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작고 초라하다고 느낀 순간.)
어릴 적에 주산학원이 있었다.
언니는 주산 학원에 다니고 동생은 병설 유치원에 다녔다.
더 웃긴 건 언니는 유치원도 다녔다
난 유치원도 주산 학원도 다녀본 적이 없다.
더 정확히는 주산 학원에 다니는 언니가 부러웠지만 보내달라고
떼도 써보지도 않았다.
나는 가끔 언니가 다니는 주산학원에 얼쩡댈 때가 있었다.
어떤 남학생이랑 낄낄 대고 있는 언니를 자주 보았다.
속으로 난 딴짓 안 하고 열심히 주산 잘 배울 수 있는 데를 되뇌며
조용히 언니에게 욕을 해본다.
"미 친 년"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거길 보내 줄 수 없는 형편이란 걸.
아니 소리 내지 않는 이에게는 관심조차도 주지 않는 사회였다.
가 "족"같은 사회는
언니는 상고를 보낼 심상이었고 동생은 일을 해야 하는 부모님 때문에
보살필 사람이 없어서였을 것이다라고 그 소리 없는 아이는 상황을
에둘러 정리해 버린다. 스스로 초라해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림보다는 집에 와서 부모님 대신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내겐 먼저였고 언젠가부터는 당연시되어 버렸다.
잘하지 못하는 공부는 재미도 없지만 발표며 문제 풀이에 재능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도 싫고 해서 당연시된 그 일들을 그냥 묵묵히 했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특별한 문제도 잘난 것도 없는 내게 관심은
안팎에서도 없는 그냥 작은 존재였다.
아니 어쩜 작고 초라한 모습이 되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나는 남자 하나만 만나면 그 집을 떠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결혼까지 이르게 한다.
사랑받은 적도 사랑한 적도 없는 여자의 결혼이란 어땠을까?
딱히 존재되어본 적 없는 그 여자의 자존감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한단 말인가?
만난 남자도 비슷하다.
아니 복 없는 것까지 똑같다.
슬프다.
이 대목은 어린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장면 보다 더 화가 난다.
누가 알아준다고 미친년이 거길 뛰어들 생각을 했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어느 자리에 설 사람은 못되었지만 관심받고 싶은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너 대단해 란 말 한마디. 어떻게 이 일을 해낸 거야?
응? 우와 ~잘했네
어려서 내 부모에게 듣지 못했던 그 말.
성인이 된 지금 난 무엇을 해 내 본 사람은 아니지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림도, 글도, 팝송도, 먹고사는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