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던 그날의 기억
언젠가 어느 번역가가 말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다 넘기고 나서, 교정지를 받아볼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나는 언제 가장 행복했지? 책을 쓰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던가?’
있었다. 단연코 있었다.
완전히 몰입해 있는 줄도 모르고 시간이 흘러가던 날들.
그건 다름 아닌,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였다.
15년 전쯤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오랫동안 좋아하고 따랐던 한 인물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다.
정확히 어느 하루의 기억이라기보다는, 그 인물에 관한 자료를 읽고, 정리하고, 구성하고, 문장을 쓰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었다.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의 음악과 삶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책 말미의 감사의 글에 이렇게 적었다.
숨은 보석을 꺼내놓듯, 숨은 비경을 소개하듯 기쁜 마음으로 책을 썼다.
그의 작품을 듣고 보고 읽고 감상한 것만으로 훌륭한 명상이자 수행이었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며 같이 웃고 울었다.
정말 그랬다.
그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어느새 수행자가 되어 있었다.
그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장면을 쓸 때는 나도 덩달아 들떴고,
그가 삶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는 글을 쓰며 울었다.
문장이 술술 써질 때면 짜릿한 희열이 밀려왔다.
그럴 때면, 이건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신과 우주가 내 손을 빌려 쓰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그 인물 덕분에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까지 느꼈다.
물론 좌절도 많았다.
막막하게 원고를 붙들고 몇 날 며칠을 헤맸던 날도 있었고,
다 쓰고 난 후에는 이 책에 그의 음악과 삶을 제대로 소개한 걸까 걱정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과 시간이 있었기에, 결국 책은 완성될 수 있었다.
웃기게도 그 책을 다 쓰고 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다시는 이렇게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는 일은 하지 않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후, 그렇게까지 몰입하며 글을 쓴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처럼, ‘정말 쓰고 싶은 글*을 다시 찾아낼 수 있다면,
나도 다시 한번 그 축복 같은 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그 글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