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책 두 개를 읽었다.
책을 읽을 때면 내 지금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놀라는 일이 많다. 인도 여행을 하던 중 숙소 책장에서 꺼내 읽은 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였고, 연애 때문에 힘들어할 때 읽은 책은 안드레 아씨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었다. 물론 우연이라든지 운명 같은 건 아닐 것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워낙 베스트셀러라 주변에 흔했고 또 인도 배낭여행자 숙소에 인도 여행하는 내용의 책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 연애 때문에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긴 하던가?
게다가 읽는 사람은 어떻게든 책 내용을 자기 인생에 적용해가며 보는 법이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아무리 나와 다른 나라의 사람이 아무리 다른 인생 얘기를 펼친다 해도 '저런 친구는 꼭 있어'라든지 '저런 느낌 나도 알아'라고 끊임없이 공감을 하게 된다. 책의 힘이라 할 수도 있고 인간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책 두 개를 읽었다. (요즘은 거의 전자책만 보는 중이라 '권'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하나는 앤드류 숀 그리어의 '레스'였고 다른 하나는 앤 패쳇의 '겟어웨이 카'였다.
'레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중년의 소설가가 사랑과 커리어에 좌절하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레스도, 저자도 게이다. 그걸 알고 책을 골랐던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줄거리를 봤거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역시 게이) 추천했기 때문에 손이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이 책을 읽은 우연이 기가 막혔다. 나 역시 연애에 실패하고, 글을 쓰겠다며 허우적대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앤 패쳇의 '겟어웨이 카'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탈출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였다. 이혼을 한 뒤 패쳇은 시골로 칩거할 기회를 얻는다. 거기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글 쓰는 것 외엔 할 일이 없는 고립된 곳에서 패쳇은 겨우내 소설을 완성한다. 원고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패쳇은 눈물을 쏟는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며 나는 그의 집에서 나와야 했다. 방세며 생활비를 그가 모두 다 내던 곳이었다. 처음엔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리라 믿었지만 사랑은 그렇게 크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아무리 사랑해도 말이 안 되는 건 안됐나 보다.
그의 집을 나오자 갈 곳은 부모님 댁뿐이었다. 얼마 전 이사한 부모님의 파주 집을 가 보기는 처음이었다. 파주란 곳도 처음이었다. 전철을 타고 시골길을 달려 거의 마지막 정거장까지 갔다. 집 열쇠는 화분에 있다고 했다.
어두운 빈 집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놨다. 구석에 포개져 있는 이불 위에 주저앉았다. 다시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일은 없으리라 다짐하고 나왔지만 이렇게 원점이었다. 남자 친구도 없고, 직업도 없고, 돈도 없었다. 그럼 뭐가 남았을까? 책에서 보고 배운 게 남았다. 이게 나의 유배지인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언가를 써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동안 봐왔던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생각했다. 다 어떻게 시작했던가? 주인공은 연인에게 차이고, 이혼을 하고, 직장에서 잘리는 것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 애니는 야심 차게 열었던 빵집을 말아먹고, 남자 친구에게도 버려진 처지였다. 그걸로 밑바닥을 쳤다 생각했는데 곧 일하던 금은방에서도 잘리고 룸메이트한테서도 쫓겨나 어머니네 집으로 들어간다. 거기서부터 애니의 인생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모두 이런 이야기였다. 영화들이 모두 그랬다. 삶의 쓰디쓴 맛을 보는 주인공. 그러나 역경 끝에는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주인공에게는 복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끝을 좀 보라고. 지금은 망한 것 같지만 금방 좋아질 거니까 누워서 울지만 말고 나가서 뭔가를 하라고.
나도 그런 영화들을 썼다. 그게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믿지를 않으면서 남들에게 인생은 이렇다고 이야기들을 썼다면 그런 뻔뻔함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형편없는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영화의 도입부에 있다고 전지적 관점에서 봐야 했다. 내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됐다. 이게 나의 시험이었다.
'나의 여자 친구의 결혼식' 다음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다. 앤디는 커리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남자 친구를 잃고, 우정을 잃고, 존엄성도 잃는다. 다 잃고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헤어진 남자 친구와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그의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별을 하고도 친구로 남는 그들의 관계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남자 친구와 작별을 하며 앞으로 볼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쁜 뜻이 아니라 다시 얼굴을 보면 또 마음이 생길까 봐, 그리고 합치는 실수를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랬다. 헤어졌다가 도로 만나서 결국은 잘됐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너무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한 땐 내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를 영영 안 본다는 게 쓸쓸했다. 가족이었다가 갑자기 가족이 아니게 될 수가 있을까? 그렇게 댕강 잘라낸다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전 연인들과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해가 됐다.
그러나 아직은 앤디와 네이트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농담도 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았다. 아직은 슬픔이 더 크다. 앤디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애니는 어떻게 했을까. 레스는, 앤 패쳇은? 그들의 이야기를 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걸 또 글로 쓰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