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전)
무언가 새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를 듣고 있을 때면
공통적으로 바닥까지 가보았다고 한다.
마음도 인생도 돈도 주식도 공통된 단어가 "바닥"을 쳐야 반등한다.
무당이 되신 우리 큰 외승모는 이야기한다.
무당이 되지 않으려고 기를 써 보았단다.
처음엔 남편을 가져가고
그다음은 건강을 가져가고
또 그다음은 돈을 가져가고
마지막은 자식까지 가져가서 남은 자식들을 지키려고
칼자루를 잡고 작두 위를 뛸 수밖에 없던 그 얘기.
먹고. 살고. 지키고 3대 요소 같다.
저 간단하게 보이는 저 단어 사이의
생로병사, 희로애락. 우여곡절이 끼워져 펼쳐 내는 인생 대서사를
살지 않고는 받아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삶을 살아내게 하지 않는다.
내어준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천지신명님이 신 것 같다.
생을 내어준 만큼 걸어야 할게 무얼까?
내가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나라, 부모, 성별, 을 던져주고
내게 무얼 하라는 걸까?
줄 거면 좀 더 좋은 나라, 부유한 부모, 탁월한 외모, 뛰어난 재능을 같이
주지 대충 만들어 옛다 하고 아무 데나 던져놓은 인생은 어쩔 거냐고
50년 내내 불만이다.
A/S도 안 되는 대체항력적인 이 일은 어쩌란 말인가?
묻고 묻고 꼬치꼬치 케어 묻고 싶다.
마음이 바닥을 쳤을 때 펜을 잡았다.
내가 잡은 게 아니라 마치 잡아야만 살 수 있을걸? 하며 칼자루와 작두를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의 상실.
그렇게 날 아프게 하는 것들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낮에는 바쁜 노동으로 잊으려 하고 푸른 새벽은 글을 썼다라기 보다는
분노와 절망과 슬픔과 상실을 늘어놓는 시간들이었다.
그 두터운 노트를 쉴 새 없이 채웠다.
잠을 이루지 못한 날, 누구와 나눌 것이 없던 날, 한 밤중에 양재천을 걷고 들어온
그 새벽녘까지도...
그렇게 내 마음은 바닥을 긁고 있었다.
몇 권의 노트를 채우고 나니 시가 써지고 노래가사에 대한 느낌도 써지고
그 새벽 양재천 옆 높은 빌딩들에서 비치는 조명들이 물가에 베어 젖음을
글로 쓰기도 했다.
상실이 아닌 모든 이들의 삶의 관찰자가 되기도 하며
사물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는 시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 노트는 내게 삶의 구렁텅이에서 "쉘터"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