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와서 오늘에 제일 좋네."(새별오름을 걷다.)
아빠 육아일기
새별오름 핑크 뮬리 사진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린다. 이 유혹을 참을 수가 없다. 검색해보니 뽀로로파크에서도 제법 가깝다. 아이들 꼬셔서 조금만 서두르면 해가 지기 전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내도 사진 보더니 '나도 좋지!' 하며 바로 오케이 한다.
"얘들아, 보라색 꽃 세상에 한 번 가 보자!"
"아빠, 하나만 더 하고요."
내 마음은 벌써 새별오름에 가고 있는데 아들 딸은 3D 색칠하는 곳으로 뛰어간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는데 그곳에서 한참을 기다린다. '이것도 사친가? 그냥 포기할까? 아니다 그래도 제주도 왔는데 한 번은 오름 같은 데 가 보자!' 속으로 주문을 계속 외워본다.
"너희들 원하는 데서 신나게 놀았으니까, 엄마 아빠 가고 싶은 곳도 가야죠? 맞죠?"
아내의 지원 사격에 아이들도 수긍하는 눈치다. 드디어 출입구를 나오려는데 딸이 "아빠, 바이킹 한 번만 더 타고 싶은데...."라고 말을 잇는다.
속으로 또 조마조마 해진다. 줄 서서 기다리고 바이킹 타면 시간이 빠듯하거나 늦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쩌지.. 어쩌지..'하고 있는데, 출입구에서 뺏긴 음료수를 아내가 찾는다. 음료수를 보고 어찌나 반가워하는 딸 '차에서 먹자!'란 말에 바이킹은 잊고 차로 향하는 딸이다. '휴~'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새별오름'이라고 네비에 찍었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엑셀 레이트를 모처럼 힘차게 밟아본다. 새별오름에 가까워지자 왠지 저 오름 낯이 익다. 두 달 전 아이 둘 데리고 왔을 때 친구가 좋다고 했던 바로 그 오름이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못 갔는데 이제야 가게 된다. 이것도 너와의 인연인가...
도착을 했다. 차들이 빼곡하다. 경차라서 최대한 새별오름 가까이 가서 주차할 자리를 찾는다. 경차의 최대 장점 조그만 곳이라도 언제든 쉽게 주차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운 좋게 새별오름 입구 바로 앞에 주차를 한다.
차에서 내린 순간 억새의 물결에 압도당한다. 연인들이 곳곳에서 억새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찍는다. 우리 가족도 부탁을 해서 '가족사진'이라는 것도 찍어본다. 사진 부탁받은 여자분께서 감귤 머리핀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준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드렸다.
"올라가는 데 어디 있어?" 아내가 먼저 묻는다.
"저 쪽으로 사람들 올라가던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한다.
"한 번 올라가 보자!"
"그래! 좋지!" 아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먼저 물어보긴 처음이다. 이 새별오름이 마음이 들었나 보다. 올라가는 입구부터 사람들이 제법 있다. 다들 표정에서 웃음꽃이 떠나지가 않는다. 곳곳에서 억새들과 사진을 찍는다.
완만한 등산로가 갑자기 엄청 가파르다. 3분 정도 쉬지 않고 걸었더니 숨이 차 오른다. 쉬고 있으니 "아빠 운동 좀 해요!"라고 딸이 그런다. 잠시 숨을 돌려 바라본 풍경이 또 예술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에 억새들.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빠! 꼴등이래요, 꼴등이래요." 먼저 올라간 아들이 나를 보고 비웃는다.
밧줄을 움켜쥐고 겨우 정상에 올랐다. 10분 남짓 걸은 정상에서의 새별오름은 과히 환상적이었다. 정상에서 뒤돌아 본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지는 해는 온 세상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베이지색 억새 파도가 물결을 치고 있다.
"제주도 와서 오늘이 제일 좋네!"라고 말하는 아내가 살며시 내 손을 잡는다. 정말 이 순간에 흠뻑 취한다. 이 순간을 남기는 사람들. 다들 행복한 표정에 내가 다 기분이 좋다. 아내도 나도 연신 찰칵찰칵 추억을 담아 본다.
아들내미 딸내미도 기분이 좋다. 뽀로로에서의 신나는 놀이의 기쁨과는 다른 기쁨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환희의 기쁨이 아이들 표정에서 드러난다.
갑자기 <<꾸다! 드디어 알을 낳다>> 그림책 수업할 때 우리 반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 예쁜 것을 많이 봐서 꾸다가 예쁜 알을 낳았는 가 봐요." 딱 그 말이 맞다. 아들 딸도 예쁜 것을 많이 봐서 예쁜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내려오는 길도 제법 만만찮다. 무릎이 시큰 거린다. 밧줄을 지탱해서 최대한 무릎에 통증을 안 주려고 애를 쓴다. 내려오는데 아들 딸 계속 이런다.
"아빠, 보라색 세상 어디 있는데요?"
"저기, 저기 보이지?"
"아빠! 저건 보라색 세상이 아니잖아요. 저기만 보라색이잖아요."
"가까이 가 보면 보라색 세상이 나올 거야. 조금만 참아!"
핑크 뮬리가 새별 카페 '새빌' 주위에 가득하다. 힘겹게 내려와서 그곳으로 가는 야트막한 언덕길도 다시 길게 느껴진다. 새별오름의 억새 물결을 봐서 그런지 보라색 세상 핑크 뮬리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아이들도 시큰둥하다.
빗방울이 다시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얼른 차에 탄다. 어둠이 짙어졌다. 배는 고프지만 제주도 와서 진짜 제주도 모습을 봐서 마음이 부자가 되었다.
새별오름아 고마워!
언제 다시 한 번 만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