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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스누피 가든에서 인생 사진 찍기

by 도도쌤

조카가 우리 집에서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 제주에 온 목적 2가지 중에 하나인 신화 월드 워터파크는 이미 성공리에 끝났다. 나머지 하나가 바로 '스누피 가든'이다. 3주 전부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여기 갈 날만 눈 빠지게 기다렸었다.


드디어 당일이 찾아왔다. 스누피 가든 가는 날이라 티셔츠도 스누피가 있는 옷으로 입은 조카다.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집에서 스누피 가든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오름을 지나 비자림 길을 지나니 어느새 도착했다. 그런데 차가 차가 어찌나 많은지 본 주차장도 아니고 임시주차장 두 번째에 주차를 했다.

스누피가든 입구 by도도쌤

'여기 그렇게 유명한 곳인가?' 하는 생각으로 입장을 한다. 여기 입장료도 비싸다. 제주도민 할인을 했는데도 다섯 명 하니 헉 5만 원이 넘는다. '뭐가 그렇게 볼게 많은지 한 번 두고 보자!'란 묘한 오기가 발동한다.


입구부터 대형 스누피 그림과 문구가 인상적이다.'오늘을 살라.', '어제에서 배워라.', '오후엔 쉬어라'. 꼭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세 개 중에 난 스누피랑 우드스탁이 누워있는 장면이 제일 맘에 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가만히 누워 있고 싶다. 하하하.

대형 스누피 만화 by도도쌤

헉! 그런데 여기 전히 스누피 박물관이다. 스누피 만화는 어릴 때 한 두 편 본 게 다여서 내용이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인물 관계도에 인물의 특징까지 전시되어 있는데.."아이고야! 여기 오기 전에 스누피 만화도 좀 보고, 공부 좀 하고 올 걸!" 그제야 후회가 밀려온다.


비싼 돈 냈는데 스누피 관련 내용을 잘 모르니 재미가 없다. 애써 만화에 집중해 보는데 집중도 잘 안 된다. 아이들도 재미없는지 어서 딴 데 가자고 난리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만화가 한 두 개 있다. 첫 번째가 <변화가 필요해> 네 컷 만화다.

<변화가 필요해.> 나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계획표대로 해 나가자.by도도쌤

스누피가 무슨 변화가 필요할까 궁금해 보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내가 '크크크'거리며 웃는데 아내도 이내 '하하하' 웃는다. 네 컷 만화 내용이다.

1) 삶이 지겹고... 2) 매일이 똑같고... 3) 내가 필요한 건 변화야... 4) 스누피가 누워있는 자리를 바꿔 웠다.

'하하하하하'

화는 아주 작은 데서 필요한걸 유머와 함께 알려주고 있다. 나도 오늘 잠자리나 바꿔 보면 삶 좀 재미있어질까?^^

<해가 지는 걸 보면...> 수월봉에서 해 지는 풍경을 다음에 꼭 봐야겠다. by도도쌤

그리고 두 번째 <해가 지는 걸 보면...>이다. 개인적으로 해지는 풍경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눈길이 간 만화다. 찰리가 말한다.

"해가 질 때 항상 뭔가 슬퍼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고.

그러니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스누피가 쐐기를 박는다.

"마지막 쿠키를 먹었을 때처럼 말이야."


아끼고 아꼈던 마지막 과자 하나를 먹고 난 뒤의 그 허전함이 바로 해가 질 때의 느낌이라니.. 표현이 기가 막히다. 인생의 허무함과 쓸쓸함을 마지막 먹은 쿠키에 비유하다니 단순하지만 가슴에 팍팍 와닿았다. 나도 앞으론 뭔가 느꼈을 때는 음식으로 비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내 구경이 끝이 났다. 그리고 이어 실외 구경이 시작된다. 나오자마자 대형 만화 "잠자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스누피 글이 인상적이다.

'난 뭐하기 위해 태어났을까?'

도전하고 도와주고, 읽고 쓰고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고 혼자서 되뇌어 본다.


밖으로 나오니 여름이라 덥다. 하지만 자유롭다. 아이들도 신나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스탬프 도장 찍기가 뭐라고 열심히 찾아다닌다. 8월이라 수국 꽃이 다 져서 아쉽다. 6월쯤에 왔으면 더 예뻤을 것 같다.


왜 여기가 '스누피 박물관'이 아니라 '스누피 가든'인지 밖을 나오니 바로 알겠다. 정원이 10개 정도 아기자기하게 주제별로 조성되어있는데 사진 찍기 참 좋다. 연인에 가족에 어르신들까지 한가로운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귀여운 스누피 캐릭터들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사진 찍기 참 좋은 곳이다. by도도쌤

갑자기 조카가 어디를 막 뛰어간다.

"여기 인생 사진 찍는 곳이에요. 2시간 기다려야 하는 곳이래요. 여기 찍으러 사실 왔어요."라고 그런다. 다행히 몇 사람 없어서 5분도 안 기다려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기 실내에서 인상 깊게 봤던 해지는 풍경다. 물이랑 스누피랑 하늘이 참 잘 어울린다.

인생사진 찍는 곳. by도도쌤

조카 덕에 나도 아내도 우리 아들딸도 인생 사진 하나씩 건졌다. 조카가 없었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조카가 참 고마웠다.

나랑 스누피. 진짜 해질녘 풍경은 아내랑 와야겠다. by도도쌤

입장료도 비싸고 거리도 멀었지만 알찬 시간이었다. 조카의 두 번째 버킷리스트를 들어줬다. 나도 조카 덕에 인생 사진도 찍었다. 스누피를 이해하기 위해, 인생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스누피 만화를 좀 봐야겠다. 하하하.


오늘을 살자, 어제에서 배우자. 그리고 born to(도전하고 도와주고, 읽고 쓰고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하자. 내가 스누피 가든에서 배운 교훈이다. 아! 맞다. 일 다 끝내고 오후엔 무조건 스누피처럼 10분이라도 누워 푹 쉬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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