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훈 Jun 25. 2022

헬스장에서 매일 재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더 재수 없는 건 누구인가?





헬스장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된다.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을 때였다. 중량을 조금씩 높이며 워밍업을 하다 최대치(한쪽에 25킬로)에 다다라 본 운동을 시작하려고 했다. 호흡과 코어를 꽉 잡고 바벨을 밀어내는데 한쪽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내 몸의 균형이 잘못됐나 싶어 자세를 고치고 다시 미는데 여전히 기울어졌다. 무게가 다른 게 분명했다. 왼쪽을 확인해 보니 5킬로 중량이 빠져 있었다. 내 실수일 리가 없었다. 누군가 중량을 빼간 게 분명했다. 워밍업 사이에 쉬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그쪽을 기웃거리며 중량을 옮기는 걸 봤다. 그러나 설마 내 바벨을 건드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쓰고 있는 게 뻔히 보였는데.

기구를 쓰고 있는데 끼어들려는 사람들이야 일상이었다. 트레이너조차 그랬다. 잠시 쉬고 있는 내가 보이면서도 막 자기 학생 운동시키려고 중량을 바꾸려는 걸 내가 빤히 지켜보자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옮겼다.

쓴 중량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벤치에 핸드폰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니 온갖 잡동사니를 널려놓는 것도 기본이었다. 화장실을 쓰고 손을 씻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여자 화장실의 실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을 보고 손을 씻는 남자들은 열에 하나 꼴이었다. 변기에 세월아 네월아 앉아 있다가 물을 내리는 동시에 그냥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소변기에 서서 한 손엔 핸드폰, 한 손엔 고추를 든 자세로 있다 툭툭 털고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 손으로 정수기에서 물도 마시고 제빙기에서 얼음도 푸고 그랬다.


호주에서 헬스장을 다닐 땐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는 베트남 아저씨가 있었다. 매번 스미스 머신을 독차지하는 사람이었는데 벤치에 앉아 코딱지를 어찌나 후비는지 손가락이 코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없었다. 그 시간을 위해 일부러 코딱지를 모아 오나 싶을 정도였다. 그 헬스장 샤워실을 가면 베트남어와 중국어로 바닥에 침을 뱉지 말라는 경고문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카악'하며 가래만 안 뱉을 뿐이지 샤워실 바닥에 조용히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안에 뭐가 그렇게 쌓여있길래 10초에 한 번씩 침을 뱉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들은 샤워를 마치고 몸을 말릴 때에도 꼭 핸드 드라이어에 사타구니와 똥구멍을 들이대며 물기를 털어댔다. 그 부위들을 깨끗이 씻었다는 건 믿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시는 드라이어에 손을 갖다 대기 싫었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조차 않았다. 그 시설엔 수영장과 사우나와 스파까지 있어서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 찾았는데 사우나에서 땀을 흠뻑 내고 스파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 꼭 몸을 씻으라는 경고문도 있었다. 사방이 경고문이었다. 경고문이 너무 많아 효과가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마저 없었더라면 때도 밀고 빨래도 하는 사람까지 생겼을 것이다.


파주에서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전혀 새로운 경고문을 발견했다. 사람을 쳐다보면 불쾌하니 그러지 말라는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왜? 대체 어떻게, 얼마나 쳐다봤길래? 얼마나 심했으면 시설에 항의를 하고 경고문까지 만들어 붙일 정도였을까? 허를 찌르는 이상한 경고문을 빼면 파주 헬스장에선 아직 중량을 훔쳐간다거나 하는 속 뒤집어지는 일은 없었다. 단지 2층에 있는 헬스장과 에어로빅 스튜디오를 가기 위해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을 뿐이다. 왜? 어째서?


얼마 전 뉴욕 타임스에서 한 기사를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드는 조언을 접했다. ‘한 달에 한 번 재수 없는 사람(jerk)을 만나면 재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매일 재수 없는 사람을 만난다면 재수 없는 사람은 본인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짓거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기가 예삿일인 나는 알고 보니 진짜 재수 없는 자였던 것인가? 비가 오던 날 전철 안에서 어떤 아줌마가 어떤 아저씨를 우산으로 툭 건드리는 걸 봤다. 아저씨는 ‘아이씨이이이이'하며 아줌마를 째려봤다. 아줌마는 슬쩍 한 번 돌아보고 말 뿐이었다. 아저씨는 계속 아이씨를 반복하며 아줌마를 돌아봤지만 아줌마는 모르쇠로 잡아떼고 문가에 서서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좀 쳤다고 노기 발발하는 아저씨도 성질 한 번 단단하다 싶었지만 끝까지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아줌마도 보통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누가 더 큰 잘못을 했나? 애초에 실례를 한 아줌만가? 그걸 참지 못하는 아저씬가?

나는 이를 그냥 넘겨 보지 못하고 글로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게 매일 보였다. 내 주변엔 재수 없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매일이 아니라 매시간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 사람들을 일기장에 쓰고 또 썼다. 이렇게 심술통이 노인이 되어가는 것도 같았고 좋게 보면 세상 물정을 너무 많이 알아 눈에 거슬리는 게 많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같은 말이었다. 오래 산 사람들은 보고 들은 게 쌓여서 매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화를 내는 게 아니던가? 헬스장을 다니면 몸의 젊음만큼 마음의 젊음도 지켜질 줄 알았다. 몸의 젊음은 확실했다. 마음의 젊음? 오히려 빠르게 늙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쏘쏘였던 건 TM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