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이야기

오징어 제육볶음에서 시작된 이야기

by 이수정

메신저 알림이 울린다.

“우리 언제 만나?”

숙진 언니였다. 그녀의 부부와 우리 부부, 인혜네 부부는 예전부터 종종 모임을 가졌다. 지난번 모임은 가을이어서, 인적 드문 공원에서 포틀럭 파티를 했었다. 날씨가 추워진 요즘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아이들만 네 명이라 장소를 정하기도 어렵다. 봉포에 막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지인이 있어 모임을 위해 전실을 예약할 수 있냐 물었다. 흔쾌히 승낙해 주었고, 메뉴판에 없는 음식도 미리 말해주면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나는 지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오징어 제육볶음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날의 오징어 제육볶음은 최근에 먹은 것 중 단연 최고였다.


오징어 제육볶음은 삼겹살과 함께 볶아 기름기가 흘렀고, 큼직하게 썰린 오징어가 탱글탱글해 보였다. 새빨간 양념 속에 청양고추가 듬성듬성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나는 음식으로 가는 젓가락이 무거웠다. 먼저 먹어본 숙진 언니가 맵지 않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오징어를 입으로 옮겼다. 언니의 말처럼 맵지 않았고, 오히려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삼겹살의 기름기를 잡아주었다. 오징어는 제철 맞은 겨울 오징어를 써서 두툼하고 탱글탱글했다. 삼겹살은 미추리도 함께 사용해 지나치게 기름지지 않았다. 젓가락이 멈출 새가 없었다. 모임은 오징어 제육볶음 덕분에 빛이 났다. 오징어는 유난히 두툼하고 맛이 좋았다. 고기가 제일이라 외치는 나지만, 오징어가 없었다면 이 오징어 제육볶음이 이렇게 맛있지 않았을 것이다.


오징어 난전의 오징어 포

두툼한 오징어를 씹으며 오징어의 제철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 나오는 오징어는 총알 오징어라 불리지만, 사실은 다 자라지 못한 새끼 오징어다. 새끼 오징어는 크기는 작지만, 살이 연하고 아무것도 찍지 않고 그냥 먹어도 단맛이 느껴지기에 회로 먹기 좋다. 반면 다 자란 오징어는 겨울에 잡힌다. 겨울에 잡히는 오징어는 살도 두툼하고, 요리로 만들면 새끼 오징어에 비해 더 탄력이 있다. 둘 다 장단점이 있기에 오징어는 사계절 내내 다양한 맛으로 변한다.


오징어 난전의 오징어 회+오징어 포

속초는 여름이면 오징어 난전을 펼친다. 올해 여름에는 오징어가 꽤 많이 잡혔다. 덕분에 난전에서 먹는 가격도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내 손바닥만 한 몸통 크기의 작은 오징어가 한 마리에 칠천 원, 팔천 원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최근 몇 년 들어 가장 저렴한 가격이었다. 덕분에 오징어를 좋아하는 우리 식구들은 오랜만에 난전을 찾았다. 올해에 난전에서 바가지를 씌운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 마리에 팔천 원이라고 해서 방문했는데, 이만 원을 받았다는 뉴스였다. 댓글에서는 ‘역시 바가지의 고장’이라거나 ‘사기꾼들’이라는 비난이 가득했다.

그 댓글을 보며 나는 괜히 억울해졌다. 여름 오징어는 시가여서 많이 잡히면 싸고, 적게 잡히면 비싸진다. 그 기사가 나올 때는 어획량도 줄고, 오징어잡이가 끝나가는 늦여름이었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었다. 저렴한 여름 오징어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속초오징어짬뽕>의 잡채밥

내가 초등학생이던 1999년에는 오징어가 지금처럼 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어디에나 널려있고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간식거리가 없을 때면 엄마는 집 앞에서 오징어를 사다가 데쳐 주셨고,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들었다며 직접 만든 오징어순대를 찜기째로 건네주기도 하셨다. 횟집에 가서 회를 시키면 오징어회는 곁들이는 밑반찬으로 나왔었다. 오징어회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은 회 맛도 모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담벼락마다 손질한 오징어를 널어 오징어를 말리고, 그것도 부족하면 지금은 없어진 바닷가 철조망에 오징어를 널기도 했다. 산책하거나 동네를 뛰어놀다 출출하면 철조망에 걸린 오징어를 한두 마리쯤 빼먹어도 그러려니 하던 시절이었다. 그 정도로 흔해 빠지고 값어치 없던 음식이었다.



그런 오징어가 지금은 금징어가 되었다. 비싸서 못 먹고, 어획량이 줄어 없어서 못 먹는다. 비싸졌다고 해도 오징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건 오징어가 아니라, 그것을 흔하게 먹던 시절을 잃어버린 나다. 오징어는 여전히 맛있지만,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값이 올랐어도, 계절이 짧아졌어도, 오징어를 앞에 두면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징어를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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