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즐거움

by 서성
출처:Umberto님의 사진, https://unsplash.com

삶은 대체로 버겁다. 신은 감당할 정도의 고통만 내린다고 하지만, 막상 아픈 와중에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일희일비하는 얕은 마음. 그곳에 바다만이 삼킬 수 있는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 답을 나는 글을 쓰는 일에서 발견했다. 여기서 나는 몇 가지 즐거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은 쓰는 시간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기상 직후의 글은 괜스레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썼는지라 문장이 산만하고 대체로 정신이 없다. 그 혼돈 속에서 어떤 문장은 나를 뛰어넘어 세상에 나타난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길게 쓰는 글은 조화로운 짜임새를 가지고 있으나, 화자의 부족함마저 그대로 닮은 글이 나온다. 글이 길어서 비문과 오타가 곳곳에 숨어 있다. 꼼꼼히 살펴야 하는 글이다. 저녁밥을 먹은 다음의 글은 속이 든든해서 그런지 글에도 배고픔이나 갈망이 없어서 편안한 분위기와 유머러스함이 자연스레 담긴다. 새벽의 글은 날카롭게 끝을 갈아낸 연필과 같다. 위장의 출출함 때문인지 글에도 갈구하는 바가 많아진다. 대체로 불만이 제법 많은 어조가 나타난다. 그러나 새벽 시간만의 날카로움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표현하고 싶은 것과 생각지 못했던 허점을 짚어내는 데에는 새벽의 글 만한 것이 없다.

당연히 쓰는 도구에 따라서도 즐거움은 달라진다. 오랜만에 연필로 글을 쓰면 그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손도 점점 아프고, 목까지 더욱 뻐근해진다. 그러나 흑연이 연필을 스치는 소리와 필압의 차이가 만든 진하고 옅은 문장의 모습은 글을 한층 멋스럽게 만든다. 펜은 그보다 가볍지만 진해서 늘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들만을 적게 된다. 키보드는 한 자씩 두드릴 때마다 묘한 쾌감이 있어서 글을 쓸 때 가장 기분 좋게 쓸 수 있는 도구이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쓰여서 표현의 지나침이나 미숙함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시간과 방식에 따라서도 글은 다양한 맛과 멋을 가진다. 나 역시 여러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글 역시 삶보다는 덜해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어떻게 문장을 시작해야 할지,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떠올리며 쓴다면 벌써 골치가 아프다. 떠오른 생각은 크나큰 구름과 같은데, 손끝에서 떨어지는 문장은 이슬비처럼 자그마한 물기와 같아서 슬프다. 표현이 빈곤하게 쓰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막아낼 도리가 없다. 내가 아는 분께서는 집에 쌓아두었던 작법서와 책을 한데 모아 모조리 불태우며 “다시는 글을 쓰나 봐라!”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글을 쓰고 계신다. 사실 글을 쓴다는 건 보통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아프고, 지겹고, 답이 보이질 않아 성이 나는 일이다. 이 글만 해서도 그 앞에 얼마나 많은 실패작을 갈아 넣어야 했던가! 그러나 결국 쓰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일종의 이끌림이 있어서 돌아서도 보게 되고, 반대편으로 달려가도 결국 도착하고 마는 출발선처럼 말이다.


글은 그래서 특별하다. 즐거움이란 눈을 비비다가 겨우 만져지는 눈곱만큼 있고, 고통은 뱃살처럼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데도 결국 글을 쓰고야 말게 되기 때문이다. 표현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표현하는 편이 더 낫다. 이를 일깨워주는 건 내겐 글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오늘 딱 한 문장을 적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으나 겨를이 없어서 잊어버린 그 말을 오늘 써보는 것은? 앞서, 힘든 일은 때때로 얕은 마음에 처박힌 운석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도 발견했다. 거대한 운석이 떨어질 때마다 내 마음도 깊게 파인다. 태초의 지구가 그러했듯이, 우리 마음도 깊어지는 것이다. 바다 역시 이러한 운석의 충돌로 생겨난 거대한 웅덩이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한다.

견뎌내면 누구나 바다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쓰는 것이다. 그 문장을 보며 견딜 수 있도록.

이것이 글을 쓰는 즐거움이로구나, 하고.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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