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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면 말도 안 되게 바빴다

교재 편집자의 겨울

by 이경화

시험이 끝나고 수능 수험생들이 압박감을 내려놓는 날, 우리는 야근을 준비했다. 바로 기출문제집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1교시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우리 부서는 가장 먼저 마감을 해야 했기에 더 바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수능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겨우 한다는 일이
또 수능 문제를 푸는 일이구나.

하는 자괴감과 매일의 야근과 휴일 근무. 그게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점이었다. 생각해 보면, 선후배 사이가 경직되지도 않고, 각자를 하나의 교재를 담당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동료로 여기는 분위기는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드문 행운이었던 것 같다.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해도, 서로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고, 실수를 해도 탓하지 않았다. 야근을 앞두고 다 같이 저녁을 시키셔 먹으며 우스갯소리라도 주고받으며 서로를 북돋았다. 그러나 그때는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보여서, 왜 나는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는지, 왜 저녁 9시 퇴근이 이르다고 여겨지는지, 왜 꼭 회의는 주말에 잡히는지, 그러고도 월급은 왜 이리 박한지. 내가 이러려고... 내가 이러려고... 왜 나는 이것밖에...라는 생각이 회사와 집, 회사와 조판소를 오가는 내내 따라다녔던 것 같다.


아직도 내가 라떼는 말야. 하면서 자주 말하길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무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기출문제집을 출간하고도 기출문제를 바탕으로 한 예상 문제집을 늦지 않게 출간해야 하기에, 우리 팀은 또 야근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마감을 하기 위해 조판소에 나와 있었다. 최종 오탈자를 화면에서 점검하기 위함이었는데, 며칠 째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황이었다. 교정지 하나를 넘기고 엎드려 있자니, 같이 일하던 선배가 엎드리지 말라고 내게 싫은 소리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도 못 가고 밤새고 있는데 엎드리지도 말라니. 지금은 엄밀히 말해 근무 시간도 아닌데! 너무 서럽고 억울했다. 그런 나를 또 다른 선배가 잠 깨러 가자며 근처 편의점으로 데려갔고, 아마 따뜻한 음료를 사 주었던 것 같다. 전면이 유리인 조판소 정문은 잠겨 있어서 뒷문으로 다시 돌아와 하던 일을 마저 하는데, 정문 유리 너머로 눈이 오는 게 보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던 것이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래도 우리는 눈 온다고 좋아했던 것 같다. 나를 혼낸 선배, 달래준 선배, 조판 작업을 같이하고 있던 그곳의 사람들 모두. 잠시 눈을 바라보다 다시 교정지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바빴다. 돌이켜 보면 나를 혼낸 선배 역시 너무 힘들었는데, 엎드려 있는 나를 보니 더 기운이 빠져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우리가 만든 교재는 수많은 교재 중 하나로 매대에 깔리거나, 그마저도 못하고 서가에 꽂혀 있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세상사에 어두워, 교재가 잘 팔리기보다는 틀린 부분이 없어서 이 교재를 택한 학생에게 피해가 안 가기를 바랐다. 여기 실린 문제가 수능에 딱 나와서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서 이 야근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 한숨 푹 자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갈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수능 교재와 교과서를 만들던 나의 첫 회사는 결국 경영이 어려워져 월급이 밀리는 상황에 이르렀고, 나는 도망치듯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런 나를 따스하게 배웅해 주는 사람들 때문인지 그동안의 고생이 억울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정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이십 대를 야근과 휴일 근무로 보낸 내겐 너무 편하고 여유 있어서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었다. 물론 너무 좋았다.

이제 더는 수능 교재를 만들지 않았지만, 한동안은 수능철이 다가오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능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지금쯤 올 수능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며 바빠지겠구나. 그러면서 동시에 활기가 돌기도 하겠구나.' 여느 날과 같이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서 떠올렸다. 그러면 여기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이 있는 것 같고, 나는 오늘 야근하진 않겠지 안도하고, 많이 쓸쓸하기도 했다. 나의 첫 일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기에.


남은 것 없이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생겨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는 입금은 없고 출금만 있는 비어 가던 계좌를 확인하던 어느 밤, 입금액이 찍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엔 십만 원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백만 원이었다. 입금자의 이름엔 예전 그 회사가 찍혀 있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지불되지 않았던 교통비, 야근 수당, 휴일 근무 수당이 그때 정산된 것이었다. 독박 육아에 외롭고 가난하게 느껴졌던 시기에, 몇 년 전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가 크리스마스에 집에도 못 가고 벌어뒀던 돈이 도착해 있었다. 아이와 남편은 잠들었고, 창밖으론 예전에 야근이 끝나면 택시를 타고 졸면서 지나가던 내부순환로에 자동차 불빛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도 한때 저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조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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