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케바케임?
모처럼 친척들을 만나러 안성에 가는 길이었다. 서울을 지나야 했다. 강변을 따라 달리는 길은 썩 유쾌했다. 미세먼지가 없고 너무 막히지 않으면 한강 옆 도로는 운전할 맛이 났다.
"저런 아파트는 낡았어도 뷰가 좋아서 참 메리트가 있을 거야."
강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거의 유물이 돼가는 옛날 아파트들이었다. '서울시가 책임져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니 재개발이니 리모델링이니 하는 분쟁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아파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엔 누가 살까. 매일 강을 보고 있으면 살맛이 날까. 그래 봤자 도시는 도시일까.
생각을 끊은 건 엄마가 곧 덧붙이는 말이었다.
"말을 해도 참... '뷰'가 좋아서 '메리트'가 있다니... 왜 이렇게 쓸데없이 영단어를 쓰지?"
자기가 한 말이 자기한테도 이상하게 들렸나 보다.
"그런 말을 쓰면 인텔리 하게 보일까 봐 그러나?"
영어 단어를 쓰면 정말 '인텔리'하게 보였던 때가 있었을까? 옛날에는 그랬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영단어를 쓸수록 오히려 수준이 낮아 보이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얼마 전 가수 보아의 영상을 보다가 그렇게 느꼈다. 보아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댄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보아는 종종 그렇게 안 써도 좋을 영단어를 섞어가는 말버릇을 보였다. 한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청중을 '오디언스'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보아의 격이 떨어져 보였다. (굳이 보아만 갖고 뭐라 하는 것은 내가 보아만큼 좋아했던 가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아의 영상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되고 보아가 하는 말을 더 많이 듣다 보니.)
영어 쓴다고 흉을 잡으려면 홈쇼핑만 틀어도 됐다. 검은색, 하얀색? 안된다. 블랙 컬러, 화이트 컬러였다. 진행자들은 어떻게든 말을 더 많이 하려고, 어떻게든 더 고급스러워 보이려고 말인지 헛소린지 모를 것들을 막무가내로 쏟아냈다.
아마 영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옛적부터 한 번도 끊이지 않았던 고리타분한 논쟁일 것이다. 외국어, 외래어 쓰지 말고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가장 많이 다뤄졌던 내용은 사라져 가는 우리말에 관한 것이었다. 외래 동식물이 우리나라의 토종 동식물을 해치듯 언어도 그렇게 망가지고 있다는 글은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방학에는 우리말 단어장을 만들어 엘리베이터는 승강기로, 바캉스는 휴가로 고치자는 숙제도 몇 번이나 우려먹었는지.
우리 것을 지키자는 뻔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가 '인텔리'하게 들리려고 영어를 쓴다고 했을 때 나에겐 도리어 정반대의 효과가 난 것은 무슨 이율까 궁금했다. 핸드폰(손전화기)에 지도 앱(응용 프로그램)을 열어 식당 리뷰(평가) 들을 보면 자주 보이는 문장은 '그냥 쏘쏘' 했다는 것이었다. 어떤 음식은 '케바케'라고도 했고 '투머치'라고도 했다. 이 정도면 TMI?
영어란 언어를 배우는 것도 복잡하지만 영어를 대하는 자세도 우리나라에선 늘 복잡했다. 일상에서 영단어를 막 던져가며 쓰면서도 또 정작 영어로 말하는 사람은 재수 없는 취급을 했다. 우리말을 아끼자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블랙 컬러와 화이트 컬러의 톤온톤 코디를 제안하는 홈쇼핑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과학성을 인정받은 게 우리말임은 누구나 다 알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모국어로 가르치고 싶어 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 다르고, 영어를 잘 쓰는 것 달랐다.
보아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가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언어의 지옥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보면 'Imma breakin' 'n' shakin' da world'와 같은 가사가 꼭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유식해 보이려고 쓴다기보다 서양 문화, 특히 미국 문화를 흉내 내려는 몸부림이었다. '영어=미국 문화'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면 말이 아니라 구토물인 것 같다. 스웩인지 스'웩'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