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회고
트레이딩을 한다는 것은 뭘까. 깊은 인사이트에 기반한, 장기투자나 가치투자 혹은 (통계적) 차익거래 등 퀀트 알고리즘 같은 확률게임 그러한 고급스러운 투자도 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차트에서, 옵션 체인에서, 호가창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서 하는 트레이딩 이야기를 가장한 그냥 '24년도 회고일 것 같다.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 쓰는 글이라, 솔직하지만 두서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것을 계속 되묻는다고 해서, 어디 좋은 곳에 여행을 간다고 해서 꼭 대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무언가 많은 일을 겪고 나서는 이 질문에 조금은 명확하게 답하게 된다. '24년도는 그것을 조금 더 잘 답할 수 있는 해였던 것 같다.
이 문단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생각해 보면서 적는 문단이라 앞뒤가 안 맞을 예정이다.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라는 콘텍스트를 잘 정의부터 해보도록 하자. 링크드인이나 원래 브런치스토리에 쓰던 그런 흔한 커리어 이야기 말고 나는 본질적으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생각해 보자.
나는 결국 인생을 가지고 베팅해 가면서 살았다.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하는 것들이 왜인지 가끔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였고 그 결정들이 결국에는 결과가 잘 나왔다. 뭐 당연히 안 좋은 경험일 때도 많았다.
"인생 베팅"은 뭔가 나름 낭만 있고 고상한 단어와 같지만, 나는 이 단어가 가장 원초적인 단계의 베팅, 즉 카지노에 가서 돈을 걸거나 (이건 확률 분포가 알려져 있고 내가 지는 게임이니 물론 하지 않는다 재미도 없다) 혹은 호가창 냄새를 맡으면서 거래하는 일 따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난다.
나는 그런 베팅들을 하며 살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이유는 솔직히 붙이자면 많겠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사실 요즘은 모든 게 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것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굉장히 하찮은 일이지만, 열심히 어둠의 과제알바(?)를 틈틈이 해가며 모은 전재산을 전부 잃은 2020년도 초중순 즈음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좀 거래 많이 하면 일주일에 수수료만 그만큼 내고 있을 수도 있는 수준의 금액이겠다.
그런데, 사실 살면서 겪은 그 어떤 일보다 조금 강하게 기억이 나는 일이다. 가장 하찮은 수준의 손실이고,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의 수수료로 내고 있거나 수익/손실로 생각하면 10분 안에도 가끔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의 금액이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는 새로 벌어서(?) 입금한 아주 작은 시드를 가지고 하루에 12시간씩 호가창만 보면서 (국내장 -> 미장 -> 중간중간 남는시간코인) 한 달을 거래했다. 그것까지 야무지게 우하향 만들어서 말아먹었다.
거래 기법이 잘못되었던가 혹은 아니면 내가 시장에 대해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걸 왜 하고 있는가 그만둬야 하는가 뭐 잡생각이 다 났다. (원래 물리면 잡생각이 다 나는 법이다.) 미국 정규장이 마감하는 한국시간으로 새벽 5:30분인가 4:30분인가에 1시간 반 쪽잠을 자고 애프터장에서 폭락해 버린 포지션을 보면서 토하고 (사람이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으면 토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다시 등교해서 자는 인생을 반복했다.
본질적으로 뭐가 잘못되었는가. 돈을 정말 꾸준히 잃고 있으니... 사실 동전 던지기로 투자하면 꾸준히 잃기도 정말 쉽지가 않고 그때 그 시장은 더더욱이나 꾸준히 잃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그런 거였는데... 아무튼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시장은,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내 마음과 반대로 가지도 않고, 내 마음을 따라와 주지도 않고, 그것은 그 자리에 있고 매일 바쁘게 움직인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것을 정말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사실 받아들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아 드디어 받아들였다 -> 역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 이번엔 받아들였다... 하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복하면 조금 더 위의 문장이 잘 받아들여지기는 한다.
결국 트레이딩, 특히 퀀트 말고 직접 트레이딩 해서 수익이 나기까지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사실 퀀트트레이딩도 매일 전략을 끄고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내가 만든 전략인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일상이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쓰고 보니 스스로 반박해 버린 기분이 들지만 아무튼 뜻은 전달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말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나는... 선택의 연속이라기보다 결과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선택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으니 그게 그거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굳이 결과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것은 선택은 내 마음대로지만 결과는 내 마음대로는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트레이딩을 거의 생업으로 (퀀트 관련 회사 직종 + 개인투자)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그래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엄청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비단 트레이딩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말이다. '23년 그리고 '24년은 또 특히 그런 해였다.
뜬금없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도를 -10(자살 충동) - 10 (아주 행복한 상태)으로 물어본다면 Median -2.5 / Min -9.5 / Mean -0.5 / stdev 3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괜찮다. 사실 내 기분조차 그냥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 중에 하나이기에, 그냥 그런 것을 다루는 방법과 같이 그런대로 살면 된다. 언제는 행복에 못 겨워 살았던가?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비관적으로만 살거나 자기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안된다. 모든 일에 있어 기대하지 않되 희망은 가지자는 것이 결국 요즘 하는 생각이다.
나는 ADHD는 오피셜리 있고... 뭐 그렇게 우울한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과에서는 약간의 우울함? 이 있다고 한다. 현대인 중에 근데 약간의 우울함 정도도 없는 사람이 있나 싶긴 하지만. 도파민 제어가 일정하지 못해서 컨디션과 집중력이 다소 들쭉날쭉하다. 당연히 이상한 실수도 일상적으로든 일 적으로든 많이 한다. (그래도 약 먹으면 많이 나아진다 현대의학 만만세) 그러다 보면 약간 우울할 수밖에 없다.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까.
근데 정말 저주받은 게 이런 모습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인지 성격이 그런 것인지 강한 통제성향과 강박까지 가지고 있다. 아 좀 짜증 나네 왜 저러지 수준이 아니라 가끔 정말 객관적으로 별거 아닌 일인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를 때가 많다. 보통 일적인 거라기보다 일상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더 그렇다... (다행인 점은 잘 표출하지 않고 잘 삭힌다...)
오히려 트레이딩 하면서 이런 점들이 많이 나아졌다. 너무나 그냥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의 연속이니까 원래 선택 -> 결과를 강하게 통제하려는 성향을 무디게 만든 것 같다. 조금은 더 많은 것에 그냥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너그러움이나 온화함보다는 그냥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무뎌지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뭐 워낙 개인적인 일들을 구체적으로 적기는 그래서 그냥 추상적으로만 적겠다. 뭐 크게 관심사가 트레이딩, 사업, 인연, 등등등... 아니었을까.
사업. 2023년부터 같이 하던 사업을 '24년도 11월을 마지막으로 접었다. 사업체를 접은 건 아니고 그냥 같이 하던 분한테 다 넘기고 나왔다. 병특을 하러 가야 하는데 사업하면서 병특할 일이 다 막힌 게 뭐 일차적인 이유지만, 사실 뭐랄까 이후에 쭉 했을 때 그림이 잘 안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근데 시작할 때는 희망찼고, 분명히 잘 될 것 같은 순간도 있었고 나름의 소소한 성과들도 있었다. 아무 의미는 없지만 밖에서 보면 나름 Fancy 한 스타트업일 수도 있었다. 근데 뭐 이것도 그냥 당연히 상황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아서 그렇고 그렇게 퇴사하게 되었다.
전혀 아깝지 않고 전혀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그냥 이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일 뿐이라고 결국 두 달쯤 지나니까 다 받아들여는 지더라.
오히려, 이게 될까? 하고 전혀 기대 없이 퇴사 이후에 심심해서 짬짬이 개인적으로 시도했던 일들이 뭐 막 크지는 않지만 괜찮은 성과도 내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받아들임의 과정이었겠지.
트레이딩. 연초에... 아주 좋은 결정들을 많이 내렸다. 국내주식을 전부 매도하고 (이게 사실 제일 잘했다) 그걸로 대출을 풀로 땡겨서 집도 사고 집값도 좀 올랐다. 나머지는 다 달러표시자산으로 들고 있었다. 뭐 당연히 코인 퀀트 트레이딩 하는 것은 꾸준히 잘 되었고...
6월 7월에는 나스닥과 러셀 강세에 강한 베팅을 했었는데 그게 나름 잘 되어서 오 인테리어비용은 다 뽑았다 그러고 있었는데, 결국 시드가 커지니 약간 부담이 되었는데 계속 베팅을 계속하다 수익을 다 까먹는 것을 넘어서 9월에는 YTD로 퀀트 제외 직접투자계좌의 총손실까지 봤다.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거의 현금만 들고 있는 채로 두어달 때쯤 아무 거래도 하지 않다가 다시 11월 중순쯤인가부터 그냥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만큼만으로 계좌를 다시 세팅했다. 그게, 결국에 손실을 다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까지 불어나더라.
이제 곧 그때 세팅하고 거래한 계좌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을 넘어설 것 같은데, 그 이상의 금액은 내년 초에 전부 출금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출금하는 게 너무 쉽지 않다 괜히 복리 깎아먹는 거 같고 그렇다. 그래도... 해야 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거래하는 것이 결국 수익률은 물론 수익금 자체도 더 큰 것 같다. 어떻게 무엇을 거래할지는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인데, 돈이 있어도 다 쓰지 않고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거래하기로 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래도 뭐 나름 3년 이상 꾸준히 거래하던 스타일의 퀀트 전략들이 있으니 거기에 파킹한다는 것으로 자본효율성이 썩 나쁘게 돌아가진 않는다는 위안을 삼는다. 이것은 이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즈를 거의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선에서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으니, 이제는 조금의 언더워터와 변동성도 많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듯하다.
결과적으로, 조금 좌충우돌은 있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이라는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일들을 적어도 트레이딩 하면서 만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뭐 결과도 아주는 아니지만 썩 만족스럽다. 다행이다.
아무튼, 뭐든 간에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해야 한다. 누군가는 차갑거나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관계의 사람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등) 이 되었든 간에 사람에게도 그런 편이다. 그냥, 이게 누굴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습관의 영역인 것 같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내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는 게 결국에는 후회 없는 관계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 아닐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주어야 후회가 없다는 개념 자체를 가족은 물론 연애 친구 뭐 다 나는 이해를 못 하겠다. 존경하는 몇 명의 인생선배님들은 아이가 생기면 다르다고 하는데... 결혼도 안 했지만 어쩌다 아이가 생기게 되면 다시 회고를 해 보도록 하겠다.
사람에게든 주식에게든 풀베팅은, 후회를 남긴다. 믿지 말라거나 희망을 가지지 말라거나 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물이나 상황은 희망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 좋고, 사람은 조심하되 최대한 믿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대를 가지지 말자는 것이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보다 내 에너지가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쏟으면 그것은 기대가 되고 결국에는 후회로 남는다는 이야기이다.
기대는 후회를 낳는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다. 인간관계에서 나 혹은 상대방의 과거에 있는 불편한 일들을 돌리거나 지울 수 없음은 물론 미래에 일어날 불편한 일들 또한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과거든 미래든 일어난, 일어날 사실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시간과 정신과 마음과 돈을 쓴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한다고 해도, 항상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쨌든 내 자원이 뭐든 들어간 것이고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선을 다해서 희망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일하고 투자하고 사랑하자.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걸자.
결국 위에서 나를 정의하다가 말았는데 다시 정의하자면 트레이 더라기보다도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투기꾼'인 것 같다. 돈을 투기하는 것도 흥미롭고, 내 시간과 젊음을 마음껏 투기하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투기꾼의 기본자세는 언제나 투기는 결과가 마음처럼 되지 않음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또 뭐 그 일 이후의 다양한 진로들을 크게 다른 방향은 아니지만 조금씩 재조정하는 25년이다. 마음처럼 되는 것이 없음을 더 잘 받아들이고, 그래서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을 잘 조절해서... 조금 더 돈을, 시간을, 마음을 잘, 그리고 의미 있게 투기해 보자.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가지되 기대는 하지 말자.
'25년에는 독자님들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나름 인생을 살아가는데, 특히 나의 무언가를 걸어야 할 때 좋은 지표가 될 것이라고 감히 한번 권해드려 봅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