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돌아온 메아리
오랜만에 냉장고 정리를 했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나는 늘 냉장고가 엉망이다. 특히 냉동실이 그렇다. 검은 비닐봉지에 묶어서 넣어두면 안에 뭐가 있는지 금세 잊는다. 그렇게 냉동실은 어느새 나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된다.
한참 정리 중이었는데, 냉동실 귀퉁이에서 새우 한 팩이 나왔다. 되짚어보니, 작년 추석에 새우전을 굽고 남은 것이었다.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 중, 삼색나물과 전은 내가 만든다. 그런데 지난 명절에는 시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힘들게 음식 하지 말고 사서 쓸 수 있는 것은 사서 쓰자. 수정아, 너도 나물이랑 전이랑 시장 가서 한 팩씩만 사 와라."
미리 재료를 사두었으니 이번 명절까지만 하겠다는 내 말에, 시부모님은 그것도 조금만 하라고 하셨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결혼한 첫 명절 이후부터였다. 친정집에서는 늘 명절 장은 아빠가 봤었고, 사서 쓸 수 있는 음식은 샀다. 한때는 아빠도 명절에 집안에 기름 냄새가 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아빠에게 내가 단둘이 전을 굽자고 제안했다. 아빠는 반색하며 찬성하셨다. 나는 오색꼬치전, 깻잎전, 동그랑땡 등 온갖 전 재료를 준비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아빠가 원하던 기름 냄새를 집안에 채웠다. 그날 저녁, 아빠는 허리를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이제 사서 쓸 수 있는 건 무조건 사서 써!"
고된 하루를 보낸 아빠는, 그 뒤로는 명절에 전을 굽자는 말씀을 먼저 꺼내지 않으신다.
그렇게 간편한 명절 준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시댁은 모든 것이 달랐다. 음식 준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어머님 몫이었다. 며느리를 들였으니 이젠 며느리에게 맡길 법도 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끝내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설거지조차 못 하게 하셨다. 명절 음식을 사서 하는 건 어떻겠냐고 여쭸지만, 어머님은 늘 아버님 눈치를 보며 직접 음식을 하셨다. 혼자 음식을 하시는 어머님이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쓰이기도 해서, 전과 나물은 내가 하겠다고 빼앗아 오다시피 한 게 다섯 해 전이다.
음식을 사자는 말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지만, 명절이면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시부모님의 말씀은 반가웠다.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돌아올 명절부터는 사서 쓰기로 했다. 덕분에 쓸 일이 없어진 새우를 처리할 메뉴가 정해졌다. 명절이면 만들던 전 중에서 애호박전만큼 쉬운 것이 새우전이다.
우선 얼어있는 새우를 해동하기 위해 실온에 꺼내놓았다. 소금기 덕분에 금세 녹았다. 해동된 새우를 흐르는 물에 살짝 헹궈 이물질을 씻어냈다. 종이행주로 물기를 닦아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해둔다. 새우에 밑 간을 하는 사이에 달걀을 풀어 달걀물을 만든다. 알끈이 남지 않도록 저어주고, 남은 알끈은 걷어낸다. 그 사이 새우에 간이 배며 배어 나온 물기를 한 번 더 닦아주면 밑 준비는 끝이다.
프라이팬에 기름 묻힌 종이행주로 살짝 닦은 뒤 뭉근하게 달군다. 이렇게 하면 전이 기름을 과하게 흡수하지 않아 담백하다. 서너 마리의 새우를, 달걀물을 입혀 팬 위에 올리고, 굳기 전에 일렬로 세워 모양을 잡는다. 떨어지면 달걀물을 발라서 붙인다. 평소엔 실고추로 색감을 주지만, 오늘은 집에서 먹을 것이니 장식은 생략했다. 밑면이 익으면 뒤집어 천천히 익힌다. 꼬리가 빨갛게 변하면 접시에 옮겨 한 김 식힌 뒤, 미리 만들어둔 달래장을 곁들여 완성한다.
잘 구워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 위에 달래장을 올려 한입 먹어보았다. 밑간을 해둔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소금간이 절묘해 새우의 단맛과 잘 어우러졌고, 후추가 새우 특유의 비린내도 잡아줬다. 노릇하게 익은 달걀은 고소했고, 새우는 탱글탱글하게 씹혔다. 씹을 때마다 새우살에서 단맛이 배어 나왔고, 달래장의 향이 입안을 정리해 줬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이 새우전은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회성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 다시 음식을 하게 된다면, 그날 밤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아쉬움에 쉽게 잠들지 못할 것이다.
나와 어머님이 명절 음식을 하는 것을 보며 남편이 자기 대에서 명절차례는 꼭 없앨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냉동실 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새우처럼, 명절도 조금씩 모양을 바꿔가며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전을 부치지는 않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기름 냄새를 집안에 채우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은 아마 음식보다 마음이 더 많이 차려지는 날일 것이다.