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없는 한 그릇

할머니의 잔치국수

by 이수정

나는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국수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잔치국수다. 음식을 맛있게 하시던 할머니의 음식 중에서도, 나는 이 잔치국수를 가장 좋아했다. 할머니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잔치국수를 만드셨다. 일요일 점심때면 잔치국수나 말아먹자며 찬장에서 소면을 꺼내셨다. 할머니의 국수는 특별하지 않았다. 고명도 많지 않은, 흔하디흔한 국수였다.


할머니표 국수의 핵심은 큰 솥에 국물용 멸치를 넣어 진하게 끓인 육수다. 내장을 전부 제거한 멸치를 듬뿍 넣어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볶았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 진하게 우려냈다. 맑은 황금색의 육수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다. 짭짤한 바다 향과 볶은 멸치의 구수한 냄새가 함께 올라온다. 손질한 멸치를 듬뿍 넣어 잡스러운 맛 없이 깔끔하고 깊은 감칠맛이 났다.


소면은 삶은 뒤 한참을 문질러 빨았다. 밀가루 풋내가 나면 육수 맛을 해친다며 찬물에 빨래 빨 듯 문질렀다. 그렇게 풋내를 뺀 소면을 잠시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뺐다. 물을 잔뜩 머금은 소면을 그대로 육수에 넣으면, 아무리 잘 만든 육수라도 맛이 흐려진다. 그렇게 물기를 뺀 소면은 그릇에 담는다.


할머니는 그릇에 바로 육수를 담아내지 않았다. 풋내를 없애느라 차가워진 소면에 뜨거운 육수를 부었다가 따라내는 것을 반복하는 토렴을 했다. 토렴하면 소면에 육수가 잘 배어들고, 차가운 면도 자연스럽게 데워졌다. 할머니의 토렴은 마법 같았다. 뜨거운 육수가 그릇에서 솥으로, 다시 그릇으로 오가는 동안 메마른 면이 조금씩 살아났다.


토렴한 소면에 멸치육수를 붓고 그 위에 고명을 올린다. 고명은 곱게 썬 황백 지단뿐이다. 가끔 볶은 당근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상 위에는 잘게 썬 잘 익은 김치가 한 그릇 가득 놓여 있었다. 김치는 반찬으로 먹거나, 국수에 취향껏 넣어 고명처럼 먹기도 했다. 할머니의 김치는 맛있어서 국수에 잔뜩 넣어 먹었다. 두 그릇을 먹기도 했고,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할머니의 잔치국수를 먹을 수 없게 된 후, 나는 잔치국수가 맛있다는 집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갔다. 우연히 마주친 식당에 잔치국수가 있다면 그날의 메뉴는 잔치국수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할머니의 깊은 육수 맛을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맛조차 없었다. 어릴 적 어깨너머로 본 순서대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기억이 생각보다 많이 비어 있었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만들기도 했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비슷한 맛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5년이 지나서야 나는 할머니의 국수를 찾는 일을 포기했다. 지금 되짚어보면 내가 찾던 것은 잔치국수의 맛이 아니었다. 큰 솥에서 멸치가 볶아지던 냄새와 토렴을 하던 할머니의 손놀림, 일요일 점심의 느긋한 공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제 그 국수는 다시 만날 수 없다.


할머니의 국수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내가 음식을 하면서 알았다. 하나하나 내장을 제거한 멸치를 아낌없이 듬뿍 넣은 육수와 손등이 빨개질 때까지 찬물에 손을 담그고 빨아낸 소면은 손녀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아주 가끔 아이가 먹고 싶다고 조를 때면 국수를 삶아본다. 할머니처럼 멸치를 듬뿍 넣고 소면도 한참을 문질러 씻는다. 그렇게 만들어도 여전히 할머니의 국수 맛에는 닿지 못한다. 그래도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잠깐은 할머니의 부엌에 서 있는 것 같다.


할머니가 내 모습을 본다면 내 엉덩이를 두드리며 말할 것 같다.


“우리 똥강아지가 국수도 삶고, 다 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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