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총기 사용 설명서 6장.

(내가 하는 한 가지)

by 진솔

한 달 살 집은 단독 2층 타운 하우스로 형성된 구좌읍에 자리하고 있었다.

구좌읍은 당근 밭이 유명하다.

검은 토양과, 뺑 두른 현무암 돌담, 파릇하게 덮고 있는 녹색의 향연은

내 숨길을 터주고 있었다.

마트에서 흙 당근을 살 때 가끔 검은흙이 묻어 있던 게 기억났다.

마을이기보다는 몇 가구들이 있는 한 적한 시골 풍경이다.

드문 드문 묘지들이 있다 생각했는데 도착한 숙소 한가운데도 떡 하니

돌로 둘러쳐 있는 묘지가 있다.

서늘하지도 무섭지도 그냥 자연스러운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도착하니 관리인 부부가 마중한다.

젊잖고 소박한 인상이시지만 전직이 딱 공무원 이셨을 거 같았다.

무덤에 대한 제주인들의 삶을 먼저 이해시키신다.

오는 사람마다 놀래고들 많이 물은듯하다.

집 안내와 쓰레기 분리수거 필요만큼 제공되는 수건 등

어디서 왔냐 묻고 당신들의 이야기도 하신다.

대구분들이셨고 공무원 은퇴 후 제주여행의 환상이 남아

직업과 제주를 택하였는데 지금은 섬에서 육지로 내 맘대로 가고 싶다고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고.

여행은 여행이지 삶이 아니다고 하신다.

이쯤 되면 난 작두를 타야 할 듯하다.

외모만으로 사람의 직업을 맞추는 내공을 가질 줄이야.

그 나이 정도면 삶과 해오던 일 가지고 살아온 성격 들은 얼굴에

고스란히 남는 전과가 아닐까?

나는 어떤 삶의 전과자가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낯선 곳의 집과 나만의 공간 오롯한 내 시간들.

주차장 옆에 잔디정원 제주스러운 야자나무 옆의 나무 테이블.

옆집과는 너무 가깝지 않은 거리와 다른 출입구의 위치.

모든 게 독립적인 이 풍경에 나를 슬쩍 끼워 넣어본다.

아~ 이렇게 살고 싶다.

난 1층에 그 아저씨는 2층을 쓰기로 하며 철저히 독립을 선언했다.

화방에서 그림에 필요한 것들을 대충사고 마트에서 제주막걸리와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곶자왈을 가끔 산책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멈춤의 시간을

가졌다.

오롯이 나로 향했던 시간만 움직이는 것처럼.

눈 뜨면 그리고 잠 안 오면 그리고 한 잔 마시고 그리고 나의 그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슴슴한 제주 막걸리 맛은 물맛이다 그런데 당기는 그 맛에 취한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림을 그린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 옆에 라디오 방송국이 생겼다.

그땐 뭐라 썼는지도 기억 안나는 엽서를 매일 쓰고 날이면 날마다

이문세 노래만 신청하는 똘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니 엽서의 내용이 별로라서가 아닌 그것만 신청하는

사람이라 소개가 안 되었을 수 도 있다.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린 거 또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도 하나만 잘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그것만 하는 사람.

난 그랬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저스틴 비버의 오프 마이 페이스만

왠지 천국으로 데리고 가줄 것만 같은 그 노래만.

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내 그림은 영 딴 사람으로 둔갑한다.

무엇을 향해 그렇게 쉬지 않고 했을까?

할수록 그 길에 미치도록 뛰어들고 싶어지는 그것만 하며 살고 싶은

욕망이 증식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 만을 위해 오롯이 쓸 수 있던 그 시간으로 달렸던

그 경험은 내겐 지금도 감응으로 간절하다.

내가 살면서 감응이란 느낌을 가져본 건 그때가 처음이고 감응의 뜻을 몸소 깨닫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오롯이 하나에만 전념했던 그 순간.

한 가지를 잘하기 위한 나의 시간.

그 시간을 다 가져본 느낌.

다 내 것이었던 시간.

지금 다시 가져보는 이 설렘의 글 쓰기도 난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지금도 이것만 하고 싶다,

내 속 안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쏟아 낼 때까지.

여행의 결말은 아쉬움이 아닌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었다.

난 다음엔 안식월이 아닌 안식년을 갖고 아직도 모르는 나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 사이 나의 통장은 텅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그렸고 열심히 했던 그 시간을 액자에 잘 넣어 텅장이 아닌 통장으로 바꾸어야

하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잘 걸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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