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총기 사용설명서 5장.

(잠도 잊을 만큼 무언가에 몰두했던 경험)

by 진솔

내게 처음으로 주워진 여행의 기대는 설렘보다는 일에서의 도피다.

아무것도 안 해보기, 맨날 남의 밥상만 차려주고 살았으니 누워서 밥상 받아보기,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고 낮부터 막걸리 마셔보기,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기, 하고 싶은 것 만 하기.

여행가방이 아닌 짐을 챙겨야만 했다.

그래도 한 달 살기 아닌가.

또 평생을 붙어 살아온 저 아저씨와 뭘 해야 할까 은근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하자며 그 아저씨는 취미로 대금을 불었으니 피리를 맘껏

불고 나는 그림을 맘껏 그려보기로 한다.

그야말로 한량이 되어보기로 한 거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엄마에게 그것도 처음으로 그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날 며칠 고심과 얻어먹을 욕의 용량까지 생각하며 잠 못 이루고 꺼내

돌려받은 말은

밥 먹고 살기 힘든 직업을 택한다며 미친년 취급 당하고 내게 되돌아와 잊혔다.

우리 집은 예술인 보다 돈벌이하는 사람이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 형편을 너무 잘 알기에 두 번 다시 꺼내지 않는 포기를 택했다.

짐을 잔뜩 실은 차를 배에 싣고 룸으로 된 독립공간으로 갔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그곳은 소박하고 안락했다.

큰 창문 너머로 파란 바다가 너울 덴다.

우린 말없이 그 바다만 한참을 바라보며 서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얼마만의 자유인가?

좋은 여행은 아니다. 아픈 여행이었다.

단 1도 남아 있지 않은 에너지.

바닥까지 끌어모아 써버린 빛없는 영혼.

과연 한 달을 쉰들 저 비어버린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비어갈 통장의 잔액을 벌써

걱정하고 있는 나의 소리 내지 못하는 한숨소리가 뒤엉킨 채 눈물이 흘렀다.

조용히 나갔다 오더니 맥주 한 캔을 내민다.

4시간 반 정도를 창문 밖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을 멍 때렸다.

드디어 제주 상륙.

네비 김여사의 안내로 김녕의 커다란 풍차를 옥빛 바다에 숨을 기대며

모 방송에서 김건모 씨가 시키던 기다란 갈치조림으로 제주 살이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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