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 돼 있는데 아침부터 키즈랜드라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부인이 뭐라고 할까?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까?'
자고는 있지만 귀는 소머즈 귀다. 귀를 쫑긋하며 부인의 다음 대답에 온 신경이 다 쓰인다.
"비 와서 못 가요!"
'오~~ 부인 나름 선방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답안지다. 이렇게 끝날 것인가? 우리 아들..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 제발 제발!!!!'
"아니야! 아빠가 안에 있다고 했어!"
'케이오 패다. 멍하다. 강력한 팩트다.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카드를 아들이 내밀었다. 거의 에이스 포카 수준이다. '안에 있다'란 말은 '실내에 놀이터가 있다.'란 말이다. 비가 와도 전혀 상관없단 아들의 강력한 한방이다.
왜 아빠를 강조했을까?? 누워 있지만 엄마와 아들과의 설전이 꽤나 흥미롭다. 근데 점점 두려움이 밀려드는 건 왜일까?
아들 케이오 펀치에 부인 아무 말이 없다. 그 틈을우리 아들 놓치지 않는다. 사정없이 코너로 부인을 몰아간다.
"넥스코, 넥스코"
어퍼컷
"아빠가 안에 있다고 했어어어어.."
라이트
"아빠가 안에 있다고 했어어어어어어.."
레프트
사정없이 코너로 몰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우리 부인 그 부인을 위해 링 안으로 하얀 수건을 던지는 나다.
일단 부인을 살리고 본다.
"아들~~"
부인을 살리는 나의 한 마디 '아들'이다.
"아빠한테 물어봐야지"
'무슨 말로 나를 몰아붙일까? 걱정이 앞선다.'
쏜살같이 달려오는 아들. 아무 준비도 못하고 쨉 쨉 쨉에 연신 두들겨 맞는다.
"아빠, 넥스코 넥스코."
"아빠, 넥스코 가고 싶어."
"넥스코 가서 놀고 싶어"
"우리 아들 벡스코 많이 가고 싶은가 보네!"
일단 상대방의 읽어주는 심리학 1원칙을 적용한다.
"네!"
"그럼 엄마 일어나서 이야기해 보고 말해줄게요."
엄마랑 이야기해보고 잘 되면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아들에게 던진다.
괜찮은 방어다.
"네에"
일단 디펜스 성공이다.
툴툴거리며 거실로 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들이다.
하지만, 벡스코 소리에 장난감 소리에 우리 딸도 기어이 눈을 뜨고 2차전에 돌입한다.
1차전이 아주 큰 호수 위에 던진 돌 하나 수준이라면 곧 다가올 2차전은 초강력 태풍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들 동지가 생겼다.
누나라는 강력한 지원군이다.
아들의 벡스코 사냥에 커다란 공을 세워줄 최고의 조력자 누나가 나타났다.
"우리 벡스코 가서 재밌게 놀까?"
일단, 아들이 누나를 슬쩍 떠 본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냐? 엄마 아빠한테 물아봐야지."
아직 잠에서 덜 깬 딸 동생 지원하기엔 역부족이다.
'제발 이대로 조용히 끝났으면....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으로 시선이 옮겨 같이 놀았으면...... 제발... 제발..'
나의 바람은 딸의 한 마디에 처참히 무너진다.
"아빠! 잠시만요, 내 저금통"
'왜 하필 저금통인가??? 저금통을 왜 들고 온단 말인가?... 설마.... 설마..'
딸 자기 돼지 저금통을 들고 와서는 이런다.
"벡스코에 돈 많이 들어가니까 내 돈 사용할라고요! 내 5만 원 있잖아요."
그렇다. 자기 돈을 들고 가서 저번에 못한 게임이랑 슬라임 다른 게임을 하고 싶었던 거다. 자기 돈을 가지고 벡스코에 꼭 가고 싶단 메시지다.
"엄마 아빠 안 힘들게 제 돈 가지고 갈게요. 엄마 아빠 제가 도와주는 거 맞죠?"
"음.... 그래..."
딸의 엄마 아빠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한 마디다.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은 씁쓸할까?
"이 돈 가지고 벡스코 있는 거 다 탈 거야. 나 5만 원짜리 2개로 가지고 뭘 할까? 재미있었던 두더지 게임할까? 물고기 게임할까? 물 쏘아서 해적 죽여서 없어지는 거 하까?"
"나 무서워!"
"물리치면 되지"
"그럼 같이하자."
마음이 맞다. 아주 잘.
이렇게 잘 맞기도 힘든데... 벡스코라는 장소 하나로 우리 아들 딸 최고의 정예 커플 요원이 된다.
그러면서 우리 딸 저금통에 있는 돈을 꺼내 자기 가방에 주섬주섬 담는다.하도 웃겨 사진도 찍었다.
딸이 정성껏 챙긴 돈
우리 딸 벡스코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풍선처럼 가득 부풀었는데 돈도 다 준비했는데 표정이 좋지 않다.
내가 잠시 책 보고 있는 사이 엄마방에서 가서 엄마랑 이야기하고 나왔다.
"아빠 나 병원 가야 된데... 엄마가그래.. 벡스코 벡스코 벡스코....." 우리 딸 자지러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부인과 제대로 말도 못 했는데.... 이렇게 노선이 다를 수가.... 난 딸에게 기대를 잔뜩 줬는데... 부인이 안된다고 하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제발 제발... 좋은 생각아 나오너라...... 갑자기 딸아이 사마귀가 생각이 난다...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우리 딸 사마귀 레이저 빨리 없애달라고 했지? 그러니까 병원에 가서 사마귀 없애자."
우리 딸 나의 어줍지 않은 논리에 바로 훅 들어온다.
"병원은 다음 주 토요일에... 병원은다음 주 토요일에에에에에... 오늘은 벡스코 벡스코 벡스코오오오오오"
벡스코에 이미 꽂힌 우리 딸. 한 발작도 물러설 수 없다. 돈도 다 챙겨 났다. 어줍지 않은 나의 제안에 우리 딸 기분이 더 안 좋아진다.
"딸, 우리 노포동 점프하는데 안 갈래?"
저번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던 곳도 슬쩍 던져본다. 물지 않는다.
"벡스코가 더 재미있단 말이야!"
"거긴 게임기도 없잖아!"
"난 벡스코랑 할머니 집만 갈 거야! 이젠!"
이제 아예 못을 박는다. 벡스코랑 할머니 집 두 개의 선택지가 다다.
"딸, 벡스코에서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매달려 손 벌리고 과자 잡는 거 그거 하고 싶단 말이야!"
"또 뭐 하고 싶은데?"
"물고기 낚시 더 하고 싶어"
"또 뭐하고 싶은데?"
"또... 또.... 좀비 물총으로 물리치는 거요. 동생 하고 싶은 거 같이 할 거예요."
6살 딸이지만 딸아이의 논리적인 근거에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다. 확실한 근거 부인할 수 없는 근거 3가지를 딱딱딱 요목조목 제시했다.
'벡스코 기어이 가야 하는가?'
어쩔 수 없다. 최종 4자 협상이 남았다.
엄마와 나 딸 아들 네 명이서 안방에 가 이불을 발에 넣고 이야기를 나눈다.
"딸 울지 말고 아빠랑 말로 해 봐요."
"부인, 딸은 벡스코 가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저번에 갔는데 사람도 너무 많고 애들 따라다니기도 힘들고 어제부터 코로나 환자수도 갑자기 늘어 벡스코 말고 다른데 가면 안 될까요?"
부인 말에 공감이 가지만 딸아이 벡스코에 갈 수 있단 희망을 준 나. 선뜻 대답을 못한다.
그 사이 부인이 찾은 홈플러스 놀이터
"딸, 여기 집 근처 놀이턴데 여기 어때?"
딸 살짝 관심이 생긴다. 영상이 있는 부분을 클릭해 다시 화면을 크게 만들어 어떤 곳인지 유심히 살펴본다.
"여기도 좋아 보이네요. 저번에 엘리가 간다에 나온 곳이랑 비슷해요."
반이상 넘어갔다.
"그럼 딸 오늘은 여기 갈까? 집 근처니까 피부과에 가서 사마귀도 제거하고 바로 여기 가서 놀자."
한참을 생각하는 딸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혼자 옷을 갈아입고 가방까지 챙기는 딸이다.
겨우 넥스코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휴~~
아침부터 아들의 벡스코 계획이 성공했다.
벡스코는 못 갔지만 비슷한 놀이터로 간다.
아들의 떼가 딸의 떼로 이어진 아침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아들이다.
재주는 딸이 부리고 또 다른 놀이터는 아들이 챙겼다.
아침부터 딸에게 미안하다.
나와 부인 둘이서 의견만 빨리 일치시켜 알려줬으면 그렇게 딸이 울고불고하지 않았을 텐데..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아들 딸 속상하지 않게 미리 부인과 빨리 상의해서 일치된 의견을 줘야겠다.
애 키우면서 또 하나 깨닫는다.
아! 맞다!
오늘 간 새로운 놀이터 정말 2시간 풀로 아이들이 뛰고 마음껏 놀았다. 딸의 울음에 새로운 놀이터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