240항 문의 글쓰기라는데 왠지 그 물음들은 수학이라면 치를 떠는 내게
어떤 방정식 같은 X와 Y가 움직이는 이유를 질책하며 묻는 수학 선생님 같다.
그 질책 앞에서 한 없이 쪼그라드는 나 자신을 난 경멸 했었다.
똑같은 돈 내고 똑같은 수업 하는데 누구는 알아듣고 누구는 선생님의
말은 들리지 않으며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 있고 부모님에게 죄책감까지도 들게 하는...
실상 저걸 배우면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 거냐 물으며 내 정신세계는
돈이나 벌어 맘껏 쓰고 사는 저 세상에 가 있었다.
항상 그날의 날짜와 당번을 불러 두 사람이 같은 문제를 풀게 하는 저 선생의
못된 수업 방식과 술 술 써 내려가는 칠판 한쪽과 분필 만은 톡톡 찍어 누르고
있던 한 모퉁이의 기도 없고 꿈도 없던 아이.
난 볼펜과 연필을 두고 고민한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분명.
무엇을 쓸 수 없었다는 난감함이었다.
지워지지 않을 볼펜으로 써야 할까 지우고 고쳐 쓰기가 가능한 연필로 써야 할까의
진실과 가려진 그 무엇과의 고심이었다.
나도 나라는 사람을 1도 모르는 관계.
그렇게 그 책은 5년을 덩그러니 채우지 못하고 책꽂이에서 누런 표지 위에
허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