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기고 싶었던 어린 시절
나는 오랫동안 내 환경을 숨겼다. 내 가까운 친구들에게까지.
부끄럽다고 느껴진 가족, 늘 감춰야만 했던 나의 속마음.
내 기질도 한몫했겠지만, 가정환경은 늘 나를 짓눌렀고, 가난은 창피함으로 내 마음에 자리했다.
어릴때 나의 부모님은 멋있지도, 예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숨기고 싶었다.
학부모 참관수업이나 학예회, 졸업식에서 부모님이 온다고 하면, 차라리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 자리를 대신해 언니가 서 주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준비를 챙기고, 내 옆에서 부모처럼 든든하게 서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더 작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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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겉돌던 학창시절
아마 그 부끄러움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걸까.
학창시절 내내 나는 무리 속에서 겉돌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꺼낸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듣고, 반응하고, 맞춰주는 역할이었다.
내 차례가 되면 눈치를 보고,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두서없이 말을 마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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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화의 시도와 흑역사
나는 나를 바꾸고 싶었다.
여러 활동에 도전했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애썼지만, 기대했던 자신감은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변화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가 내 마음을 더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 결과 남은 건, 흑역사 같은 기억과 부끄러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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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직장에서 느끼는 불안과 박탈감
이제 서른이 넘었다.
이십 대의 노력 끝에 좋은 직장에 들어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제자리인 듯하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내 안은 늘 불안과 초라함으로 가득하다.
남들 앞에서 인수인계나 매니저와의 미팅이 잡히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끝이 떨린다.
그것이 무슨 대규모 발표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긴장하는 걸까.
가끔은 문득, 왜 다른 동료들—심지어 나보다 어린 사람들조차—이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데, 나는 이렇게 버벅거릴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설명하는 일보다, 스스로를 변명하는 내가 먼저 떠오른다.
그 순간, 상대적 박탈감이 마음속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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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안의 뿌리
돌이켜보면, 이 불안은 단순한 긴장감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드러나면 안 돼.”
“내가 보여지면 부끄럽다.”
이 믿음은 학창시절의 회피 습관과 겹치며 단단해졌고,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생기면 뇌는 이를 ‘위험’으로 인식하며, 몸은 자동으로 떨림과 두근거림으로 반응했다.
작은 성공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했기에,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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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작은 시작, 그리고 희망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불안은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경험과 믿음의 결과라는 것을.
이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자 한다.
아주 작은 무대부터, 아주 짧은 한마디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 경험들을 기록하고, ‘잘못 말해도 괜찮다’는 안전한 기억을 쌓으며, 스스로를 다시 믿는 연습을 할 것이다.
언젠가는, 숨기던 내가 아닌, 당당히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