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6
한 가지 변치 않는 사실은
나는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A person who wants to be remembered with love, just for one.
22th, Aug, 2024 이곳에 머물고 갔던 누군가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하게 되었던 어제의 땅울림을 겪고 오늘의 땅이 지구의 자전을 통해 태양을 만났다. 지난날보다 짧았던 어둠의 시간을 지나 1시간 일찍 얼굴을 비춘 일출 덕분에 나는 7시경에 숙소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유럽 땅을 밟은 지 4일 차, 끝내주는 날씨를 만났다. 역시 나는 날씨의 영향에 한없이 휘둘리는 갈대 같은 여자인가.. 어제는 순례 3일 차만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기분이 좋은지!
문을 열고 나와 골목을 지나 도로변에서 마주한 해님이 나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감이었다. 그 황홀감에 매료되어 태양을 향해 걷다가 정신 차려보니 가야 하는 곳의 반대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뒤를 돌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등지며 걷고 있자니 나의 등으로 하염없이 배터리 충전을 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배낭을 메지 않았던 어제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안정감이 있는 상태의 나는 지금 당장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만이 나의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풍경은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잔뜩 뿜을 수 있게 해주는 순간을 선물해 주었다. 그 선물 같은 다리를 건너고 코너를 돌아 마주하게 된 길.
그리고 그 길 위에 가득 채워진 글씨,
그 길에 적혀있는 그 표식이 나의 앞날에 무조건적인 행운을 빌어줄 것만 같았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나의 상상 속에서 여러 번 걸었던 그 길 위를, 나는 지금 밟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걷고 싶었던 그 길에서 날씨의 도움을 받아 나는 지금 행운이 가득 둘러싸인 공기를 머금은 채 길을 걷는다. 그 행운의 기운을 증명하듯 자신의 빛을 강렬하게 뽐내며 나에게 다가와 주는 태양 덕분에 나의 그림자를 벗 삼아 한껏 상기된 얼굴로 그 땅을 향해 발을 디딘다. 그렇게 나의 발바닥이 거리마다 자국을 남기다 보면 그 행운의 표식을 나의 귀를 향해 육성으로 선물해 주는 이가 나타난다. 그는 큰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고, 그를 따라서 홀린 듯이 길을 가다가 만난 작은 가게. 그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햇살이 제 집주인인 것 마냥 가게 안으로 가득 침범해 그 공간을 활보하고 있었고 나는 그 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모닝커피와 브런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기대어 있는 포근한 햇살의 품은 완벽하게 안락했고 그 주변으로 들려오는 포르투갈어가 과연 내가 낯선 곳에서 현지인과도 다를 바 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뿌듯하면서도 수줍은 성취감이 드러나는 미소를 짓게 하였다. 그리고 주인장의 추천으로 반신반의하며 주문한 빵의 맛이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맛있어서 오늘 하루의 시작이 완벽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 생각했다. 그 완벽함을 걸치고 나는 다시 나의 길을 향해 일어난다.
어제보다 1시간 일찍 얼굴을 들이민 해님을 서둘러 만나러 나온 탓일까. 오늘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왜 이리 없을까? 일요일이었다. 만국의 통일성인가, 일요일은 공휴일이기에 다들 집에서 쉬는 듯했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듯한 조용한 아침 골목길들을 걷다 보면 다시 바다가 보인다. 확실히 내가 걷고 있는 순례 여정은 바다와 함께 걸을 수 있는 해안 길이다. 어제의 그 사나웠던 바다는 잔잔하지만 활기를 가득 채운듯한 새파란 빛을 띄고 있었다. 그 활기 덕분인지 조용했던 골목길과는 달리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는 주민들, 러닝 하는 사람 또는 크루들, 그리고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노부부들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의 옆을 지날 때마다 눈인사를 한다. 반복되는 아이컨택의 행위는 나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작은 승부욕을 자극해 누구든 내 옆을 지나가는 모두와 눈을 마주하며 수줍은 미소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 활기도 잠시 오늘은 해안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이 유독 적었다.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게 되고, 바다의 곁에서 걷는 것이 아니라 언덕길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걷게 되었다. 붉은색 노란색의 건물들을 지나 초록색 나뭇잎들을 보며 그 언덕길을 걷다 보면 보이는 안내판에 산티아고까지 208km라고 적혀있다. 아직 나는 100km도 채 걷지 않았다는 사실과 동시에 벌써 50km 정도를 걸어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지점까지 오는 동안 나는 한국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어제는 까미노 친구들 또한 한 명도 만나지 못했고, 오늘은 과연 어떤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을 품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두 명의 중년 여성이 갈림길을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또다시 나의 승부욕이 피어나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웃으며 수줍은 미소를 나눈다. 그들은 까미노 길에서 지나갈 수 있는 마을들이 정리된 종이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오로지 까미노 표식만을 찾으며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아날로그의 힘이란 굉장하고 멋있었다. 그들의 그런 행위가 나를 또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 옛날 순례자들은 핸드폰 없이 이 길을 걸었을 텐데, 나 또한 디지털에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함께 까미노 표식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 것 같다는 걱정에 결국 핸드폰을 꺼내 방향을 확인하여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방향을 인도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걷게 되었고 USA와 South Korea가 만났다. 디지털에게 한번 졌던 마음 때문일까 나는 번역기를 돌리지 않은 채 그들과 대화했고, 나의 귀는 그들의 언어를 마구 튕겨내어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왜 이 길을 선택했냐고 물었고, 나는 바다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질문은 왜 이 “까미노길”을 걷고 있냐는 의도였다. 부끄러웠다. 계속되는 소통의 오류는 나를 작게만 만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보고 싶어, 그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이곳에 왔다 여긴 내가. 세상을 눈으로 보는 것만이 내가 원하던 소통이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과의 연결을 위해서는 서로의 언어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며, 나에게는 그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직면한 것뿐이었다. 잠시 동안 의기소침해진 마음으로 침묵했다. 그 침묵 때문이었을까, 그녀들이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준 걸까, 점점 서로의 걷는 속도가 달라지며 결국 나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 있다는 카페에 가기 위해 좌회전을 했고 인사도 할 겨를 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난 그녀들에게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했다.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에 지퍼를 잠근 듯 다물어 있던 나의 입술. 그때 만난 펍카페는 나의 그 침묵을 깨주는 곳이었다. 가게 안으로 슬며시 발을 들이밀었더니 벽 가득하게 순례자를 상징하는 듯한 장식들, 많은 이들이 다녀간 듯한 방명록과 햇빛이 슬며시 들어오는 창가에 신성한 듯이 걸려있는 가지 각국의 소지품들, 넓지 않은 공간에 비해 테이블과 의자로 가득 차서 서 있기에는 충분한 눈의 도장을 찍을 수 없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라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가게 주인장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듯한, 그런 분위기의 공간.
나를 발견한 가게의 주인은 자연스럽게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었고, 잠시 구경만 하려고 들렀던 나는 그 공간에 완전히 반한 나머지 오렌지주스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왔던, 이곳에 올 예정인 이들을 향해 우리는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이 공간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할 것이라는 직감적인 마음을 공유하고자 방명록에 "부엔 까미노"라고 적었다. 오렌지주스만 주문한 나에게 자신의 마음이라며, 비스킷과 잼 그리고 레몬과 땅콩까지 잔뜩 챙겨준 이 가게의 주인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이곳에 한눈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니라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가게를 나와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찍은 한 장. 그 한 장 안에는 나와 함께 가게 밖 테이블에 앉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었던 사람들이 담겨 있고,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포르투갈 해안 길은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순례길 여정 중 한 루트였다. 흔히들 걷는 강도 높은 산행 길보다 평지에서 순탄하게 걸을 수 있는 해안 길의 비중이 많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 순례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비가 와서 그런지 막혀있는 듯한 내륙 길보다 뻥 뚫려있는 해안 길이 좋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누군가 산과 바다 중에 어디를 더 선호하냐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던 내가 생각보다 확실하게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그냥 좋은 날씨에는 어디든 좋다고 생각하는 금사빠였다.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지고, 이리저리 처음 보는 색상의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피톤치드 향이 가득 나는 이곳은 나에게 평소보다 숨을 크게 쉴 수 있는 공기를 선사해 주었다. 그 공기를 눈으로 보기 위해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를 만난다.
Hello
Welcome Rio Neiva do Neiva.
l' live in this beautiful village, and like you l'am also a pilgrim...
Behind this pine tree are some handmade pieces made by me.
Choose One and give what you want...
And remember don't take the Journey in a hurry....
Enjoy what comes after each curve.
Thank you and enjoy tour beauty
Journey...
BOM CAMINHO.
BUEN CAMINO.
SAFE JOURNEY
BUON BIAGGIO
GUTE REISE
BON VOYAGE
YI Lù PìNG'ãn
"이 아름다운 여정을 즐기세요."
누구인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받은 소중한 마음이었다. 그 소중한 마음을 응축시켜 하나하나 곱게 만든 조개키링과 조개 팔찌 중 하나를 골랐다
이전 몽골에 갔을 때, 낙타 인형을 잘 못 고르던 나에게 쨔야가 가만히 보다 보면 다 자신에게 올 운명인 것이 보인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선택한 조개키링 하나를 작은 가방에 걸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에 확실한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그 나무 앞 나무 둥이에 앉아 강물 소리를 들으며 잠시 숨을 쉬었다.
자! 여유만 부리다가는 일몰 전에 숙소에 도착하지 못한다. 오늘은 기필코 숙소에 일찍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산속이라 그런지 핸드폰의 gps가 잘 안 잡혔다. 길이 아닌 것 같은 풀숲을 지나 굳게 닫혀있는 철문 너머로 까미노 표식이 보였다. 뒤를 돌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한 소녀를 만난다. 나는 이쪽으로 가면 길이 막혀 있다고 말을 건넸고, 그녀와 나는 어떻게 가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돌려 담을 쳐다본다. 우리는 담을 넘기로 했다. 순간 탐험가가 된 것처럼 그녀가 먼저 담을 넘었고, 나에게 손을 뻗었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그녀의 손을 잡기가 조심스러웠지만 그녀는 굉장히 듬직하게 걱정 말라며 나의 손을 덥석 잡고 올렸다. 그녀의 이름은 옥사나,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자애였다. 길을 개척한 우리는 아까 발견했던 닫혀있는 문을 슬쩍 건드렸는데, 세상에 그 문은 열려있는 문이었다.. ㅋ 우린 그냥 재미난 모험을 즐긴 셈이었다! "... What?!?"이라며 민망해하는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주던 그녀 또한 까미노 길을 혼자 왔다 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기 전 자신의 사진을 찍어주는 이가 없었다며 사진 요청을 해왔고,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러곤 곧 또 만나자는 짧은 포옹과 함께 그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또다시 혼자 걷기 시작한 여정. 그리고 도착한 언덕배기 위의 한 성당. 그 너머로 윤슬을 가득 채운 바다가 훤히 보였다. 저기 너머로 내가 걸어온 길들이 보이고 그 앞에 적힌 안내판에는 산티아고까지 188km. 새삼스럽게 나 혼자 떠나온 여정에 대한 실감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많은 이들과 계속해서 함께 걷지는 않기에 확실히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내가 이 길을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왔다면 보는 풍경이 조금 달랐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혼자 와서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피어나는 새싹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좋고, 혼자 와서 저 하늘을 향해 드높게 뛰어놀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운 것 같다. 길을 걷다 들리는 신나는 노래에 그들은 춤을 추며 웃고 있는데 나는 왜 그들과 함께 웃기는 하지만 함께 춤을 추지는 못할까. 마음속으로는 한껏 그들과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만이 나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으면서, 왜 나는 그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을까. 우리의 소통의 부재는 언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그들의 세상에 아직 뛰어들지 못한 것이다. 오늘의 날씨도, 오늘 만났던 사람들도, 오늘 내가 봤던 풍경도 하나같이 완벽한데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무엇인가 나를 자꾸 허전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속한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오후 4시를 향해간다.
숙소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일몰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의 일몰 시간은 어제보다 1시간 이른 17시 40분이었다.
그곳에서 노을을 정말 보고 싶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곳에서 보는 노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했었다. 산타루치아 성당.
그 성당은 산 정상에 위치하여 높은 곳에서 바다와 함께 일몰과 일출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성당 옆에는 순례자들이 묵을 수 있는 알베르게 또한 있지만 인기가 많아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그곳에서 1시간 30분가량 떨어져 있는 숙소를 예약했고, 숙소에 짐을 두고 노을 보러 다녀와야지 했던 나의 계획이 거북이 같던 나의 페이스 덕분에 무산되었다. 이제 노을을 보기 위해서는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그 노을을 위해서 “택시”의 선택이 맞는 걸까... 고민이 잠깐 들었음에도 지금 택시를 타지 않는다면 그곳에서의 노을은 볼 수 없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여정이 있기에 오늘만이 그 노을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난 꼭 그 노을을 봐야 했다.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듯 숙소의 호스트 분께서 영어가 가능한 딸과 계속해서 통화를 하며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고, 포르투갈어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택시를 부르기 위해 함께 도와줬다. 포르투갈 사람들.. 만만세.. 그렇게 나는 택시를 타고 그 노을을 향해 달렸다.
기가 막힌 노을이었다. 내 인생에서 그런 노을을 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 yes!라고 말할 수 있게 살아왔던 나이지만, 그곳. 그 성당 앞에서 마주한 그 노을은 내가 앞으로 언젠가 또 접할 수 있을까 싶었던 노을이었다. 그건 그저 아름다운 노을을 봤기 때문에 오는 경이로움이 아니었다. 이 높은 곳에서, 생전 밟아보지 못한, 나의 고향의 반대편까지 와서 북대서양의 뻥 뚫린 바다를 바라보며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이란. 내가 오로지 혼자서 이곳에 왔구나 싶은 오늘의 체감을 항상 빛나고 있던 너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감사함의 평온함이었다. 환하게 빛나던 네가 점점 주황빛, 붉은빛으로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곳에서 보니 내가 아직 걷지 못한, 내일이면 걷게 될 길이 보인다. 오늘 나는 날씨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고, 더 많은 풍경을 눈으로 담기 위해 모든 길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속 풍경은 오로지 지금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이고 내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기에, 내 기억 안에서 영원토록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남들은 다 나를 지나쳐갈 때, 나는 한걸음 두 걸음 더 느리게 걷게 되었다. 내가 걸었던 이 길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기억하기에 나의 기억 용량이 한없이 부족하지만 나의 이런 바람이 기어코 내 안에 각인이 되어 훗날 이 순간을 돌아보는 날에 잊고 있던 그 심야에서 떠오를 수 있으리라.
어느 정도 해가 저물어갈 때쯤 날씨가 꽤 많이 쌀쌀해져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성당 안으로 들어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고, 그 첫날에 3번째 성당 방문이었다. 우리 집은 불교 집안이라 성당은 살면서 처음 들어가 보았다. 첫 번째 두 번째는 기도조차 하지 못했는데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숨어, 그 공간의 가장 맨 뒤에 서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신이 있다면, 저에게 희망을 보여주세요.
나에게 큰 시련이 오더라도 내가 잘 견뎌낼 수 있다는 희망.
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제가 할 수 있다는 희망.
그저 그 희망을 보여만 주신다면 저는 그 희망을 믿고 걸어가겠습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하고도 아주 작게 소망했다.
살포시 감은 눈을 비집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 눈물이 과연 나에게 희망이었을까
희망은 언제나 절망과 함께 공존한다. 그래서 굉장히 두렵고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래서 멀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희망의 부재를 느낀다.
그 희망의 부재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속에서 사랑을 앗아간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벅차다.
그렇기에 기필코 그 사랑이 나의 세상에 가닿아 드넓은 바다를 두려움 없이 헤엄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