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도 잊을 만큼 무언가에 몰두했던 경험)
내게 처음으로 주워진 여행의 기대는 설렘보다는 일에서의 도피다.
아무것도 안 해보기, 맨날 남의 밥상만 차려주고 살았으니 누워서 밥상 받아보기,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고 낮부터 막걸리 마셔보기,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기, 하고 싶은 것 만 하기.
여행가방이 아닌 짐을 챙겨야만 했다.
그래도 한 달 살기 아닌가.
또 평생을 붙어 살아온 저 아저씨와 뭘 해야 할까 은근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하자며 그 아저씨는 취미로 대금을 불었으니 피리를 맘껏
불고 나는 그림을 맘껏 그려보기로 한다.
그야말로 한량이 되어보기로 한 거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엄마에게 그것도 처음으로 그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날 며칠 고심과 얻어먹을 욕의 용량까지 생각하며 잠 못 이루고 꺼내
돌려받은 말은
밥 먹고 살기 힘든 직업을 택한다며 미친년 취급 당하고 내게 되돌아와 잊혔다.
우리 집은 예술인 보다 돈벌이하는 사람이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 형편을 너무 잘 알기에 두 번 다시 꺼내지 않는 포기를 택했다.
짐을 잔뜩 실은 차를 배에 싣고 룸으로 된 독립공간으로 갔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는 그곳은 소박하고 안락했다.
큰 창문 너머로 파란 바다가 너울 덴다.
우린 말없이 그 바다만 한참을 바라보며 서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얼마만의 자유인가?
좋은 여행은 아니다. 아픈 여행이었다.
단 1도 남아 있지 않은 에너지.
바닥까지 끌어모아 써버린 빛없는 영혼.
과연 한 달을 쉰들 저 비어버린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비어갈 통장의 잔액을 벌써
걱정하고 있는 나의 소리 내지 못하는 한숨소리가 뒤엉킨 채 눈물이 흘렀다.
조용히 나갔다 오더니 맥주 한 캔을 내민다.
4시간 반 정도를 창문 밖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을 멍 때렸다.
드디어 제주 상륙.
네비 김여사의 안내로 김녕의 커다란 풍차를 옥빛 바다에 숨을 기대며
모 방송에서 김건모 씨가 시키던 기다란 갈치조림으로 제주 살이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