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플러스 원(2+1)은 안 돼요? 아빠?"
어릴 때 '슈퍼마켓' 가는 걸 좋아했다. 동네 구멍가게에 뒤죽박죽 쌓여있는 과자들이 무지 궁금했다. '저건 무슨 맛일까?' , '저번엔 실패했으니 이번엔 잘 골라야지...' 하며 가게에 갈 때마다 과자를 다르게 사 먹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다 똑같은 걸까? 우리 아이들도 요즘 슈퍼마켓 가는 거에 엄청 재미 들렸다. 과자 사는 게 아니라 아예 구경하러 간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화요일만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아들 어제는 갑자기 내게 이런다. "아빠! 왜 화요일만 슈퍼마켓 가요?" 속으로 뜨끔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얼른 딸에게 바통을 넘겼다. 딸 뭐라고 뭐라고 아들에게 설명해준다. 이럴 땐 우리 딸이 최고다! 누나가 안 된다면 안 된다는 걸 벌써 아는 아들이다. 이번엔 무사히 넘어갔는데 다음에 또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미리 생각 좀 해 놔야겠다.
오늘은 월요일. 무지 덥다. 벌써 33도다. 이 더운 날에 우리 아이들도 더위를 이기느라 고생이 참 많다. 이런 날은 그냥 슈퍼마켓 가서 시원한 쭈쭈바 하나 사서 쭉쭉 빨아먹으면 더위가 싹 가시는 날이다. 그런 생각하며 걷다 보니 벌써 어린이집 문 앞이다. 데리러 온 나를 보고 우리 아들 입을 쭉 내밀며 말한다.
"엄마, 아빠 둘 다 오면 좋겠어요."
"엄마가 휴가 다녀온다고 일이 많데."
"그래도 싫은데.... 엄마 아빠 둘 다 오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아들 신발을 신고 마루 장판을 걸어 나오려고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안 된다고 그런다. 아들이 떼를 쓰니 허락하는 눈치다.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나온다.
"아들 신발 신고 나오면 안 돼요."
우리 아들 내 말에 안 진다.
"상진이 형도 저번에 신발 신고 갔어요."
상진이 형이 신발 신고 간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나름대로 훌륭한 근거를 내세워 형도 되니까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다.
"아들 행님한테 안 된다고 해야지."
"그래도 (행님이) 해요."
"안 된다고 해야지."
"그래도 (행님이) 해요."
"안 된다고 해야지."
"그래도 (행님이) 해요."
.......
다섯 살 아들과 사십이 넘어간 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이제 제법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합리적인 이유도 찾기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고 양말로 다니는 곳에 신발 신고 오라고 할 순 없다.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지만 결국 머리를 푹 숙인 채 신발을 들고 나오는 아들이다.
"아빠, 저 말할 게 있어요."
집으로 걸어가는 길 아들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그런다. 쮸뼛쮸뼛거리는게 왠지 불안 불안하다.
"오늘만 슈퍼마켓 가면 안 돼요?"
"안돼!"
"오늘만... 오늘만... 오늘 마안 안 안.... 제발 제발 제 바알 알알...."
한 번씩 아빠가 기분 좋을 때 화요일 말고 다른 날에도 슈퍼마켓 간 걸 기억하고 있었던 아들이다. 많이 똑똑해졌다. 내가 약속을 안 지켰던 걸 역으로 이용하는 우리 아들이다. 결국은 내 잘못이다.
"제발.. 제발... 슈퍼마켓 가게 해 주세요... 제발요... 제발요..."
사정사정하는 우리 아들 멈춰 서서 오지도 않는다. 살짝 흔들린다. 마음을 잡고 딸이랑만 손잡고 그냥 가니 이런다.
"아빠 미워! 난 이제 엄마만 좋아!"
"하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저녁시간 놀아주고 밥해주고 나면 "난 엄마가 제일 좋아. 근데 아빠가 엄마보다 더 좋아!"라고 말하는 우리 아들이다. 슈퍼마켓 안 간다고 그러니 이제 엄마만 좋다고 그런다. 그 말이 그 행동이 너무 귀여워 계속 웃음만 나온다. 서 있는 아들한테 가서 내일은 화요일이니까 꼭 맛있는 거 사 먹자라고 겨우 겨우 달래며 집으로 왔다.
결전의 화요일. 맛있는 거 사 먹는 날이다. 하원길 우리 딸 바로 이런다.
"아빠! 편의점 저기 보이죠 오늘은 저 편의점 가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아이스크림 사면 집까지 가는 동안 녹으니까 사 먹고 싶으면 집 근처에서 사 먹자!"
"아니에요. 오늘은 그냥 과자 사 먹을 거예요."
그러면서 저희들이 그 무거운 편의점 문을 열고 힘차게 들어간다. 역시 예상대로다. 뭘 고를지 편의점을 세 바퀴는 돈 것 같다. 앉아서 기다리는 나에게 아들 쓱 다가오며 말을 붙인다.
"두 개는 왜 안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슈퍼마켓에서 항상 하나만 고르게 했던 거에 의문을 품고 물어보는 아들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이젠.
"너무 많아서 그렇지."
"......."
우리 아들 뭐라고 구시렁거린다. 두 개를 고르고 싶은 모양이다. 아들과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는지 우리 딸 슬며시 내게 와서 이런다.
"투 플러스 원은 안 돼요? 아빠?"
순간 머리가 띵하다. '한 살 많은 게 그냥 많은 게 아니구나!' 딸은 아들보다 더 똑똑해졌다.
"아빠! 과자 먹으면 목이 말라서 음료수도 먹고 싶어요. 음료수도 사게 해 줘요."
2개를 사야 하는 이유도 확실하다. 확실한 이유에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다. 과자 먹으면 음료수가 생각나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나도 모르게 불쑥 "그래 알겠다."라고 말해 버렸다. 신나서 과자를 손에 쥔 채 음료수 있는 쪽으로 달려가는 딸이다. 아들도 재빨리 젤리를 한 손에 든 채 음료 고르는 누나한테 달려간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딸 손엔 과자와 음료수, 아들 손엔 젤리와 음료수가 들려있다. 계산대에 가서 계산하는데 점원이 그런다.
"음료수 이거 하나 더 들고 오세요. 투 플러스 원이에요."
우리 딸 말대로 결국은 투 플러스 원을 사게 되었다.
'잠시만 이게 뭐지... 혹시 이 상품이 투플러스 원인걸 알고 딸이 산건 아니겠지.. 진짜 맞다면... 우리 딸 정말 많이 똑똑해진 거다.... 아니겠지... 맞나...' 그런 생각하며 음료수 있는 코너로 가서 똑같은 초콜릿 우유 하나를 더 들고 온다.
"이건 엄마 꺼야!"
"네~~~~~"
고른 음료수를 보니 대왕 딸기우유와 대왕 초콜릿 우유다. 대왕 우유 세 개가 제법 무겁다. 양손에 아들 딸 손잡고 대왕 우유 세 개까지 들고 가려니 집이 왜 이다지도 뭔 걸까?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난다. 집에 오자마자 손 씻고 대왕 우유를 하나씩 빨대에 꼽아 빨아먹는다. "맛있어 우리 아들 딸?" 내 말에 아무 대답도 없다. 먹기만 한다.
엄마 주려고 산 마지막 '투 플러스 원'에 그 '원'은 결국 다음날 저녁에 애들이 컵에 나누어 담아 다 먹어버렸다. 우리 와이픈 그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슈퍼마켓 가는 날이 하루가 아니라 조만간 월화수목금 5일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밀여오는건 왜일까....? 아이들 두뇌 발달 속도에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