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3.

2025.10.25

by 임선경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한다.

지난밤부터 슬슬 내리는 비로 인해 예상을 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과연 내가 10kg가 되는 배낭을 메고 비가 오는 거리를 걸어갈 수 있을까?



두 번째 숙소에서 씻고 나온 후 일정들을 차차 정리하기 위해 침대 앞에 있던 테이블에 다이어리와 함께 앉았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다 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나의 욕심에 비해 나의 기억력과 영어 실력은 현저히 낮은 수준에 위치해 있었다. 발레리아. 난 심지어 그녀의 이름을 발레이나라고 기억하고 있다가 후에 내가 잘못짚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한 마음을 숨겼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금발머리를 한 소녀였다.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티를 마시겠냐고 물었고, 우리는 같이 따뜻한 티를 한잔씩 타서 마주 보고 앉았다. 그녀는 나의 이름을 물었고, 나는 Sun이라고 답했다.


이름과 관련해서 그녀와 나 사이의 귀여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

그녀는 나에게 이름에 대한 뜻이 있냐고 물었다. 아마 내 이름이 "Sun"이라고 해서 물어봤던 것 같다.

내 이름은 착할 선. 통할(강 이름) 경. 한자를 쓴다.

이는 착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입 밖으로 뱉는 모든 말을 선하게 하고, 강이 흘러 바다가 되듯이 널리 널리 큰 바다로 향해 가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영어로 말하느라 나의 의미가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흥미롭다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나도 그녀에게 이름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매우 재밌는 스토리가 있다며 들려주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의 이름은 '밤하늘의 달빛', '향기로운 꽃',.. 등 예뻐 보이는 듯한 의미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은 어머니께서 "Just strong"이라는 의미로 지어주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때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이 왜 이런 뜻일까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자신의 이름 덕분에 건강하고 튼튼하게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그녀는 매우 단단하고 의젓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라고 말하며 함께 웃었다.

****


밖에서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고 천둥번개가 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녀도 나도 내일은 이스포젠데라는 도시까지 가야 했다. 테쏘가 오늘 목표로 했던 도시였다. 대략 30km 정도의 꽤나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에 큰 배낭을 지고 비가 오는 거리를 걷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을 외면하듯 다음 날 날씨 예보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과연 10kg의 가방을 짊어지고 비 오는 거리를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10일은 더 걸어야 했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계획에 없던 시도를 하기 위해 운송 업체에 대해 검색해 보았지만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는 서비스 업체의 운영시간대가 끝난 시점이었다. 결국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도전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순간! 주방 쪽 안내 책자들 사이에 운송 서비스 관련된 업체의 홍보 포스터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운송 서비스를 신청하라는 운명인 걸까.... 다행히 업체에 연락해 보니 신청 가능했고, 다음날 자기로 한 숙소의 주소를 보내며 내일의 일은 내일에게 맡기자 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나름 시차를 적응한 것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어제와 달리 모두가 잠드는 시간에 누운 나는 이게 웬걸? 새벽 4시에 눈을 떠버렸다. 이곳에서의 일출은 7시 58분이었다. 다시 자려고 자려고 발버둥을 쳐도 잠은 오지 않고 결국 이불속에 파묻혀 뒹굴뒹굴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6시 40분. 아직도 1시간이 남은 일출.


나는 되도록이면 어두울 때 출발하지 않으려고 했다. 헤드랜턴도 가져오지 않았고, 혼자 다니기 때문에 일찍 나가서 걷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스멀스멀 일어나 나갈 채비를 시작하였다. 배낭 운송 서비스를 할 짐을 부엌 옆 바닥에 두어야 했기에 꼭 챙겨야 하는 짐들만 작은 가방에 넣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 (지금 당장 없어도 되는 물건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그냥 챙기자)으로 하나씩 정리했다. 다른 까미노 친구들도 한두 명씩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웃으며 오늘 하루의 시작을 응원했다. 그리고 그중에 레라(발레리아)도 있었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녀와는 진하고 짧은 포옹을 나누며 "우리는 꼭 다시 보게 될 거야."라고 인사를 했고 그녀 또한 "맞아. 우린 만나게 되어있어."라고 말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문을 열고 나왔다. 비가 오고 있어 주섬주섬 비옷을 입었다. 배낭을 메지 않아서인지 몸이 이상하리만치 가볍고 어색했다. 운송 서비스를 신청한 업체에 배낭 사진을 보내면서 길을 나섰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비옷 모자로 타닥타닥 소리가 들리는 묘한 매력의 날씨였다. 나는 날씨에 기분을 꽤나 타는 사람이었기에, 우중충한 날씨에게 현혹되지 말자 다짐을 하며 웃으며 출발하였다. 덕분인지 비가 와도 알록달록한 건물들의 매력은 나의 시선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각자 자기만의 색을 뽐내면서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날씨의 기분이 변화되는 나약한 사람.. 점점 축축 쳐지는 몸을 이끌고 걷다 보니 다시 바다가 나왔다. 시원하게 파도치는 바다는 굉장히 씩씩해 보였다. 멀리서 보니 바다에 새들이 모여있었다. 갈매기인가..? 그러기에 검정 새들이었다. 무슨 새 인지 확인하고 싶어 다가갔다.


사람이었다.


이 날씨에,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그 파도를 온전히 받아들여 유영하는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두려움이라는 표정보다 설레는 표정으로, 오히려 이 날씨를 즐기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 날씨를 즐기지 못할까 싶은 생각을 했다. 다시 앞을 보고 내가 앞으로 걸어야 하는 길을 보았다. 안개로 가득 차서 저 멀리 희끗희끗하게 건물들의 그림자가 보이는 뿌연 시야였다. 난 앞으로 잘 걸을 수 있을까? 의심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이게 뭐 큰 고난이라고! 하는 마음에 웃음을 터트렸던 순간이었다.



일단 오늘은 아침 요거트와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한 카페를 목적지로 찍고 걸었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동네의 안으로 들어가 걷다가, 구불구불한 까미노길을 걷다 보니 마주친 성당. 그 성당에 들어가 보려면 비 오는 날씨를 잔뜩 머금어서 마치 물먹은 스펀지와도 같은 다리를 들어 올려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내가 이 길을 굳이 가야 할까 싶은 생각에 굳이 안 가도 되는 길을. 굳이라는 발동력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그 문은 닫혀 있었다. 까미노 길을 걷기 시작한 지 3일 차이지만 아직까지 성당에 들어가 본 적이 없기에 언제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다시 걷는다. 가다 보니 저 멀리 또 성당이 보였다. 까미노길에서 약간은 벗어난 곳의 언덕 위에 있던 성당이었다. 아까 받은 아쉬움이 거절당한 것 같은 상처였을까, 이번에는 굳이라는 마음과의 마찰력으로 커브를 돌아 지나쳤다. 어쩌면 그 성당은 문이 열려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진실을 보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잘한 포기였을까 모르겠다. 난 이미 선택했기에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다른 선택했을 때의 결과를 알 길이 없다. 다시 돌아가는 것 또한 할 수 없다. 내가 마주한 풍경은 날 보내주지 않았으니까.

정말 아름다웠다.

어쩌면 비가 와서 아름다웠을지도 모르겠다.

빗물에 적은 땅, 흐린 날씨로 인해 하얗고 뿌연 색을 빛내는 하늘, 아직 저물지 않은 초록과 갈색이 섞인 나뭇잎들, 그 사이사이에 피어나 있는 알록달록한 꽃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에 젖은 벤치, 그 공원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했을 때, 이만큼의 강렬한 그림을 선사해 줬을까 싶다.


굽이굽이 걸어 들어가면서 그 마을을 돌아다녔다. 해안 길의 동네답게 큰 배와 바다를 상징하는 동상들이 많았다. 비에 젖은 거리들이 외국 영화 속에서 나올법한 그 거리들처럼 보였고 이리저리 미어캣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구경하다보니 카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의 카페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포르투갈이니까 에그타르트는 다 맛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굳이 시킨 에그타르트는 별로였고, 아침 공복에는 그릭 요거트지, 하는 마음에 굳이 이 카페를 골랐던 이유였던 그릭요거트볼에 올려진 과일들은 하나같이 신선했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몸을 녹이기 위해 굳이 시킨 따뜻한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에스프레소로 나왔고, 굳이 문의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마음으로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굳이 갔던 그 집의 아르바이트생은 꽤나 잘생겼고,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굳이 들렀던 화장실은 뚜껑이 없어 사용하지도 못했다. 좋은 듯 싫은 듯 알 수 없는 곳에서 든든하게 나름의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해안 길을 마주했다. 비가 이렇게 오는 날에 바닷길을 굳이 걸었던 적이 있었는가...


비가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떨어지는 날에 온전하게 그 비를 맞으며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맘속으로 항상 원했으면서, 막상 비를 맞으면서 걸으니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왜였을까. 기분을 한순간에 바꾸려고 했다. 비옷을 써도 얼굴에 마구 뿌려지는 대자연의 세수를 그대로 만끽하며 바다 곁으로 갔다. 모래사장을 거닐며 바다를 잠시 바라보았다. 폭풍우 치는 바닷바람에 나약한 인간은 휩쓸려가기 마련이기에,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는 가까이하기에 무서웠던 곳이었다. 그런 바다 곁에 조금씩 다가갔다. 파도가 거세고 더욱 성질내는 바다는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대자연 그 자체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이날, 나의 굳이스러운 노력들이 허상으로 낙인 되는 날이었다. 하늘이 너 좀 호되게 외로워해라라는 심정으로 까미노 길에서 나 이외의 인기척을 느끼기 어려웠던 날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걸었던 길 위에서 나는 가장 오래도록 혼자 걸었다. 새삼스럽게 내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새싹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길을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 걸었다면 나는 과연 지금 이 비 속을 뛰어다녔을까. 함께 했다면 굳이 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함께한 순간이라는 추억이 될 텐데, 혼자서 했던 굳이의 노력은 날 사무치게 했다. 모처럼 배낭도 없이 가벼운 몸으로 거닐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내 몸은 보다 더 무거웠고 내 발걸음은 한걸음 한 걸음마다 철근과도 같았다. 아직 순례 여정의 3일 차였고 갈 길이 멀었는데, 나의 발바닥은 자꾸만 멈추고 싶다고 칭얼대듯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하늘은 무심하게도 번개를 내리쳤다.


나의 배낭이 숙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숙소에 연락해 보니 숙소 측의 답변은 따로 전달받은 배낭이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설마.

말도 안 돼.

이럴 수 있는 건가?....


나는 현실감각이 조금 뒤에 찾아오는 사람인 것 같다. 어릴 적 지갑을 잃어버리고 하루 동안은 찾을 수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있다가 확실하게 잃어버렸다고 자각하게 되었을 때 멘붕을 겪는다. 지금도 그와 같은 상황인 것이다.


한국인은 밥심..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식당을 가던 도중 문이 열려있는 마켓을 지나는데 누군가 "올라!"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서 가던 길을 멈추고 보니 앵무새가 있었다. 괜찮아질 거라는 인사의 말이었을까. 꽤나 진정된 마음으로 체력 회복을 위해 숙소랑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고, 영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한 직원이 나를 전담 마크했다. 주방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주문을 하며 집중의 표시로 왼쪽 손을 왼쪽 관자놀이에 갖다 대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근데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주방에서 들리던 시끄러운 소리가 멈췄다. 내가 그 소리를 거슬려하는 것 같아 보여서 그녀가 배려를 해준 것 같다. 이런 섬세한 배려가 심장이 마구 뛰던 나의 심리를 안정시켜 주었다. 음식의 맛 또한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유럽에 와서 제대로 된 음식을 이제서야 먹은 기분이었다.


자, 이제 현실을 자각하고 승부를 걸 때가 되었다.


답장이 없던 운송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받지 않는다. 점점 오만가지의 생각들과 상상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배낭을 잃어버렸고, 그 배낭 안에는 아직 10일 정도 남은 여정 동안 필요한 짐들이 담겨 있는데 그것들을 다 사야 하나.. 생각의 회로가 안 돌아갔다. 아니 사실은 정말 화가 났다. 해당 업체는 숙소에서 홍보를 하는 안내 책자에 있던 업체였고,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믿었는데, 나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굉장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운송 서비스 업체에서 답장이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때 숙소 측에서 현재 위치가 숙소와 멀지 않다면 숙소로 넘어와 함께 배낭을 찾을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연락이 왔다.


그 시간 저녁 5시 10분.


나는 화가 난 것인지, 앵무새와 직원분에게 받은 따뜻함 때문인지, 어떤 이유에서 간에 철근 같던 다리를 너무나도 쉽게 들어 올리며 성큼성큼 걸었다. 나도 이렇게 걸을 수 있던 사람이었구나. 아까는 그렇게 안 움직이더니, 지금은 이렇게나 빠른 페이스로 당당하게 갈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한편으로 현타가 와서 웃음이 났지만 나의 감정 속의 베이스는 씩씩거리는 화가 난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지도로 40분이면 기본 1시간은 걸어야 도착하던 페이스가 40분도 채 안 되어서 숙소에 도착을 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니 갈색 푸들이 뛰쳐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한 여성분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고, 그녀 뒤에 나의 배낭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심장이 와르르르르 무너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던 혈관이 잠시 멈춘 기분이었다.


뭐지..?

운송 업체는 내가 알려준 주소로 배송을 잘해주었고, 나와 꾸준히 연락했던 숙소는 내가 가려던 숙소와 "spot"이라는 이름이 겹치는 전혀 다른 숙소였다. 나는 이제껏 전혀 상관없는 숙소와 계속 소통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무 죄 없는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억울함을 어필하며 나의 상황에 대한 해결을 요구했다. 정말 수치스럽고 죄송했다.


모든 것은 다 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순례길에서의 배낭의 무게는 삶의 무게이자, 자유와 책임의 의미이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 했던)놓치고 있던,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삶의 무게가 나에게 보여주는 지나온 시간의 파노라마는 나를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는 온전히 나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어떠한 요행을 부려서 그것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한들, 나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그 불안감으로 인해 나는 오해와 의심 속에서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처는 훗날 나에게로 기필코 돌아온다는 것을.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없다고 해서 더 잘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무게가 있어야만 이 적당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과연 그 무게를 내가 온전히 스스로 지고 걸을 때야말로 비로소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라는 것을.


오늘 하루 내가 굳이 선택했던 순간들을 한 번씩 되묻게 된다.


배낭이 없다는 이유로 평소보다 더 걸었고 평소보다 더 돌아가더라도 그 굳이라는 이름 아래 선택한 순간들이 오늘 나의 하루를 길게 만들어주었다. 이 길었던 하루가 나에게 주는 책임에 대한 질문은 내가 이 여정 속에서 얻은 가장 큰 질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오늘은 써머타임이 끝나는 날이었다.


오늘은 기가 막힌 핑크빛 노을 하늘을 볼 수 있었고, 새벽 2시가 되면 다시 나는 과거인 새벽 1시로 돌아가고, 내일의 해는 1시간 일찍 뜨기에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하루를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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