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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훈 Nov 12. 2022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처음 보는 남자와 클럽을 갔다.

시드니에서 혼자 누굴 만나 무얼 할까 생각하니 답은 데이팅 앱이었다

나는 시드니라는 곳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다닐 SBS는 시드니 중심가에서 시드니 하버 브리지 Sydney Harbour Bridge를 건너면 나오는 노스 시드니 North Sydney라는 지역에 있었다. 중심가는 대충 멜버른의 중심가와 비슷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었는데 다리 건너편의 지리는 통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제1도시답게 번화한 중심가와 정반대로 그냥 푸르른 절벽과 그 밑으로 파도가 원시의 자연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더 멀리 가면 아예 텅 빈 우주공간과 다름없는 장면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무한한 검은색 공간에 격자무늬로 된, 비디오 게임에서 채 개발되지 못했거나 로딩이 되지 않은 어떤 구역과 같은 그림이 떠올랐다. 벌써 호주에서는 3년을 살았고 더 낯설게 느끼게 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새로운 곳에 가면 예상치 못한 디테일에서 허를 찔리고 말았다. 공항에서 내리면 맞닥뜨려야 할 대중교통이 그 첫 번째 예였다. 여기서부턴 어디를 가야 ‘시내'라고 말할 수 있는 역에 내릴 수 있는지, 또 교통 카드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가 그랬다. 카드 하나면 전국을 다 갈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호주는 주마다 다른 시스템을 썼기 때문에 교통 카드가 따로 있어야 했다. 시드니의 교통 카드 오팔 Opal 카드는 의외로 공짜였다. 멜버른에서는 몇 불을 주고 따로 사야 하는 것에 비하면 좋은 점이었다. 시드니의 메트로가 2층 열차인 걸 보고는 놀라 자빠질뻔했다. 이런 기상천외한 문화를 아무도 거론해주지 않았다니? 그 신기한 열차를 무심하고 바쁘게 타고 내리는 시드니사이더 Sydneysider들을 보고 나도 짐짓 예사로운 일인 듯 열차에 올랐다. 멜버른과 시드니의 메트로는 우리나라 전철과는 달리 진행방향을 정면으로 보거나 반대방향으로 앉도록 좌석이 놓여있었다. 기차나 비행기 좌석처럼. 그건 멜버른과 시드니가 비슷했는데 몇 정거장을 가다 보니 한 승객이 좌석을 180도로 돌리는 것을 보고 또 충격을 받았다. 정방향이나 반대방향을 보도록 좌석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동네가 그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두 도시는 이렇게 다른 점들이 있었다. 또 다른 디테일로는 시드니 메트로는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는 점이었다. 멜버른 메트로는 열차가 역에 정차하고 문에 버튼이 깜박거릴 때 눌러야 열렸다. 처음 타보는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멀뚱멀뚱 서있다 역을 지나치고 하는 법이었다.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이지 싶었다.

시드니 센트럴 역의 열차

시드니를 처음 가게 된 이유는 형네 부부가 휴가를 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처음 가보는 시드니에서 만나 같이 놀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막판에 형은 일 때문에 휴가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와 숙소까지 다 잡아놓고 그런 것이었다. 숙소라도 내가 쓰라길래 혼자 여행을 갔다. 연말이었다. 호주는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해서 새해까지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멈추고 휴가를 가기 때문에 휴가 생각이 별로 없는 나도 뭔가를 해야 했다. 나는 차라리 휴가가 없는 게 좋았다. 나 혼자 만날 사람과 갈 장소 없이 남겨지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외로움은 아니었다. 나는 외로움을 잘 몰랐다. 대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한다는 소외감에 더 가까웠다. 마치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고 큰집에 가고 한다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나만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만 있다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뭔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시드니에서 혼자 누굴 만나 무얼 해야 할까. 답은 데이팅 앱이었다. 나는 앤서니라는 남자와 채팅을 텄고 바로 만남을 계획했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적이 있다는 아주 잘생긴 남자였다. 시드니의 유명한 새해 불꽃놀이를 같이 보러 가기로 했다. 앤서니는 멜버른 출신이었지만 일 때문에 시드니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EY라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잘 나가는 남자였다. EY란 곳은 이름도 많이 들어 봤고 시내 곳곳에서도 으리으리한 건물도 봐 왔지만 역시 인코프 마냥 무얼 하는지 알기가 힘든 곳이었다. '컨설팅 펌'이었고 앤서니는 '컨설턴트'라고 했다. 내겐 아마 평생을 이해하지 못할 영역인 것 같았다.

앤서니는 서울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해줬다. 키가 크고 늘씬하고 피부는 창백한 꽃미남이라 주변에서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던 모양이었다. 클럽에 놀러 가거나 하면 직원들이 그를 VIP 석에 데려갔다고 했다. 돈 많은 여자들이 그를 불러 앉혀 논다는 것이었다. 그가 게이란 것도 여자들은 별로 상관치 않았나 보다. 어쩌면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게이 남자들을 탐닉하는 여자들은 하나의 카테고리였다. 앤서니도 그렇게 관심도 받고 공짜로 술 마시고 노는 재미가 좋았다고 했다.

앤서니가 사는 곳은 시드니의 유흥가인 킹스 크로스 Kings Cross에 있었다. 클럽과 술집들이 즐비한 번화가 가운데에 그의 아파트가 있었다. 원래 호텔이었던 건물인데 아파트로 바뀐 것 같았다. 호텔방 크기의 아주 작은 원룸에는 아일랜드 주방도 있었고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발코니도 있었다. 거기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촛불을 켜고 와인을 마시는 데이트를 했다.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과정은 고됐다. 웹사이트를 보면 어느 지점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고 얼마나 붐비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었는데 정보는 정확하지 않아서 직접 가야만 알 수가 있었다. 수용인원이 넘었다며 빨갛게 표시된 곳도 정작 가보면 자리가 있기도 했다. 그렇게 도박으로 찾았던 곳에 우리는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다. 분명 전날부터 밤새워가며 좋은 자리를 맡아놓은 사람도 있었을 터이다. 우리가 간 곳은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편 반대에 있어서 하버 브리지에 가리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카운트다운을 할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리를 잡고 앉아 나머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클럽을 갔다. 줄은 길을 따라 한없이 늘어져 있었다.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었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교통을 정리하는 직원에게 앤서니가 얼마나 걸리겠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건성으로 뭐라 대답을 던졌다. 앤서니는 “Well, this is not the only club in the world”라며 여기 아니어도 갈 곳은 많다는 뜻으로 날카롭게 받아쳤다. 앤서니는 그런 게 익숙한 태도였다. 맘에 안 들게 나오는 상대방이 있으면 바로 한 방 먹이는 성격. 비행기가 결항이 됐을 때, 음식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앤서니는 꼬박꼬박 따져 보상을 받아낸다고 했다. 그렇게 “authoritative”한 면모가 있어야 세상 살기 쉬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일을 잘한다고 했다.

클럽 아크 Arq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귀가 먹먹하게 터져 나오고 헐벗은 남자들이 땀 흘리며 춤추는 정신 착란적인 곳이었다. 앤서니는 들어가자마자 구석에 숨어 품에서 작은 뭔가를 꺼냈다. 스시 먹을 때 나오는 물고기 모양 간장 튜브였다. 거기 담긴 투명한 액체를 짜 먹었다. 바텐더가 자기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다며 더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내게도 그걸 권했다. 나는 내쳤다. 앤서니는 별 거 아니라고 자꾸 들이댔지만 나는 뭔지 알고 싶지도, 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 오면 다들 하는 거라고 했다. 클럽에 가면 이렇게 종종 약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쩔 땐 내게 관심이 있는 척 다가와 조금 춤을 추다가 귀에 속삭이며 약 찾고 있냐고 했다. 그게 진저리가 쳐졌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것도 경험하길 좋아했지만 마약 같은 것에는 흥미가 전혀 돋지 않았다. 술, 담배, 마약, 도박 같은 것들에 나는 깊은 거부감이 있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자유의지가 아닌 사회의 압박으로 배워지고 중독이 되는 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술을 처음 마셔본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였는데 그 후로 즐기지도 않고 몸에 받지도 않는 술을 마치 재밌는 일처럼 마시는 내가 한심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또 대학교 선배들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술을 받아 마시던 시간들이 경멸스러워졌다. 이쯤 되면 술은 좋은 것이라고 사회 전체가 교육을 하는 꼴이었다. 담배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담배를 피우며 고뇌에 잠기는 장면을 대체 몇 번이나 보았던가. 아니면 섹스를 끝낸 남녀가 공허하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얼마나 미화가 되었던가. 수능이 끝나고 고3 학생들이 졸업하는 시기만 오면 앳된 얼굴의 남자애들이 봐란 듯이 거리에 서서 어색한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은 다 그런 데서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의식해가며 서투른 움직임으로 연기를 뻐금거리고 침을 칵칵 뱉어대는 광경을 보면 결국 우리가 저런 걸 시키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카지노라는 데는 멜버른에서 처음 가봤다. 친구의 친구들이 간다는 걸 어쩌다 휩쓸려서 구경하게 된 거였는데 그 번쩍거리고 어딘가 우울한 도박판 사이사이를 걸으려니 여긴 내가 있을 곳이란 아니란 생각만 들었다. 나는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마음을 열 일은 아니었다. 그랬다간 내 속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옴짝달싹 못하게 미어터지는 클럽에서 정신을 빼놓고 있다가 나왔다. 앤서니는 배웅을 나와줬다. 다음에 또 보자 인사하고 헤어졌다. 새해 새벽에 숙소로 혼자 돌아가는 길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새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불꽃놀이는 하버 브리지 반대편에서 열렸기 때문에 많이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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