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띠인가? 그 동물과 당신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소띠.
한 단어를 써놓고 연필의 짙음이 다른걸 보니 그 책을 다시 한번 펼쳐 보았을 때
덧쓴듯하다.
나름 구체성을 찾는듯한 부지런함 우직함 잘 참음 믿음 마지막엔 일복 많음.
나는 일복 많은 게 아니라 일을 안 하면 힘든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사람.
돈이 없어 그랬고 무언가 하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간절함을 알고 있었기에.
학교 다닐 때도 빨리 집과 학교를 벗어나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이 뿐이었다.
결혼 후 시골 땅에 시아버지가 너른 집 한 채를 지어 같이 살았다.
집도 넓고 밭도 넓은데 다들 직장에 다니니 관리자는 나 하나였다.
그 어린 나이에 집사가 됐다.
시아버지의 욕심만큼 개며 닭이며 칠면조까지 동물 농장까지 관리해야 하고
새벽밥에 저녁까지 온통 돈도 안 되는 노동들 뿐이었다.
큰 시골집과 마당을 매일 쓸고 닦고 밥 차리고 하는
일들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갑갑 그 자체였다.
소 띠로 태어난 걸 제일 많이 후회하고 원망한 때이다.
지긋지긋한 그곳에 정이 떨어져 갈 때쯤 갑작스러운 시부모님의 황혼 이혼이
벌어지는 사태가 생겼다.
예전에 점을 본 적이 있다.
그 점쟁이는 한숨 쉬며 얘기한다. 가끔 부채를 퍼드덕거렸다.
너는 조상이 살린다고 부모 형제랑 가까이 붙어 있지 말고 멀리멀리 떨어져 살라고
부모 덕도 형제 덕도 돈을 써도 공도 없으니 너나 잘 먹고 잘 살라고
가진 복은 너 하나뿐이라고 그때의 그 말이 기어이 맞아 들어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어찌어찌 서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열렬히 치고받고 살던 친정부모님은 늙어 조용히 사시는데 별 문제도 없어 보이던
시부모님의 황혼 이혼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노인들의 이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 뒤에 일본의 황혼이혼 물결이 대서특필 뉴스에 보도가 되었으니
한국 시골 깡촌에 처박힌 내가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황은 늘 겹쳐 오기 마련이었는지 시골에서 서울로 급기야는 삶의
터를 바꾸는 일까지 생기며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직업을 가지며 먹고사는 고민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장사가 뭔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우리의 성실은 다행히 돈과 연이 맞은 듯
큰 돈벌이는 아니지만 먹고 가르치는 데는 큰 무리 없었고 나의 눈치 빠른 센스는
직원 없이도 손님들 불편사항을 잘 알아 챙겼다.
그 많은 일들과 힘듦도 돈 없고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난
이쯤이야 하며 거뜬히 일복 많은 내 삶을 일이 꼭 필요한 삶으로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그 힘듦을 소리 없이 참아내는 내 모습은 정말 황소다. 음~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