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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Oct 30. 2023

삐끼쟁이 나

나의 단점

직장 동료에게 버럭 했다. 그 순간 ''가 나를 삼켜버렸다. 불안감이 온몸에 퍼져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이 걱정으로 두근두근거렸다. 밥을 먹고 있어도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걸어도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속 철창에 갇힌 죄인이 되어 못난 나를 한없이 비난했다.  '왜 버럭 했을까? 뭐가 그렇게 서운했을까?' 기억을 몇 번이나 곱씹어도 직장 동료에게 화를 낸 나의 태도가 용서되지 않았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간을 끌어봤자 마음만 불편해질 게 뻔했다. 버럭 한 나 때문에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을 직장 동료를 생각하니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직장동료에게 다가가서 사과를 했다. 각자의 일처리 방식을 존중했어야 하는데 내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한 쓸데없는 고집이 문제였다.




나이만 많이 먹었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마치 우리 반 10살 어린아이 같았다. 삐지고 화낸 내 모습에 온종일 풀이 죽어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다. 못난 나 자신이 한없이 싫었다.


그러다 최근에 만난 절친 녀석이 나 보고 "잘 삐지고 더럽게 고집 센 녀석"이라고 한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정말 그럴까라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도 나보고 "극 F"라고 하면서 "살아보니 친구 말이 이해된다며 쓸데없는데 고집이 세고 요즘 들어 잘 삐진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줬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직장 동료에게 버럭 한 나를 돌아보니(14년 동안 일하면서 처음 있는 충격적인 일) 이제는 인정해야 할 건 인정해야 했다. 친구도 아내도 나의 단점을 정확히 콕 집어 알려줬다.  더 이상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낱낱이 드러난 나의 단점을 있는 그대로 하얀 A4용지를 세 부분 나누어 적었다.

삐지지 말기
쓸데없는 곳에 고집부리지 않기
말투 예쁘게 하기

적기만 했는데 속이 시원했다. 그리곤 적은 종이 세 개를 제일 잘 보이는 책장 앞에 놓아두었다. 매일 보면서 세 가지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 다짐을 했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교실에서 <아나톨의 작은 냄비>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데, 나의 단점인 '삐짐'을 아이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이 이 책을 읽었는데 아나톨이 가진 냄비처럼  선생님도 '삐짐 냄비'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열심히 집안일했는데 안 알아주면 삐지고, 조금만 안 챙겨주면 삐지고, 내 생각과 다르면 삐지고, 배고플 때 잘 삐지고, 등등등 이렇게 잘 삐져요."


아이들 앞에서 솔직하게 내 단점 얘기를 했더니 아이들도 솔직하게 자신의 단점을 말해줬다. 단점 이야기를 다 같이 하니 희한하게 기분이 상쾌해졌다. 단점은 숨기고 외면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이야기하고 그 단점을 고치기 위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중요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나처럼 자신들의 단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며 '단점 냄비'를 하나씩 그려나갔다.




왜 내가 자주 삐질까라는 이유를 '단점냄비'를 그리면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정 욕구'가 가장 컸다. 뭔가를 열심히 했는데 누군가 알아주지 않으면 쉽게 마음이 상했다. 한 마디라도 '수고했다'라고 말해주면 되는데 그걸 안 해주는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챙겨 받고 싶은 마음, 하나씩 설명받고 싶은 마음, 공손하게 나를 대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주로 옳다는 사고방식도 잘 삐지는 데 한몫했다. 남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마음속 인정을 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충분히 인정하는 척하면서 기어이 속으로는 '내가 옳지'라는 못된 마음 가짐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거다.


안 알아줬다는 마음에서 삐지고, 챙겨 받지 못했다는 나만의 착각에서 삐지고, 대접받지 못했다는 마음에서 삐지고, 내 생각이 이상하다는 데서 삐지고, 마음속 삐짐 덩어리가 이렇게 하나씩 쌓여서 이상한데 고집부리고, 결국은 나도 모르게 기분 나쁜 말투가 툭 튀어나와서 타인을 공격했던 거다.




정말 진지하게 나의 단점을 생각해 봤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더니 나만 정확히 알았는데도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삐지는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찾아오면 다음과 같이 스스로 주문을 걸겠고 마음속 약속까지 했다.


'안 알아줘도 괜찮아',
'내가 스스로 뿌듯하면 돼',
'타인의 생각이 이번엔 옳을 수 있지' ,
 '내 생각이 항상 옳을 수는 없어',
'져 줄 수 있지'라고.


그렇게 하나씩 나의 마음속 여유를 키워본다.




2주째 삐지지 않고 있다. 스스로 칭찬을 가득하고 있다. 그 덕분에 마음이 정말 편하다. 나처럼 잘 삐지는 분이 있다면 단점을 크게 적고 잘 보이는 곳에 두어 보자. 그리고 매일매일 나의 단점을 보며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마음속 다짐을 해 보자. 정말 효과가 크다. 우리 7,8살 아들딸도 나와 같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하하하


딸도 동생이 잘 삐지는 지 잘 안다. 아들아! 너도 앞으로 나처럼 인격수양을 많이 해야겠다.^^;
말투 예쁘게 하기는 딸도 어렵다. 내가 적은 것 위에 자기는 고칠 수가 없다고 솔직하게 적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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