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
안녕하세요. 유자적제경입니다.
오늘은 브런치스토리에서 열리고 있는 '2025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 저작권 글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한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혹시나 공감되는 부분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ㅎㅎ
저작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치 흐릿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분명히 존재하고 중요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 실체는 항상 조금씩 어긋난다. 누군가가 정성 들여 만든 콘텐츠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부터가 침해인지 늘 애매하다.
나는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콘텐츠를 전전긍긍하며 지키려는 창작자들과 그 틈을 엿보는 이들이 뒤섞인 풍경을 떠올린다.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모두가 조심스러워지고, 또 어떤 이는 그 틈을 이익으로 바꾸려 든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저작권을 둘러싼 세상이 어쩐지 늘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저작권은 법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감정과 윤리, 현실과 욕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지점에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창작자의 권리라 주장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식과 정보는 자유롭게 흐를 때 세상이 나아진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노력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의 노력은 어디까지 보호받고 있는가?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울타리와도 같다. 내 이야기를, 내 문장을, 내 시선을 지켜줄 수 있는 작은 담장. 하지만 그 담장은 생각보다 낮고, 때로는 바람 한 점에도 흔들릴 만큼 약하다. 아니, 때로는 저 담장이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담이 지어져 있어서 너는 네 권리를 지킬 수 있잖아'하는 외부의 시선과 동시에 누군가는 그 낮은 담장을 하루에도 수십 번 넘어 다니기 때문이다.
말과 글, 그림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유되는 속성을 지닌다. 누군가의 문장을 인용하고, 누군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표절이나 도용을 완벽히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정말 80~90% 이상 똑같지 않고서는, 도용이라 말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저작권은, 지킬 수 없는 것을 지켜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고유한 세계를 지켜낼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울타리는 누군가의 침범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경계가 있다는 신호는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신호만으로도 누군가의 창작이 지닌 무게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나 역시 한때 그 경계 바깥에 서 있었던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게임이 하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 무료 다운로드를 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MP3에 노래를 담기 위해선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은 파일을 찾아야 했고, 그때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 안 내고도 즐길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아깝게 돈을 내고 게임을 구매할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고 치기 어린 생각을 한때는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 게임을 만들고, 그 노래를 부른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음을. 지금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게임을 구매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는 단순히 나의 구매력이 올라서라기보단, 누군가의 땀에 보답하는 것이 맞다는 감각이 내 안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핑계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창작자를 직접 응원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소액의 후원으로 웹툰을 읽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독립 영화를 지원하고, 구독으로 작가의 글을 꾸준히 볼 수 있다. 사용자로서 내가 가진 책임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로 다가온다. 나의 클릭과 소비가 누군가의 삶을 지탱한다면,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권한이자 의무다.
‘모든 창작물은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창작에는 시간과 자원이 들고, 때로는 상처도 따라온다. 그런 모든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 단지 '공유'라는 명분 아래 무작정 퍼져나간다면, 누가 다시 창작을 감행할 수 있을까.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다. 구독자 수, 좋아요, 댓글—이 모든 것이 내게 보상이고 동기다. 만약 이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까. 아마도. 하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정성을 들여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보상이 없다고 해서 창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평가와 따뜻한 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정한 보상은 단순히 금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노력을 보았다"는 신호이며, "계속 써도 된다"는 조용한 허락이다.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며 이 사실을 체감한다.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고, 때로는 응원의 댓글을 남긴다. 그 순간, 나의 이야기가 타인의 마음과 이어졌다는 사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보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공유'라는 말이 단지 '무료'의 다른 말이 아니기를 바란다. 공유란 함께 나누는 것이지,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상상해 본다. 만약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아마도 그때그때 반응이 뜨거운 이슈들—정치, 연예, 논란거리들을 다루며 조회수를 쫓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콘텐츠는 빨리 잊히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잊히지 않기 위해 다음 자극을 찾아 또다시 타자를 두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저작권이 없는 세상은 속도는 빠를지 모르지만, 깊이는 얕다. 그곳엔 누군가의 진심보다 누가 먼저 퍼뜨리느냐가 중요할 테니까. 나는 그런 세상에서 오래 머물 자신이 없다.
그런 세상은 결국 창작자에게 '다 쓰이고 나면 잊혀지는' 존재가 되기를 강요한다. 이는 단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의 질을 낮추는 일이기도 하다. 저작권이 없다면, 결국 남는 것은 흥미와 논란뿐이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진심은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에게 창작은 지금의 나를 기록하는 일이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지나는지 남기는 행위다. 하지만 그 기록이 누군가에 의해 무단으로 쓰인다면, 나는 나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작물은 단지 정보나 표현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써 내려간 한 문장에는 내 하루의 온도가 담겨 있고, 내가 고른 한 단어에는 지금의 내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 기록이 허락 없이 베껴지고 훼손된다면, 결국 내 삶의 조각도 함께 무너지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저작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법이 아닌, 창작자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창작은 어느 날의 고민, 어느 순간의 감정, 혹은 내면 깊숙이 감춰져 있던 어떤 결심의 흔적이다. 누군가의 기록이 지켜지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창작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 아닐까. 창작자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는 믿고 싶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창작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법보다 앞서 마음이 반응하고, 규정보다 먼저 사람이 움직이는 그런 날이. 그때가 되면 저작권은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예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