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끝없는 시험의 계절
졸업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신이 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걱정도 많았다.
이번 학기에는 수많은 에세이와 시험이 한꺼번에 몰려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벅찼다.
유급은 이제 정말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공부하려고 애썼다.
인턴십이 미뤄지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다행히 결국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되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프랑스에 와서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정말 많이 빠졌는데,
이번 학기가 아마 최고였던 것 같다.
그래도 모든 시험이 끝나면 3년 만에 드디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버티게 해 줬다.
나는 다이어리에 매일 할 일을 적었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 적힌 것들을 하나씩 실천하려고 애썼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피곤했지만, 그렇게라도 ‘오늘’을 붙잡고 버텼다.
시험 기간이 시작되자 모든 게 더 치열해졌다.
그 시절을 지금 떠올리면,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오전 8시에 시험이 있으면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학교에 갔다.
잠은 사치였다. 커피는 이미 효과가 없었고,
“이번에는 꼭 통과해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나를 움직였다.
이번 학기에는 특히 에세이가 많았다.
개인 에세이뿐만 아니라 그룹 과제도 있었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았다.
‘심리 인터뷰’ 과목에서는 그룹으로 에세이를 써야 했는데,
멤버 중 한 명이 늘 “시간이 없다” “다음에 하자”는 식으로 미루기만 했다.
하지만 에세이 제출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기였다.
나는 그 아이와 같은 파트를 담당했는데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그 아이의 부분까지 썼다.
화도 났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런 감정조차 사치였다.
시간이 없었고, 마감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저 해야 했다.
통계학 과목도 그룹 프로젝트였는데, 제출 하루 전에야 겨우 마무리했다.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하루빨리 졸업해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프랑스에서 학생으로 보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이제는 시험과 리포트가 아닌
진짜 사회 속에서의 경험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끝없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시험 결과가 나올 즈음, 나는 인턴십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을 할 때도 나는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면 친구들이 서로 점수를 공유하고 후기를 이야기하느라
핸드폰에 불이 난 것처럼 수많은 메시지가 왔다.
나는 핸드폰의 진동을 느낄 때면
가슴이 쿵쾅거렸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프랑스 시험은 20점 만 점제인데
내가 가장 걱정했던 과목 중 하나는 ‘사회심리학’이었다.
형식이 너무 자유로워서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19.5점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지난 몇 달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3학년 2학기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1학기 과목 중 몇 개는 재시험을 봐야 했다.
프랑스는 재시험을 보면 원래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재시험 점수로 대체되기 때문에,
어떤 과목을 볼지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했다.
결국 나는 어려운 과목들을 제외하고,
볼 수 있는 모든 과목의 재시험을 보기로 했다.
인턴십이 끝나고 며칠 뒤 바로 재시험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시기엔 정말 하루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인턴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잠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그 뒤에는 곧바로 시험공부를 했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졸업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사실 마지막까지도 “이번에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시험 날마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학교에 갔다.
아직 어두운 계단 밑에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노트를 펼쳤다.
그 조용한 새벽의 공기 속에서 마지막 복습을 했다.
손끝이 떨렸고, 가슴은 쿵쾅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편안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모든 재시험을 마친 뒤, 나는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그동안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의 프랑스 3학년은, 긴 숨을 내쉬며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