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도 8월의 시작_23년도 12월
나를 내뿜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고2, 18살. 순수했던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예민하고 고민이 가장 많았던 시기, 그 여름의 끝자락. 7월 말에 부모님의 이혼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시작은 어쩌면 그때였다.
우리 학교는 소규모 학교라 1반밖에 없었고, 담임 선생님은 1학년 때부터 계속 우리 반을 맡아오던 분이었다. 21년 여름, 8월 무렵. 같은 반이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함께한 단짝 친구 번영이가 말했다.
“내가 하는 봉사가 있는데, 같이 해보지 않을래?”
그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친구를 따라 영월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에서 1시간쯤 걸리는 주천면으로 향했다. 주천면에 도대체 뭐가 있지?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곳에는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 청소년 기관이 있었다.
나는 북면 마차에 살 때 영월읍에 있는 청소년수련관에서 방과후아카데미도 참여하고 봉사도 자주 했었다. 중학생 때까지 꾸준히 다니다가 잠시 쉬었는데, 고2가 되어서 친구 덕분에 다시 새로운 기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알아가면서 꾸준히 다녔고, 그때의 경험들은 지금까지도 내게 큰 자산이 되어 있다. 특히,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은 내게 정말 많은 성과와 경험을 안겨준 곳이었다.
영월은 기록하고, 돕고, 배우고, 때로는 가르치면서 나는 지역 안에서 청소년활동가, 지역(로컬) 활동가로 천천히 성장했다.
아래의 기록들은 내가 지나온 순간들을 모아놓은 작은 발자국들이다.
친구가 하고 있던 ‘복. 남. 약. 모’라는 봉사 프로젝트
‘복용하고 남은 약을 모아요’의 줄임말이었다.
가정과 학교에서 폐의약품의 올바른 처리 방법을 알리고 홍보하는 프로젝트였다. 영월 관내(북면·영월읍·주천면)의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폐의약품을 어떻게 버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몰랐고.
하지만 이 봉사를 하면서 환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넓어졌다.
친구를 따라갔을 뿐인데, 청소년문화의집이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점점 관심이 생기고, 하고 싶은 열정이 불타올랐다. 기관장님과 청소년지도사님들도 좋은 분들이라 주말마다 프로그램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주천까지 가야 한다는 거리 때문에 핑계가 생기기도 했지만, 관점을 바꿔보니 그곳은 내게 좋은 영향을 주고, 내가 자라나는 환경이 되어준 곳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다녔다. 자연은 인간 때문에 파괴되고 있고, 지구온난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계절이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자연과 동물들은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그런 현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폐의약품 역시 같은 문제였다. 약국이나 병원에서 처방받았다가 중간에 복용을 중단하거나 과다 처방된 약들이 그대로 버려진다. 많은 사람들은 남은 약을 하수구, 변기,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린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하수 처리 과정에서도 약물 성분이 분해되지 않은 채 하천과 강으로 흘러가 생태계를 교란한다. 일부 항생제나 호르몬 성분은 내성균 발생까지 유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폐의약품을 올바르게 처리하도록 알리고, 직접 약국에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지도사님과 청소년들이 함께 약국을 방문해 수거가 잘 이뤄지는지도 확인했다. 환경자원화시설에 견학도 가서 쓰레기 처리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배웠다.
그리고 알았다.
목표와 의지가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것.
보건소와 약국에는 폐의약품 수거함이 있고, 약은 용기 그대로 넣는 것이 안전하다.
약은 캡슐, 물약, 시럽, 연고, 건강기능식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는 서울의 사단법인 ‘늘픔가치’ 대표님의 교육도 받으며 더 깊이 배웠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많이 알려줄 수 있었다.
부적절하게 버려진 약은 결국 우리 몸으로 돌아온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충전도시 영월 예비문화도시 사업 프로젝트 > 문화도시영월 시민추진단 > 문화영월총회 홍보마케팅분과 청소년기자단 발표사례> 법정문화도시 영월 > 문화영월반상회 청소년분과 A, B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에서 청소년들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기, 영월군 문화관광과 공무원분들과 문화도시센터의 김경희 센터장님, 여러 대리님들이 기관을 방문하셨다.
그때 처음 ‘영월이 문화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영월이 문화도시라고요? 언제부터요? 나는 문화도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월은 2021년 11월 제4차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된 이후, 2022년 12월에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비문화도시가 되면서 청소년분과가 꾸려졌고, 우리는 각자 위촉장을 받았다. 지역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리빙랩’ 사업 설명회를 들으며, 청소년문화의집에서도 그 사업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게 되었다. 청소년문화의집에서는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쓰레기 특공대, 텀블러 대여소, 복남약모 등 다양한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우리는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며, 실제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했다.
문화영월총회가 열렸을 때 우리는 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랐다. 청소년들이 각자 담당한 프로젝트를 PPT로 정리해 발표하고, 주민들 앞에서 직접 설명했다. 정말 떨렸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 중 하나였다. 나는 청소년분과 홍보·마케팅 팀, 즉 청소년기자단으로서 사례 발표를 맡았다. 청소년 개개인의 목소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지 몰라도, 목소리를 모아주는 ‘청소년 기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 아래 “청소년도 기자로 존중받아야 합니다.”라는 정책 제안도 했다. 비록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주민들 앞에서 청소년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다행히 영월군이 최우선으로 관심을 둔 정책은 청소년분과의 생물다양성 프로그램이었다. 또 텀블러 대여소 정책 역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일상 속에서 여행을 가거나 파티를 하거나,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일회용품을 소비한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일회용품의 증가를 줄이기 위해 텀블러 대여소는 큰 역할을 했다. 청소년문화의집에서는 텀블러가 없거나 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텀블러를 대여해 주었고, 나도 가끔 텀블러를 깜빡하고 물이 필요할 때 편하게 이용하곤 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아주 좋은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문화의집뿐 아니라 주천고등학교에서도 함께 실천되었다. 우리는 주체가 되어 문화·환경·놀이·언론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들을 만들어갔다. 청소년들의 이러한 역할과 참여 덕분에 영월은 2022년 12월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였고, 영월의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http://www.ywmedia.kr/news/articleView.html?idxno=12372
법정문화도시가 된 뒤, 나는 청소년기자로서 문화도시센터장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지정 이후 열린 군민보고회에도 참석했고, 문화도시 선정에 기여한 이들을 위한 표창식도 있었다. 청소년 개인과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변화였고, 공동체 형성에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 기관의 관장님이 대표로 표창을 받았고, 지역 최초의 청소년 시민추진단 33명도 함께 표창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뿌듯했다. 영월의 한 청소년으로서, 지도사들과 지역 주민들과 함께 영월을 법정문화도시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브랜드 '연청(蓮淸)'
나는 인스타그램을 보면 다양한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자주 뜬다. 하나만 봐도 알고리즘이 줄줄이 비슷한 콘텐츠를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브랜드 개발·로고디자인·패키지디자인·사업 운영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 지도사 선생님도 원래 디자인 일을 하시던 분이라 담당을 맡아주셨다. 청소년이 직접 마케터가 되어 브랜드를 만들고 상품개발까지 해보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골에서도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지도사 선생님 덕분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경험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식품 관련 절차로 인해 1~2개월 안에 실제 판매까지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신제품 설명회를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영월 담다 프로젝트'는 영월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지역 자원을 활용해 브랜드와 제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팀은 주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잎을 활용해 청소년들이 만든 '연잎 효소'를 사용하여 이름은 '연꽃의 연'과 '꿀'의 의미를 가진 '청'을 더해 연청(蓮淸)이라 지었다.
지역에서 버려지거나 관심받지 못하던 자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청소년의 생각과 삶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였다. 돌배, 개복숭아, 연잎 등 지역에서 쉽게 만나는 재료들로 효소를 만들고 이를 다시 지역에 나누는 '가치 순환'활동 속에서 연잎 효소가 탄생했다.
시골에서 지역 자원을 활용해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까지 개발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우리는 청소년지도사 선생님, 영월 파고디자인 전문가와 함께 다음 과정들을 직접 배워 나갔다.
일러스트 기초
무드보드 제작
자료 및 원재료 조사
디자인 콘셉트 기획
서울 디자인페어 견학
발표 준비
신제품 발표회
함께한 친구와는 연잎 효소의 브랜딩 방향을 놓고 계속 의견을 나누고 실험하며 배워갔다. 모두 아마추어라 실수도 많았지만 그만큼 탐색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값졌다.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지금도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러스트와 포토샵을 연습하고, 내 개인 명함까지 직접 제작해 본 것도 그 배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팀 연청 브랜드는 나와 유나연 청소년이 함께 만들었다.
20~30대를 주요 타깃으로 삼아 피로를 덜어주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달콤한 음료'콘셉트로 기획했다. 연잎이라는 자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로고를 만들고 지역에서 이어오던 가치 효소 프로젝트를 상품으로 확장해 의미를 담았다. 프로젝트 과정에서는 지도사 선생님뿐 아니라, 영월의 파고디자인 대표님이 디자인 멘토로 함께해 주셨고, 사회적 기업 '화이통' 양승우 대표님의 사업 마인드와 지역 자원 활용 방식 등 실제 판매와 연결되는 중요한 부분을 멘토링해 주셨다.
언론에 관심을 가지다
젊은 열정과 가는 목소리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기자님들과 함께 활동하며,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처음으로 깊게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영월 지역의 청소년 활동을 중심으로 이슈를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 청소년기자단 책자까지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현장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 그리고 한 글의 무게가 누군가에게 닿아 영향을 미친다는 보람을 배웠다.
활동 초반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갖는 역할, 기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윤리, 그리고 지역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다양한 현장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에서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를 우리가 직접 기자가 되어 취재하고, 기사로 정리해 소식지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기사의 기본은 6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정확히 배웠다. 일기의 연장선 같으면서도 훨씬 더 객관적이어야 하는 글쓰기였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특별했던 이유는 '청소년은 미래다'라는 말이 흔하게 들리지만 정작 청소년의 말에 귀 기울이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는 현실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청소년이 직접 기사를 쓰고, 기록하고, 지역에 알리는 일은 단순한 취재를 넘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2022년 7월, 청소년기자단은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진행된 프로그램들과 영월군의 청소년 이슈들을 취재해 상반기 소식지를 발간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먼저 이해해야 했다.
쓰레기 특공대, 복남약모, 텀블러대여소, 영월군청소년에코월드, 청소년기자단, 재능놀이터, 생물다양성, 환경탐사대, 반갑다 제비야 등...
우리는 각 프로그램을 조사하고 내용을 정리한 뒤 기사 형식에 맞게 구성해 나갔다. 어쩌면 내가 '기자'라는 진로를 고민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을지 모른다.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한편으로는 세상에 떠도는 잘못된 기사들과 왜곡된 정보들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고민이 생길 때마다 지도사 선생님과 관장님은 늘 귀 기울여 주었고, 나의 생각을 실제 활동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지금 돌아봐도 정말 멋진 분들이었다. 청소년기자들과 함께 쓴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하나의 소식지 책자로 완성되었을 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 과정 속에서 팀명도 만들어졌는데, 바로 '가론'이었다. '가론'은 순우리말로 '말하기를'뜻한다. '청소년이 말하고, 어른들이 들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그 마음을 담아 우리는 팀 이름을 가론으로 정했다.
이 활동은 단순한 프로젝트를 넘어 청소년기자단에서 시작해 영월 청소년 언론사 '가론' 창립으로 이어진 중요한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
주천면 용석 2리 마을회관 & 주천초등학교 마을회관
2023년 9월, 주천면 용석 2리 마을회관 주변에서 진행된 '작은 마을 벽화학교'프로젝트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예전부터 미술을 좋아해 벽화를 한 번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가 생겼다. 청소년들이 직접 구상을 하고,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 함께 모여 작업을 진행했다.
용석 2리 마을은 옥수수 농사가 많은 마을이라, 한 청소년이 옥수수를 주제로 스케치를 해 벽화를 만들었다. 주천초등학교 마을회관 측면의 횡단보도 벽화는 노란색 배경을 사용해 안전한 통학 환경을 상징적으로 나타냈고, 마스코트 '뭉초'를 넣어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의 성공 개최를 응원하는 메시지도 담았다.
스케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청소년과 청소년지도사, 애니메이션 용창우 작가님과 함께 완성했고, 우리는 그 위에 페인트로 하나씩 색을 채워 넣었다. 채색 과정은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진심으로 임하는 편이다. 미술을 할 때도 스케치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색을 칠해야 하는데, 벽화 작업은 실수하면 덮고 또 덮으며 완성되는, 마치 시간을 쌓아 올리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마을회관의 오래된 벽에 색을 입히는 일은 단순한 채색이 아니었다.
오래된 공간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일, 그리고 그 변화를 주민들이 마주하게 될 순간을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다.
영월군청소년수련관, 영월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영월문화도시지원센터, 영월진로지원체험센터, 영월도시재생지원센터, 영월군청 기관 방문 캐럴 행사
22년 12월 23일~24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틀 동안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에서 청소년과 지역 주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연말 행사를 진행했다. 소도시 시골의 겨울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행사 기간 동안 우리는 영월군청소년수련관, 영월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영월문화도시지원센터, 영월진로체험지원센터, 영월도시재생지원센터, 영월군청 등 여러 기관을 직접 방문했다. 청소년들과 바이올리니스트가 함께 캐럴을 연주하고 불렀는데, 그 소리는 건물 복도와 사무실 사이를 부드럽게 울리며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퍼뜨렸다.
그 순간만큼은 기관 직원도, 주민도, 청소년도 모두 하나의 '마을 사람'이 되어 있는 듯했다. 정말 가족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지역장, 부군수, 공무원, 주민 등 다양한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작은 공연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귀 기울여 주었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청소년들이 지역 앞에서 '재롱잔치'를 펼치고, 그것을 어른들이 미소 지으며 응원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큰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캐럴 공연일지 몰라도,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고 지역과 연결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눈 속에서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웃음이 퍼져 나가던 그 이틀은, 아직도 마음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봉사, 자기계발, 탐험, 신체활동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프로젝트는 나 스스로의 시간을 증명해 내는 과정이었다. 주말마다, 때로는 평일에도 폐의약품을 알리고 수거하는 봉사를 하고, 일러스트 디자인을 익히고, 태화산을 오르며, 꾸준히 달리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 활동을 이어가던 중, 2022년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2022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포상식>에서 우수활동으로 선정되어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상을 받았다.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에 참여한 전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자기 계발 부문 우수사례로 뽑힌 것이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에서는 유일한 선정자였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나는 디자인의 기초지식을 쌓고, 어도비 프로그램을 배우며 전문성을 높이는 활동을 전문가 선생님과 함께 계획하고 실천했다. 지역에서는 배우기 쉽지 않은 분야였지만, 포상제 활동을 통해 디자인을 깊이 탐구할 수 있었고, 배운 것들을 지역 캠페인이나 상품 개발 등으로 다시 환원하며 선순환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프로젝트는 때때로 몸이 나른해지고 지치기도 했지만, 큰 자리에서 상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은 그 모든 시간을 보상해 주었다. 무엇보다 뒤에서 묵묵히 지지해 준 지도사 선생님들과 관장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장과 지역사회의 작은 변화를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계속 발로 뛰며 움직이고 싶다.
2023년 2월-11월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지역 신문? 영월 1호? 매거진?
청소년 목소리를 내기 위해 대표가 되어 만들다
순우리말, '말하기를 이른바'
내가 '가론'이라는 이름 앞에 '대표'라는 두 글자를 처음 붙였을 때, 그 두 글자의 무게를 온전히 헤아릴 순 없었다. 영월 청소년 언론사 '가론'은 순우리말로 '말하기를, 이른바'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이름처럼 청소년과 청년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에 전하는 힘을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창간한 신문이었다. 지역의 다양한 소식을 청소년의 싱그러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알리는, 그야말로 세상을 향한 우리의 '말하기를'담는 공간을 꿈꿨다.
어릴 적부터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었지만, 청소년 기자단 활동을 통해 그 꿈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던 중,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관장님의 제안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과 협의하여 신문을 창간해보지 않겠냐는 말씀에, 나는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네, 해보겠습니다!'하고 답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덜컥, '가론'의 대표가 되어 이 모든 프로젝트를 이끌게 되었다. 영월은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이라 청소년 활동에 대해 어른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 간극을 메우고 싶었다. 어른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소통하고, 청소년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활동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에너지가 지역에 스며들어 모두가 '같이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언론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창간 전 관장님과 담소를 나눴던 나는 '청소년이 미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실천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나의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했다. 지역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우리는 기사로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길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처음으로 팀을 이끌어야 했고, 내가 대표라는 사실 자체가 때로는 거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와 친구 2명, 그리고 고등학생 팀원들이 전부인 작은 조직이었지만, 이 프로젝트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내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깨를 짓눌렀다. 지금 생각하면 부족했던 추진력과 리더십 탓도 있었을 거다.
매달 회의를 하고, 기사 주제를 정하고, 인터뷰를 위해 주말마다 지역 청년 카페를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팀원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대표로서 정말 고군분투했지만, 어쩌면 조금 더 소통하고 역량을 모았더라면 더 멋진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약 10개월간 이어진 '가론' 활동은 나에게 끝없는 고민을 안겨주었다. 사업자 등록까지 고민할 정도로 진심이었지만, 막상 사업자를 낼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았지. 활동 자체가 분명 값진 성과와 과정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이신문을 외면하고 온라인 매체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데, 우리 청소년 신문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매일 밤 깊은 고민 속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이었다.
내가 '가론'을 잘 이끌고 있는지, 청소년들의 꿈과 열정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고, 미디어 경험이 전무했기에 답답함은 더 컸다. 다행히 주변의 좋은 어른들께서 아낌없는 조언을 주셨고, 나는 그 말씀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며 배웠다.
'기레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그 단어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쓰레기 기자'라는 뜻을 알고 나서는 기자가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직업인지 깨달았다. 근거 없는 모함과 가짜 뉴스가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언론의 무서운 민낯은 나를 더욱 신중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가론'의 포부를 어떤 자리에서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그때는 모든 고민을 홀로 짊어져 공허함이 컸고, 팀원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든 공허함과 부담감이 나를 한 뼘 더 성장시킨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가론'은 나에게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닌,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스스로를 이끄는 리더십, 그리고 성장통을 통해 단단해지는 법을 알려준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지역의 청소년과 만나다
주천중학교 진로탐색 푸른이기자단 수업 강사
영월 청소년 언론사 가론 신문사를 운영하다 보니, 영월군청소년문화의집에서 주천중학교 '푸른이기자단' 동아리 수업 강사를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주천중학교 1학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처음이었지만 흔쾌히 수락했고, 빠르게 PPT를 제작하며 강의 계획을 다시 살펴보는 등 벼락치기로 준비했다. 처음 맡은 강의라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이었다.
1회 차 첫 수업은 물론 자기소개, 활동 이력 아닌가.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는데 아이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며 천천히 감을 잡아갔다.
2회 차 두 번째 시간에는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고명진 관장님의 사진 특강이었다. 영월로 귀촌하신 뒤 청소년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시며 바쁘게 활동하고 계신 선생님이시다. 관장님은 청소년들에게 사진을 넘어 즐거움, 배움, 경험 자체를 주기 위해 열정을 쏟는 분이라, 학생들도 흥미롭게 참여했다.
나는 전문 기자는 아니지만 기자를 꿈꿔왔고, 활동을 통해 취재 및 기사 작성 등을 직접 해보며 꿈을 어느 정도 이룬 경험을 아이들에게 공유해 주었다. '계속 배우고, 방향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성장"이라는 말을 느꼈다. 영월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배우고 경험이 쌓이는 걸 보면, 일은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스펙을 쌓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언젠가 내 삶을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지금의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3회 차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기사를 디자인 틀에 넣어 보여주고, 함께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1면에 사용할 단체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었다. 원래는 드론으로 항공샷을 찍고 싶었지만 장비가 없어, 주천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벽화와 운동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지도자 선생님이 사진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하셔서, 대신 지도사 선생님께서 촬영을 맡아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업 준비의 중요성과 말의 전달력,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감을 많이 느낀 시간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더 잘 준비해서 완성도 있게 마무리하자고 다짐했다.
4주 차 11월 28일 마지막 수업에서는 드디어 1학년 푸른이기자단이 만든 신문을 주천면 곳곳에 배포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이번 신문은 주천면 근처 배포되었다. 1학년 학생들이 직접 취재하고,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해 만든 신문이었다.
나의 원하는 그림이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꿈꾸던 모습, 내가 하고 싶었던 활동들, 지역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성장해 가는 삶.
그런 그림을 실제로 실현할 수 있게 해 준 곳이 바로 청소년시설이었다. 내가 상상만 했던 일을 행동으로 바꿀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청소년들과 함께 배움과 경험을 쌓아가며 '아, 내가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더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준 공간이었다.
나아가 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은 내 삶에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내가 해온 청소년 활동들은 모두 지역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았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고3 입시에서는 수시 1 지망으로 강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지원했다. 7명을 선발하는 전형이었는데, 단 1명만 충원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문자메시지와 전화로 받았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곧바로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이었을까?'싶다.
정말로 바라던 대학, 지방에서 알아주는 강원대학교를 가지 않고 영월의 전문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결정에 주변 많은 분들이 염려를 표했다. 지인들은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었기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내가 원치 않는 과에 가서 취업하고 돈을 벌면 그만이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결국 2년제 대학 생활 내내 학업보다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사업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하고 싶은 것이나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기꺼이 수업까지 빠져가며 경험을 쌓았다.
앞으로도 영월을 기록하고, 연결하며, 나의 방식으로 성장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18세부터 내가 방황하고 고민할 때마다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른들께 해마다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