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2-23
이것저것 다 넣은 가방을 메고 나니 10kg 되는 배낭이었다.
까미노에서 들고 다니는 배낭 속에는 내가 이 길을 걷는 동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담은 배낭이기에, 내가 살아가는 삶의 무게라고도 한다.
2주 동안 필요한 것만 쌌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리 무거운 삶의 무게였다.
하루가 36시간이었다. 자도 자도 끝나지 않는 긴 밤을 지나 드디어 떠오르는 태양을 만났더니 무지개를 인사시켜 주었다. ‘시작이 좋은 걸?’ 나를 또 착각 속으로 빠지게 해 준다.
그 착각 속에서 나의 첫 발걸음을 딛기 시작한다.
나의 첫 유럽.
처음으로 가는 유럽에 순례길을 걷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이곳에 오니 아이폰 배경화면 속 지구의 모습조차 바뀌었다. 난생처음 보는 지구의 모습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이런 모습도 하고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어공주가 바닷속에서만 살다가
처음으로 섬에 올라와서 섬을 한 바퀴 다 돌고
세상을 다 알았다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대륙이 있고, 우주가 있다.
2022.02.10
난 이제서야 대륙을 돌고 있다.
이제서야 세상을 보고 있다.
갑자기는 아니었다.
여전히 가고 싶은 나의 버킷리스트였고, 이를 이룰 시기가 되었다는 나의 직감과 두려움 속에서 모두가 나를 말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떠나기 일주일 전 미친 것 마냥 비행기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루게 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그저 “내가 죽기 전에 해보아야지” 뇌로만 생각했던 미친 짓.
비행기 타는 건 나에게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서울에서 제주를 왕복하는 삶을 너무도 오래 했기에 오히려 익숙했다. 하지만 이런 장시간 비행은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몸이 찌뿌둥해지긴 하더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저 땅의 모습은 사실 뭐 다를 게 없는데?라는 생각이었다. 비슷한 색들의 지붕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이 사는 곳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설레면서도 익숙하다는 판단과 함께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개찰구 앞에 섰다. 처음 보는 언어가 잔뜩 써져 있는 미지의 기계가 방금 나의 오만한 생각을 산산조각 내었다.
파파고에서조차 번역해 주지 않는 포르투갈어 앞에서 난 한없이 작아졌다. 그때 구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줄까..?” 신기했다. 영어로 정확히 무슨 단어를 사용해 뭐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런 뉘앙스였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거만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를 도와주었고, 그런 감사한 선의에 비해 무지한 나에게 벌이라도 주듯이 나의 티켓은 카드로도 현금으로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 구세주의 도움으로 나는 공짜 티켓이 생겼다. 빚을 지고 만 것이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시내에 가서 커피를 사드리자. 사드리고 나의 갈 길을 떠나자.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의 되지도 않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구세주이자 여행자인 그는 오늘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이 여정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오늘 나는 포르투 대성당에 가서 순례길에 필요한 크레덴시알을 받고 첫 번째 알베르게에 가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나는 그의 연락처만 받은 채 순례 여정이 일찍 끝나게 된다면 연락하겠다 말하고 헤어졌다. 처음 시작부터 갚지 못할 큰 빚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는걸? 일단 즐겨.
포르투 대성당으로 가기 전, 필름을 파는 곳에 가서 한 롤을 샀다. 여기서 산 필름으로 이곳의 풍경을 담는 것이 낭만이라면 낭만이라 생각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필름을 끼우고 포르투 대성당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국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정말 처음 경험해 보는 길거리 풍경이었다. 이곳의 풍경 속 내가 들어 있는 것이 과연 이방인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지나가던 길거리의 강아지도 나를 이방인이라 생각하는지 나를 향해 열심히 짖어대는, 난 완벽하게 혼자 동떨어진 이방인이었다. 단, 아랑곳하지 않는 씩씩한 이방인이라 최면을 걸며 포르투 대성당 계단을 올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사람들이 다 벽 쪽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올라갈수록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는 다 똑같아 보이던 집들의 모습이 다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한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위로 높게 뻗은 성당의 모습은 과연 대성당이라 불릴만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였다.
주뼛거리며 대성당 서비스센터에 들어가 2유로인 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머뭇거리며 대성당 안에 들어가 2유로 하는 가리비까지 구매했다.
드디어 나는 순례자의 길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성당 앞에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턱이 있길래 앉아서 짐들을 주섬주섬 정리했다. 그 순간,
“Buen Camino! (부엔 까미노)”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듣는 그 말이었다.
듣고 싶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Buen Camino."
"당신이 가는 길에 행운이 깃들기를."
그는 그 자리를 지키는 듯한 오래된 방랑자처럼 보였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도 언어의 자신감이 없어 고작 한 말이 “땡큐..!!” 한마디였다. 너무나 분통했지만 그때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기 위해 조심스레 일어나 대성당을 내려가기 전 그의 모습을 최대한 줌인해서 나의 필름 카메라 속 첫 번째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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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번째 숙소로 향하기 시작하기 전.
포르투에 왔으니 그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오기 전부터 저장해 뒀던 유명한 에그타르트 집으로 향했다. 여러 개를 사서 내일도 먹을까 고민하다 2개만 사서 귀여운 박스에 테이크아웃하고 걸어 나갔다. 손으로 만졌을 때의 따뜻한 감각에 못 이겨 결국 하나를 꺼내 먹었다. 이럴 수가.. 이거 아주 JMT(진짜맛탱이)잖아..? 맛있는 당이 들어오니 기분이 한껏 더 좋아지는 단순한 나였다.
오늘은 철저하게 구글맵으로만 숙소 가는 길을 찾아 걸었다.
포르투 구석구석 골목을 걸어 다니며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보이는 귀여운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거리들이 자꾸만 나를 멈추게 했다. 등굣길이었다면 100% 지각할 속도로 가다가, 공원이 보이는 것 같아 잠시 쉬기로 마음먹었다. 첫날이기에 조금만 걸어도 쉬어야 한다는 굳건한 의지가 돋보이는 휴식이었다. 날씨가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벤치에 앉아서 여유를 만끽했다. 기러기인지 갈매기인지 하는 새들이 무섭게 날아와, 나보다 더 여유로운 기세로 자신의 영역을 과시했다. 그 옆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비둘기 무리들도 있었다. 나도 이에 질세라 마음껏 동네 사람인 것처럼 공기를 자연스럽게 들이마셨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듯한 악기 연주자 학생들도 지나다니고 이어폰을 꽂고 자신의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고 낙엽을 치우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다들 내가 느끼는 이 평화가 너무나 익숙해서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이 평화가 누가 봐도 익숙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있는 힘껏 나의 체취를 땅속으로 보냈다. 나도 이 공간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다시 숙소로 출발했다. 내가 너무 여유를 부린 걸까?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다 예상했다는 듯이 가방 속 제일 위에 있던 비옷을 꺼내 온몸을 감싸듯 장착했다. 어릴 적 사소한 일 하나라도 엄마에게 말하면서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그 칭찬에 우쭐대는 마음과도 같이 나는 슬그머니 웃음을 지으면서 형광빛 비옷을 입고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점점 주변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길가에 사람보다는 건물 하나하나와의 인사가 더 잦아졌다. 처음 보는 듯한 얼굴과 몸을 한 집들이 낯설면서도 점잖게 나를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할 때쯤 드디어 나의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벨을 눌렀다. 안에서 소리만 들어도 엄청나게 클 것 같은 집주인이 월월 짖어대기 시작했다. 집주인의 보호자 되는 사람이 “올라”하며 집 밖에서 나타났다. 비 오는 날 러닝을 하고 왔다는 그의 말과 함께 나는 숙소로 들어갔다. 집주인은 꼬리를 잔뜩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음침하면서도 낭만 있어 보이는 정원이 보이고 거실 같은 곳으로 들어와, 그는 짧은 영어를 사용해 나보고 비옷을 푸슉 하고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라 했다.
크레덴시알과 여권을 꺼내 드렸다.
나의 첫 쎄요였다.
도장을 꺼내 찍어주고 색연필을 하나씩 꺼내 들어 그림쎄요를 그려주었다.
비가 와도 낭만을 그려주는 나의 첫 숙소였다.
그 낭만을 즐길 새도 없이, 나는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침낭 속에 들어가 12시간을 내리 잠들었다.
내가 잠든 시간은 그곳 시간으로 고작 저녁 6시였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