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이유

by 라엘

어렸을 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친구들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고민을 듣고, 그 마음이 왜 그런지, 어떤 생각이 그 말을 하게 했을지 궁금했다.
그냥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때 느껴지는 그 ‘온도’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했다.
지하철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 카페에서 혼자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 길가에서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를 보면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내가 한국에서 선택한 전공은 요리였다.
처음엔 요리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건 멋진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그 세계는 치열했고 정말 많은 체력적인 부분을 요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요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가족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증조할머니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

방학때 마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다보니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좋아했다.

중학교때는 정기적으로 요양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어린 시절의 나’가 있다는 것.

내 세상의 언덕이었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환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친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면서 나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의 일은 금세 잊으시면서도, 수십 년 전의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또 안타까웠다.

그때부터 나는 ‘기억’과 ‘인지’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그게 나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프랑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알츠하이머를 앓게되는 당사자와 그의 가족들을 돕고 싶었다.

기억을 잃어가는이와 그를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프랑스의 요양원 (Maison de Retraite) 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곳의 노인들은 단순히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그 안에서 오가는 존중과 따뜻함이 깊이 인상에 남았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후, 나는 알았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다면,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프랑스는 나에게 단순한 공부를 위해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사람의 기억과 마음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곳이다.


나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기보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그 이해와 배움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꾸길 바란다.

그게 지금의 나를 프랑스까지 이끈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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