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총을 잡는 두려움.

(주의사항)

by 진솔

그날도 많은 책들이 채워진 그 공간 속에 내 휑한 마음은 걷고 있었다.

모아지는 조명의 조도에 소리 죽여 또각또각 연극을

시작하는 주인공처럼.

조용하고 아늑하고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곳은 편안하다.

시끄러운 생각들이 끼어들지 못하는 그곳은 내가 찾는 이유였다.

딱히 책에 몰두한 기억도 없다.

다만 책을 보는 척 연기를 하는 배우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더 이상 그 배우 놀이가 싫어졌을 때쯤 읽지 못하고 써야 할 것만 있는

그 책을 만나는지 모른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닿을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단" 한 번이라도

스치고라도 지나간다는 말을 예전 어떤 스님의 말씀 중에 담아두었던 게 기억난다.

그 연을 맺고자 하는 것도 나의 노력과 마음이 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고.

내게 닥치는 시련이 내 가 풀어야 할 과업이며

우리는 그것들을 풀며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고 전생의 업을

소멸해 나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글은 나 조차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나와 인연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땐 몰랐다. 글을 쓴다는 일이 내게 어떤 의미를 던져 줄지에 대해서.

그 책은 쓰기 전 주의 사항이 있었다.

글 읽기보다 써야 되는 공백이 많으니 놀라지 말라는 경고 문구와

숙제처럼 부담 갖지 말라는 안심글과

순서대로 말로 네 맘 가는 곳 펼쳐서 쓰고 싶은 곳부터 써보라는 구속 없는 자유

꼭 손으로 쓸 필요 없다는 말은 발로 써도 된다는 말인가 하는 엉뚱한 상상력들에 이어

글감도 내 맘대로 수정해도 된다는 주체성까지 던져주며

필요하면 자료를 참고해도 좋다 글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어렵고 힘들고 고난이며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여럿이 함께 해보는 것도 괜찮은 이일을 맘껏 나누어 보라는 협업까지 주의사항을

보며 첫 문구를 빤히 쳐다보게 한다.

툭 던져진 종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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